[내 삶의 여정] 파출부로 3년을 일했습니다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12/02/27 [16:44]

[내 삶의 여정] 파출부로 3년을 일했습니다

통일신문 | 입력 : 2012/02/27 [16:44]

김준희 女 2004년 탈북

저는 지금 산후조리원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월급은 9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많지는 않지만 간호대학에 다니는 딸과 함께 지내는데 큰 불편 없이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산후조리원은 서민층들이 많이 오는 곳으로 입실료가 비싸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20여명의 산모들을 받을 수 있는 작은 산후 조리원으로 1명이 8명의 산모를 돌보고 있어 앉아있을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쁩니다.

저는 2004년 남한에 들어왔습니다. 하나원에서 나와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식당일에서부터파출부, 경락 마사지, 산후조리원 일을 하기까지 여러 곳을 전전했습니다. 식당일은 밤 12시가 돼야 귀가하게 되어 어린 딸아이가 혼자 밤중까지 지내는 것을 보니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아이 교육을 위해 인력소개소를 찾아 파출부일을 시작했습니다. 파출부일은 아무리 늦어도 오후 8시 안에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파출부일을 하면서 정말 무시를 많이 당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아니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남북 간의 물건 명칭이 달랐기 때문에 곤혹을 치르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할머니들이 있는 집은 그래도 제가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물건 이름을 잘 모르니 가르쳐 달라고 하면 그러겠다면서 이것저것 잘 가르쳐 주고 친절합니다.

그런데 20·30대의 젊은 여성이나 아가씨들은 어느 물건을 가져 오라고 해서 머뭇거리면 말귀를 못 알아듣는 다고 짜증을 냅니다. 그래도 내가 이곳에서 적응해 잘 살아가려면 이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마음을 굳게 먹습니다. 그리고 공손하게 먼저 사과합니다.

제가 정말 무시당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32세의 아기 엄마는 아기 똥기저귀를 제 얼굴에 집어 던지면서 말귀를 빨리빨리 못 알아듣는다고 화를 내더군요. 제가 북한에서 온지 얼마 안 되서 그렇다고 하니 그럼 북한에서 오기는 왜 왔느냐고 마구 퍼붓더군요. 저는 어찌 할 줄을 몰라 하다가 그래도 참아야 한다고 마음을 달래면서 웃는 얼굴로 성내지 말고 잘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 여성은 다음날 좋은 분인지 모르고 그랬다면서 제게 잘못했다고 사죄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남한에 온 것을 후회는 하지 않았습니다. 탈북 1세대가 어렵고 힘든 일을 다 겪고 나면 2세대들은 우리처럼 고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너지면 안 된다고 다짐을 합니다. 사랑하는 딸을 위해 목숨을 걸었는데 이 정도는 극복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50대로 파출부로 3년을 일했습니다. 남한의 사회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남한의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주로 강남에서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그 덕분에 강남의 지리는 훤히 알고 있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산부인과 조산원에서 일했습니다. 남한에 와서 산후조리 학원을 다녔습니다. 파출부로 일을 할 때도 할머니 할아버지 경락마사지를 해 드리곤 하면 정말 시원하다고 좋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파출부로 다니던 집 사장님이 몸이 무겁다고 하기에 경락마사지를 해드렸더니 왜 이런 좋은 기술을 가지고 파출부일을 하느냐면서 인터넷을 찾아보면 학원도 있고 기술이 늘면 취업도 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그 길로 인터넷을 찾아 경락마사지 학원을 9개월 다녔습니다. 그리고 산후조리학원도 다녔습니다. 북한에서 하던 일이라 적성에도 딱 맞는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의 산모들과 아기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픕니다. 이곳의 산모들 정말 건강하고 현대 기술, 의학 등 많은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아기들도 건강하고 넘치는 모유 그리고 우유...정말 부럽습니다. 북한의 아기들은 젖이 부족하면 감자를 으깨어 먹입니다. 정말 눈물 나는 현상입니다.

북한에서 일을 할 때는 맨손으로 아기를 받았는데 여기서는 장갑, 기저귀, 소독약 등 풍족합니다. 북한과 대비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여기서는 산모의 젖이 이틀이면 돌아오지만 북한의 산모는 일주일이 넘어야 돌아옵니다. 남한에서는 태교를 하고 있어 아기들의 인지능력이 높아 일주일이면 눈짓과 말귀를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신생아의 인격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아기들은 발육자체가 낮아 일주일이 되어도 눈을 못 맞춥니다. 100일이 되어야 사람을 알아봅니다. 북한은 자연분만이 대부분이고 환경이 너무나 열악합니다. 그래서 아기들 사망률이 높습니다. 남한의 아기는 3,78~4,2kg인데 비해 북한의 아기들은 2,5~2,8kg입니다. 북한은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 산모도, 아기도 많이 사망합니다.

저 혼자 천국 같은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북한에서 살고 있는 엄마들과 아기들도 어서 빨리 저와 같은 행복 속에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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