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일 칼럼] 평양역의 어린 꽃제비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11/24 [22:33]

[림일 칼럼] 평양역의 어린 꽃제비

통일신문 | 입력 : 2020/11/24 [22:33]

<림일 탈북작가>

인터넷에서 눈에 띄는 사진을 한 장 보았습니다. 북한의 수도 평양역 앞 공원의 벤치에 주린 창자를 그러안고 잠든 어린 꽃제비(구걸아동)의 모습입니다. 다 꿰진 신발과 낡아빠진 옷을 걸친 소년의 거무스레한 얼굴은 무척이나 앙상해 보입니다.

꽃제비의 남루한 몰골 위로는 활짝 웃는 김일성 수령의 얼굴모습 초상화가 밝은 LED조명을 받고 있어요. 옛 소련의 건축형식인 평양역 청사인데 저는 이곳에서 300m가량 떨어진 곳인 중구역 외성동 33인민반에서 1996년 11월까지 살았답니다.

사상초유의 평양시민 식량배급 중단은 1995년 5월에 있었지요. 90년대 초부터 옛 동구권 사회주의나라들에서 지원받던 물자와 식량이 끊겼고 김일성이 사망했는데 당국은 그의 시신을 안치할 궁전을 특수 개조한다며 거액의 외화를 탕진했지요.

이때부터 시내 골목골목에 오물장 쓰레기를 뒤지는 거지들이 나타났답니다. 내가 살았던 중구역 평양국제문화회관 옆의 6층짜리 아파트현관 입구에서 꽃제비들은 누구에나 손을 마구 내밀며 “배고파요. 먹을 것 좀 주세요” 라고 애원하였죠.

평양국제문화회관에는 윤이상음악당과 외화상점 및 식당이 있는데 외국인이나 외화가 있는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지요. 자정 무렵이면 주변에서 남성들에게 접근하여 “꽃 사세요”(외화를 받고 성을 파는 것) 하는 여성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아파트 아래 궤도전차(트랩) 노선과 정류장이 있었고 잘 달리던 전차가 정전으로 인해 20~30분간 정차되는 사례가 빈번하였죠. 그때마다 그 속에서 “도둑이다 저놈 잡아라” “내 물건 잃어버렸다”는 몇몇 승객들의 고함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평양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간혹 가이드에게 “어떻게 평양에는 거지가 없는가?”고 묻지요. 답변이 아주 황당한데 이를테면 “사회주의 우리나라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는 사랑으로 모든 인민이 평등하게 사니 거지가 있을 수 없다”고 하지요.

평양역에서 약 1.000m 남짓 지점에 ‘조선노동당 본부청사’로 불리는 김정은의 집무실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평양역사 옆에 위치한 ‘1호역사’(수령이 철도를 이용할 때 이용하는 전용 역사)까지 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지요.

그러니 김정은의 시야에는 깊은 밤 평양역 어린 꽃제비를 비롯한 어지러운 풍경은 전혀 안 보이겠지요. 그가 낮에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시찰)를 다니는 곳은 평양과 일부 지방의 특정장소로 전부 사전에 엄선 정리되고 철저히 준비된 장소랍니다.

독재체제 유지의 목적으로 조상(김일성·김정일)의 동상 건립, 무모한 핵개발과 미사일발사 등에 드는 돈이 어마어마합니다. 그것으로 해서 수십 년간 최악의 식량난과 경제난에 빠져 허덕이는 북한 경제의 실정이며 2천만 우리 동포들입니다.

북한의 어린이와 여성들 40%가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렸다는 것은 국제보건기구의 공식 통계자료이죠. 청소년 절반이 온갖 사회적 강제노동에 차출되며 하루 두 끼 멀건 죽을 먹고 산다는 것은 북에서 살다 나온 탈북자들의 일치한 증언이지요.

자칭 ‘인민의 어버이’ 김정은의 모습을 사뭇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듭니다. “세상에 저런 국가지도자도 있을까? 과반의 제 백성은 항상 굶주린 모습인데 본인은 살찐 얼굴이니 말이다. 어휴, 세계에서 가장 한심하고 무능한 지도자”

요즘 국제사회에 정상국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북한의 김정은이 무엇보다 사회의 약자인 어린이와 여성, 노인들을 위한 복지정책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조상들이 모두 노인까지 잘 산 것은 인민들 덕분이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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