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일 칼럼] 40년 전 그리고 오늘, 김일성광장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10/22 [15:14]

[림일 칼럼] 40년 전 그리고 오늘, 김일성광장

통일신문 | 입력 : 2020/10/22 [15:14]

평양 태생인 나는 12살 때 고등중학교 1학년시절 이른바 ‘1호행사’(수령 출현행사)에 참가하는 영광을 누렸다. 19801010일 오전 11시 경,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있은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 경축100만 군중시위 학생소년단대열’(광장주석단 앞을 행진하는 대오)에 참가해 주석단에 선 김일성·김정일을 향해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쟁쟁하게 울리는 조선소년단행진곡에 대열을 맞추고 가슴 앞에 사선으로 멘 소고를 장단 맞춰 치며 광장주석단 앞을 통과한 시간은 고작 7분 남짓. 그 순간을 위해 학업을 전폐하고 무려 5개월간 하루 평균 8시간씩 강도 높은 훈련을 하였다.

지난 1954년에 건설된 김일성광장은 북한의 주요 국가행사들이 개최되는 장소이다. 광장주석단 좌측은 정부내각청사, 우측은 외무성청사 그 외에도 주변에 조선미술박물관, 역사박물관 등이 있다. 19824월에 광장바닥이 기존의 콘크리트서 화강암으로 바뀌었고 이 위로 100만 평양시민 군중시위 대열이나 인민군 열병식 대오가 행진한다.

광장주석단은 1열 입석으로 대략 60~70명 정도가 자리할 수 있으며 그 아래 대형 김일성·김정일 태양상(영정사진)이 걸렸다. 그 앞 20m 지점에 나라길시작점표식비가 있는데 평양에서 각 지방까지의 거리 구간을 여기를 기점으로 정한다.

20201010,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린 김일성광장은 화려하게 변신했다. 김일성·김정일 태양상이 광장 뒤편 한옥건물인 인민대학습당상층부로 옮겨졌고 대략 250명이 자리할 수 있는 3열 입석 주석단으로 바뀌었다.

기존 주석단은 중앙현관으로 입장한 수령이 그 앞에서 행사를 관람했다. 이후 행사가 끝나면 좌측단열 간부들의 뒤로 빠져 반 층 낮은 통로로 광장의 시민들에게 답례하며 주석단 앞을 지나갔다. 바뀐 주석단은 1열 좌측으로 수령이 입장하여 중앙서 행사관람 후 우측으로 빠진다. 간부들을 많이 세우는 한편 수령이 편리하게 만든 구조이다.

기존의 광장주석단은 다소 어두침침하고 단조로웠는데 새로 바뀐 주석단은 금박과 대리석, 양각부조 등으로 꾸민 화려한 모습이다. 특히 주석단 1열 난간 중앙에는 국무위원장 마크가 새겨졌는데 ‘1호행사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용자리이다.

이 자리에 선 회색정장 차림의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27분간 연설에서 오늘 이 자리에 서면 무슨 말부터 할까 많이 생각해보았지만 마음 속 진정은 고맙습니다이 한 마디뿐입니다고맙다’ ‘감사하다’ ‘고마운 마음등의 표현을 17번 사용했다. 때로는 울먹이는 목소리와 손수건을 눈가에 가져간 다소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 김정은이다.

그래봤자, 그는 2천만 인민의 잔인한 독재자다. 전체 인민에게 종신토록 사상공부를 강제로 시키니 누구도 당과 국가를 비판하지 못한다. 수령을 비판하면 3대 멸족이고 외국방송을 청취하면 정치범이 되고 지역 이동은 국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10년간 군사복무를 마친 과반의 군인들은 당국의 집단배치를 받아 평생토록 광산, 탄광, 건설장, 농촌 등에서 강제적인 노동을 한다. 기계가 멎은 공장에 출근해서도 수령의 사상학습은 반드시 해야 하고 배급식량은 주면 먹고 안 주면 못 먹는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우리 인민만큼 자기 수령을 절대 신뢰하고 충실히 따르는 훌륭한 인민은 세상에 없다고 했다. 그의 아들 김정은은 “(자기를 잘 따르는 인민들이) 고맙고 감사하다고 한다. 2천만 인민을 자기를 비판하면 죽여 버리고, 죽지 않고 살려면 순종하게끔 제도를 만든 독재자들이 바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다.

! 언제면 내 고향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자율적으로 모인 시민들이 우리에게 거주와 이동의 자유를 달라!” “인터넷을 보게 해 달라!” “수령을 인민의 투표로 선거하자!” “무능한 노동당은 해산하라!” 등의 구호를 외쳐도 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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