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향산 계곡으론 주민들 접근 안 돼... 오염 막기 위한 수단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 땅 15] 묘향산의 울창한 산세나 분위기 금강산보다 좋다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1/02/18 [10:05]

묘향산 계곡으론 주민들 접근 안 돼... 오염 막기 위한 수단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 땅 15] 묘향산의 울창한 산세나 분위기 금강산보다 좋다

통일신문 | 입력 : 2021/02/18 [10:05]

▲ 북한의 묘향산 보현사(사진 : 송광호 기자)



어느 날 안내원과 함께 묘향산으로 갔다. 평안북도에 소재한 묘향산은 누구든 방북일정에는 빠지지 않는다. 당일 왕복 행이 가능하니 웬만하면 하루 관광일정에 들어있다. 평양에서 묘향산까지 차로 약 2시간거리다. 보통 아침에 떠나 저녁에 돌아온다. 

 

해외교포들 중에는 묘향산이 금강산보다 더 좋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묘향산의 울창한 산세나 분위기는 금강산과는 상당히 다르다. 안내원 얘기론 묘향산 계곡(냇가)으론 주민들의 접근을 허용 않는다한다. 단순히 오염을 막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관동8경은 내금강 삼일포와 해금강 총석정

묘향산 오갈 때 북으로 흐르는 강은 ‘청천강’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30만 대군 

물리쳤다는 살수...낭림산맥 끼고 서해로 빠져

 

묘향산을 서너 번 다니다보니 한번은 호텔에서 미리 준비해준 도시락(점심)으로 냇가에서 식사를 하고 1박을 한 적이 있다. 인적이 없는 냇가에 흐르는 물 그대로 떠 마시기도 했다. 묘향산 봉우리를 오르다 산중턱에서 만난 한 노파로부터 다래 서너 개를 사서 처음 맛보았다. 예전 머루, 다래 열매소리만 듣다가 드디어 묘향산에서 발견했다. 머루와는 달리 다래는 내겐 구하기 힘든 열매였다. 다래는 초록색으로 대추만한 크기로 달콤했다.   

다음날 묘향산관리인이 대웅전 앞 보현사 역사와 13층 석탑관련 해 한창 설명할 때였다. 옆에 섰던 안내원이 뜬금없이 “보현사가 뭡니까”하고 물었다. 관리인은 “절입니다.” 한마디를 던지곤 하던 말을 계속했다. 안내원 쪽으론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이때 잠시 머리에 혼란이 왔다. ‘평양에서 내려온 인텔리 안내원이 어찌 북쪽의 묘향산 보현사를 모르나.’ 무안해 할까봐 내색은 안했으나, 의문점은 여전히 남았다. 

관동8경의 하나인 양양 낙산사가 얼마 전 산불로 완전 전소됐다고 전했을 때 관리인은 “아, 그렇습네까. 우린 전혀 모릅네다. 우리도 관동8경에 두 개 갖고 있디요. 내금강 삼일포와 해금강 총석정 이디요.”한다. 절 옆에 소나무로 꾸민 한반도지도 독도부분 솔잎이 노랗게 변해있었다. 

“요즘 일본 때문에 시달려선지 독도 잎이 시들었네요.”라고 하자, “일본 놈들이 독도를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데 말도 안 되지요.” 거들었다. 

그동안 만났던 안내(지도)원들을 전부 지식인으로 알고 있었다. 관광총국 산하 안내원이든, 사업관계나 이산가족담당이든, 일반책임지도원이든 김대(김일성대학)등 대학출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묘향산을 오갈 때면 북으로 비교적 큰 강 하나가 흐른다. 누군가 “야, 청천강이다.”하고 소리쳤다. 낭림산맥을 끼고 서해로 빠지는 강,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30만 대군을 물리쳤다는 살수, 그 강이다. 사람들은 창가를 내다보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묘향산을 다녀온 워싱턴 DC에 사는 미주교포가 말을 했다. 

“내게 인상 깊은 건 무엇보다 도로주변 농토였어요. 나는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16세까지 농촌에서 자라 시골을 잘 알아요. 북한 논밭이 40년 전 고향땅 그대로여서 놀랐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어떻게 예전상태 그대로인지 아무튼 옛날생각에 감개무량합니다.” 

 

▲ 북한의 청천강 모습(사진 : 송광호)



5월의 북녘 들판에는 모내기전투가 한창

북한주민은 영농기간 중에는 상급자든 

누구든 농사일 거들어야...도시거주 간부도

상하구별 없이 2주간 지정된 농촌지역으로

나가 노동봉사를 도와야한다

 

5월의 북녘 들판에는 모내기(일명 모내기전투)가 한창이었다.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1면에는 연일 농촌기사로 지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주체농법’을 활용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기사다. 신문에는 ‘봄철 영농전투’라는 이름아래 북한일대의 시, 군, 협동농장 등 농촌진척사항과 활동이 매일 소상히 소개됐다. 

