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현실 바로알기]올바른 통일교육(18)

통일교육의 변천과정1)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12/07/02 [15:34]

[분단현실 바로알기]올바른 통일교육(18)

통일교육의 변천과정1)

통일신문 | 입력 : 2012/07/02 [15:34]

학교통일교육은 국제정세(통일환경)와 남북한 관계, 통일정책, 정치변동과 교육과정의 개정, 국민들의 통일의식 등에 따라서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통일교육의 변화된 내용은 실제 각 교과에 반영되어 왔다. 학교통일교육은 대체로 학자들에 의하며 통일교육내용, 교육과정, 통일정책과 정권의 변화에 따라서 그 시기별로 반공교육기, 통일·안보교육기, 통일교육기로 구분하고 있다.

반공교육은 미군정기로부터 제4차 교육과정기 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는 우리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반공교육이 주류를 이루었다. 반공교육은 정부수립 이후 미(未)수복 지구인 북한을 통일시키겠다는 내용의 통일정책을 추구하면서 실시되었으며, 6·25 전쟁을 치르고 난 뒤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반공교육은 북한에 대한 부정과 남한에 대한 긍정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적대감과 경계심을 고취하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시도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경계심 고취와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인식시킴으로써 안보의식을 강화하는데 초점이 모아졌다.

반공중심의 통일교육기간 통일교육정책과 관련된 기획 및 심의는 국토통일원과 같은 주무부서와 내무·문교 등 관련 부처의 협조 하에 정부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정부 통일정책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인식시키는 한 과정으로써, 국민들의 전반적인 여론수렴을 대신하여 통일교육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상명하달 방식으로 결정하는 형식이었다. 이에 대한 결과는 통일교육목적과 성격의 합의기반에 대한 취약성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기간 실시된 통일교육은 냉전 및 권위주의 정권의 통치로 체제·이념위주의 반공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1970년은 그 절정기에 이르렀다.

반공교육의 내용은 감정적 차원의 대국민 정신교육에서 적개심 고취와 대결을 조장하는 교육으로 강화되었다. 그 영향은 교과과정의 국정교과서와 각종 매체 등을 통해 학교현장의 학생들과 국민들에게 그대로 각인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1950년 6. 25전쟁과 그에 따른 분단의 장기화, 권위주의 정권의 등장, 그 후 계속된 체제 경쟁적인 남북대결 등의 통일환경 요인으로 인해 198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때문에 통일정책의 한 홍보수단으로 취급됐던 당시 통일교육은 분단고착화 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임기응변식의 교육과 정태적인 형태로 시행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체제·이념 위주 반공중심의 교육은 1980년대 말부터 진행된 국제적인 탈냉전과 국내적인 탈권위주의 정부의 등장 및 민주화 운동, 호전된 남북관계 등에 직면하면서 자체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새로운 노력이 시도되었다.

즉 통일을 대비하기 위한 적극적인 교육으로 전환하고, 반공론적 접근 대신 규범적 접근을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감정적 내용을 극복하여 공산주의 이론과 인지적 요소를 강조하고, 변화된 통일환경에 맞는 자발적인 능동형의 민주시민을 육성하며, 국민들의 의견수렴과 이를 위한 민주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미군정기·교수요목기 시기(1945~1954년)에서 학교통일교육 관련내용에서는 홍익인간을 교육목표로 제시하였으며 애국애족교육을 강화하였다. 교수용어의 한국어사용과 조선의 이익에 반하는 교과목을 일체 금하였다. 수신과의 폐지로 도덕내용을 공민과로 흡수하였고, 새로운 민주시민양성을 위한 공민과 등장과 함께 민주시민교육을 실시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 도배방지 이미지

평양의 밤… 촛불로 겨울 밤 어둠을 밝힌다?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