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수기] 무죄 ①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12/07/02 [16:21]

[탈북자 수기] 무죄 ①

통일신문 | 입력 : 2012/07/02 [16:21]

강서경찰서 공모전 최우수작/김광일 

나는 이 세상에 이름을 남긴 유명 인사들의 자신이 겪은 감옥생활에 대하여 쓴 책을 여러 번 보았다. 넬슨 만델라의 감옥생활, 여류작가 루이저 린저의 ‘옥중일기’가깝게는 전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씨가 쓴 수기...이들은 책들에서 당시대의 독재정권들에 의하여 인권과 민주주의가 무참히 짓밟혔던 복역시절을 공개하여 독재자들을 고발하였다. 이들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자기식의 정견을 가지고 투쟁하던 사상가들로서 북한식으로는 정치범인 것이다.

교화소에서의 수용자들 복역생활

오늘날 이 지구상에 누구나 외칠 수 있고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실현 되어 가고 있기까지에는 자기의 귀중한 생을 받쳐 독재세력들에 맞서 싸운 투사들의 피와 넋도 깃들어 있다.

지금은 21세기이다.

과학은 우주를 정복해나가고 있다. 이 문명한 21세기에 20세기 중반기 독재정권들이 자행하던 것과 같은 독재가 실시되는 곳이 있다면 밑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곳이 있으며 그것도 내 가 나서 자란 고향이 있는 북한 땅이 그런 곳이다.

나는 그 어떤 정견을 가지고 제도에 맞섰던 사상가가 아니다. 그러니 정치범이 될 수 없다. 얼마 전 청주교도소에서 20여명의 수감자들에게 2년여의 교육을 주어 기술자격을 취득시켜 앞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 갈수 있는 자활능력을 갖추어 주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이 사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복역자들에게도 보장되는 인권을 보게 되니 너무도 대조적인 북한 교화소 복역생활이 생각나며 진정한 인권은 민주주의가 실현되어 가고 있는 사회에서만이 보장 될 수 있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된다.

‘라 40’이것은 북한 인민보안성 12 교화소 복역자였던 나에게 붙여졌던 수용자 번호이다. 보다시피 나는 출소자이다. 그러면 ‘왜 갔는가’ 하는 물음이 생긴다. 굳이 밝힌다면 117조 불법밀수죄이다. 하면은 무엇을 밀수 하였는가 하는 물음이 또 생긴다. 답한다면 나는 밀수한 적이 없다.

그러면 억울하게 갔다는 것인데 이 글에서 교화소에 가게 된 동기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북한 교화소에서의 수용자들이 복역생활을 있는 그대로 더하지도 덜지도 않고 각색 없이 쓰려고 한다.

북한 교화소에서 수용자들의 복역 생활이 인간적인가 아닌가는 글을 보는 사람들이 평가할 몫이다.

절차 무시하고 우선 잡아놓고 본다

2004년 7월 8일 나는 회령역전 앞에서 이미 추적하고 있던 보안원들에 의해 체포되어 아무런 법적 절차가 없이 회령보안구류장에 구류되었다. 북한도 공민을 체포하여 구류시켜 취급하자면 검찰소에서 체포장이 발급 되어야 하는 법절차가 있는데 이 절차는 대개가 무시당하고 우선은 잡아놓고 본다.

잡아 놓고 (체포)조사하여 사건 제기로 만들어서는 형벌을 적용하면 하고 그 어떤 환경이나 뒤 공작이 있으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환경이란 출신성분을 말하는데 북한에서 일명 ‘백두산 줄기’라는 사람들과 대개가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고위층으로 그들의 가족친척들이 환경이 좋은 집안으로 된다. 또 비행사, 잠수함, 특수부대라고 대남공작 하는 사람이 있는 가족들도 환경이 좋은 집안으로 되어 이들의 가족친척들은 살인을 쳐도 집행유예로 되는 특혜가 있다.

나는 예외가 될 수가 없는 출신이라 형사소송법에 따른 범죄자들만 구속되게 되어있는 구류장에 즉시로 구류되었던 것이다. 체포 된지 5일만엔가 체포장을 가져와서 사건으로 취급한다고 했다. 나를 데리고 간 예심과 보안원이 계호원을 부르더니 “야를 4호 감방에 여라.”하고 명령했다. 한 계호가 오더니 예심과에 잇달린 보안 장치가 된 문을 열고 나를 들여보냈다.

“야. 오라”하는 꽥 소리에 보니 젊은 계호가 나를 손짓해 부른다. 엉거주춤 해서 다가가니 “이 새끼 눈 까라.”며 발로 걷어찼다. 우선 구류장이라는 위압감을 주려는지 사나운 눈길과 독살스러운 말투이다.

“옷 벗어.” 하고 는 빤스까지 벗겨 벌거벗은 나를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대고 손을 뒤짐 지고 벽을 향해 돌아 있게 하고는 옷을 검사해 단추를 다 때고 혁띠를 회수하였다.

이것이 구류될 때 받아야 하는 검신이라는 것인데 단추와 혁띠까지 회수 하는 것은 구류자들이 예심기간에 보안원들의 핍박에 못 견디어 또 처형이 두려워 자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 이란다

검신을 끝내고 옷을 입으라고 해서 옷을 입으니 빤스 고무줄까지 뽑아놓아 항상 아랫도리를 쥐고 다니게 만들어 놓았다. 구류자들은 한 뼘 되는 끈을 앞으로 당겨 매고 지낸다.

”이 새끼, 그대로 게바라 들가라.“

“걸어라!”하며 구류장 뒤에 있는 좁은 길을 가리키기에 일어나서 걸으려 하니 발로 호되게 걷어찼다.

“이 새끼 대갈이 숙여, 뒷짐져, 신발 벗어, 걸엇!”

4호 라고 쓰인 번호 앞에 이르니 밑에 높이 너비가 45cm가량 되는 2중 보안 장치로 된 철문이 있었다. 그 앞에서 또 무릎을 끓고 뒷짐을 지고 머리를 바닥에 대고 철문이 열릴 때까지 돌아 업들여 있어야한다. 내가 벙벙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물거리니 “이 새끼 대갈 까고 돌아 업뎌.”하며 내 허리를 강하게 내리 찍었다.

“헉…” 순간에 주저앉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 여독에 구류장 생활기간 계속 허리가 케우게 됐다.

문이 열리고 “들가라.“하는 소리에 머리를 들고 들어가려고 하니 또 발길로 걷어차며 ”이 새끼, 그대로 게바라 들가라.“한다.

이 문이 구류장에서는 일명 ‘개구멍’이라고 기여서 드나들게 만들어 놓은 문인데 내가 들어가니 등을 돌리고 앉아있던 사람들이 흘끔 흘끔 뒤돌아보는데 머리를 박박 깎아놓은 모습을 처음 보는 나는 으스스 했다. 좀 있으니 나를 체포한 자가 감방 앞에 오더니 내 머리를 깎고 교정을 주라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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