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계절이 언제 떠들며 오던가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11/13 [21:46]

[모란봉] 계절이 언제 떠들며 오던가

통일신문 | 입력 : 2020/11/13 [21:46]

<박신호 방송작가>

우리나라는 한 해 네 번 계절이 바뀌면서도 한 번도 순서를 바꾼 적도 없으려니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언제 한 번 “나 가을이야, 나 겨울이야.” 하고 온 적이 없이 어느새 우리 곁에 조용히 다가와 함께 지내곤 한다. 사계절 어느 한 계절도 요란하게 떠들며 온 일 없으면서 우리와 같이 늘 지내곤 한다. 그랬기에 누구도 4계절이 오는 걸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올해도 조용히 다가온 가을이 어느새 우리 곁에서 떠날 채비를 마쳤나 보다. 그렇게나 우리들의 눈을 호사시키던 단풍이 쏟아지듯 떨어져 속절없이 쓸려가고 있다. 약속한 겨울과 교대하기 위해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사라지고 있다.

잠시 스산한 가을 정경을 창밖으로 내다보다가 한 일간지 주말 섹션 제목이 들어왔다. ‘추, 윤 사태’ 책임 안지는 文대통령... ‘겨울이 오고 있다’ 무슨 내용인지 보지 않아도 알만했다. 작은 제목이 보였다. “방관하는 문 대통령 장관, 검찰총장 극한대립. 개입도 중재도 안 해. 이 아수라장 언제 끝날까.” 신문을 덮어버렸다.

우리 집은 4남 4녀 여덟 형제자매가 한 지붕 한집에서 같이 산 기간이 꽤 길었다. 나이 터울도 2살 3살로 그만그만한 터라 한참 자랄 적에는 조용한 날이 거의 없었다. 크고 작은 고성이 오가지 않은 날이 없다시피 했고 물리적 행동도 서슴없었을 오갔다. 그러다 보니 다투고 싸우는 소리에 겹쳐서 야단치고 치고받는 소리가 섞여 온 동네 사람이 다 알았을 정도였다.

여기까지는 식구 많은 집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겠는데 이중 쥐뿔 난 형제가 하나 있었다. 셋째인데 좀처럼 다투거나 싸우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형제자매간 다툼에 도통 관여하지 않았다. 설사 험악한 사태가 벌어질 기세여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동생이 역성을 들어달라고 호소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일으킨 거니 너희들이 풀라는 식이었다.

위험할 정도의 폭력사태까지 번질 지경에 이르러서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끝까지 결자해지 원칙을 지켰다. 이런 꼴을 본 사람이 어쩌면 그럴 수 있냐고 나무라기도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중립적 자세는 끝까지 유지했다. 그랬어도 형제자매들은 속으로는 어쨌는지 모르겠으나 한 번도 대놓고 셋째를 원망하질 않았다. 그러려니 차치한 것이다. 그럼에도 셋째는 형제간의 정신적 대통령처럼 굴었다.

사사로운 집안 얘길 구구하게 나열한 것은 지난날을 반추해 보려는 게 아니다.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 판세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평탄치만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는 가능하면 두루뭉술 넘어가려고 한다.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 것인데도 마냥 시간에 의존하고 있는 꼴을 보여주고 있다. 무능해서일 수 있겠고 무기력해서일 수도 있겠으나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집안의 가장이라도 할지라도 매사에 뚜렷한 자세를 보여야 하는데, 일국의 지도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있기만 해선 일을 더 꼬이게 하고 어렵고 힘들게 하고 만다.

혼자 생각만 하고 있어선 결코 해결될 일이 없다. 생각하고 나서 뛸 수도 있고, 걸으며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사에 적기란 것이 있다. 말을 할 기회를 잃으면 만사를 잃게 만다. 아무리 심오한 철학이 빠져 있어도 말할 기회를 놓쳐서는 힘들게만 할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꼭 그 지경에 놓여있다고들 한다.

서민들의 표정은 구름에 갇혀있다. 가을은 눈으로 가고 있으며 겨울은 체온으로 오고 있다.

이제 대지는 꽁꽁 얼어붙을 것이며 칼날 같은 찬바람이 가슴을 후벼들 것이다. 언덕배기에 사는 서민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곳간을 바라본다. 검은 자국만 남아있는 텅 빈 연탄 곳간을 보고 또 본다.

해마다 엄동설한이 와도 얼굴을 피며 살 수 있었던 건 아랫목을 따끈따끈하게 해 줄 연탄이 곳간 가득 채워져 있어서였다.

그러나 올해는 텅 빈 곳간만 보고 있으려니 할머니, 할아버지의 가슴이 아프기만 하다. 이들에게 언제나 소리 없이 행복이 찾아오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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