북한주민은 영농기간 중에는 상급자든 누구든 농사일을 거들어야한다. 도시거주 간부들도 상하구별 없이 2주 동안 지정된 농촌지역으로 나가 노동봉사를 도와야한다.

안내원에 따르면 “농촌에는 적어도 한해 쌀 수확량이 8백만 톤 이상 돼야 인민들 모두에게 식량배급이 돌아간다.”고 설명한다. 지난해는 모처럼 풍작이었는데도 6백만 톤에 불과해, 아직 쌀이 많이 부족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걸 보면 지난 1984년 북에서 한국에 보냈던 쌀 5만석 등은 대단한 성의로 볼 수 있겠다. 당시 서울 등지에서 발생한 집중호우로 많은 인명(129명 사망)등 재산피해를 입었을 때 얘기다. 

오늘에 와서 한국농촌은 매년 남아도는 쌀로 인해, 쌀값문제 등 고민이라는 소식을 가끔 듣는다. 이럴 때 기아선상의 북한 주민들을 돕는다면 같은 민족끼리 얼마나 좋겠는가. 굶주린 사람을 돕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 있나. 북에선 자존심 때문인지 남쪽 호의에 관심 없어 하는 듯싶어 보인다. 북에선 미국만 상대를 원하는 듯, 한국과는 당장 대화의식이 없다고 들린다. 그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세계 반열에 등장시킨 탓인가. 과거 어느 미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를 맞상대로 정상회담을 갖고 세계이목을 끌게 한 적이 있었던가. 이는 오히려 김정은의 위상만 높이는 일이었는지 판단이 쉽지 않다. 북 핵 해결문제는 한 치도 진전 없는 그대로 답보 상태이기 때문이다. 

 

1984년경부터 김일성은 관용어로 쓰이는 

‘의식주’를 ‘식의주’로 바꿔 사용하도록 해

식생활의 중요성 부각...공용문건과 출판물

의식주 표현대신 식의주 라고 쓰기 시작


지난 1984년경부터 김일성은 관용어로 쓰이는 ‘의식주’ 단어를 ‘식의주’로 바꿔 사용하도록 했다. 무엇보다도 식생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때부터 북한 공용문건과 출판물은 의식주 표현대신 식의주 라고 쓰기 시작했다. 김 주석의 ‘먹는 문제’를 강조하면서다. 

그는 ‘옷이나 주택은 부족해도 참을 수 있지만 먹는 문제는 타협이 절대 안 되는 우선적 문제’라는 것이다. 중국경우 진작부터 ‘식의주’로 사용하고 있다. 영어권에서도 의식주가 아닌 ‘식의주’ 순서로 쓰여 지고 있다. 항상 순서가 ‘food, clothing and shelter'로 사용한다.

2021년 새해다.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누구든 격심한 고통을 겪었다. 지금도 진행형이다. 집안에 박혀 예전 자료들을 정리하던 중 계획에도 없던 북녘관련 글을 쓰게 됐다. 쉬운 출발은 아니었다. 내가 해외편집고문으로 있는 ‘재외동포저널(계간지)’의 박상영 출판사사장이 왠지 극구 반대했다. ‘아무도 북한 글에 관심을 갖지 않는데 왜 쓰려하느냐?’는 주장이다. 

마침 이종환 전 동아일보 북경특파원(월드 코리안 대표)의 적극적인 격려로 주섬주섬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간 좌파로부터는 ’사쿠라‘ 소리도 들었다. 같은 편인 것 같은데 실지로는 아닌 ’바람잡이‘라는 의미다. 하여튼 중도시각의 ’중도성향‘이란 외롭고 호응받기 쉽지 않다. 

대부분 사람들은 좌냐, 우냐 분명한 걸 원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극좌나 극우 등으로 기울어져 있는 경우를 가끔 본다.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정작 본인은 자신이 그렇게 편향돼 있다고 생각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여러 차례 방북취재를 했다고 북한을 전부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겠나. 오해하는 부분, 틀린 얘기도 있을 것이다. 

북한 글은 언제든 조심스럽다. 짧은 시일 북을 한두 번 다녀와 책을 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의 자신감이 정말 부럽다. 하지만 자유롭고 편리한 북미 땅에 살면서 잠깐 평양을 다녀온 뒤 돌변한 일부교포의 편향적 태도라면 동의할 수 없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 뿔난다.’는 식이면 곤란하다. 


송광호 기자

  • 도배방지 이미지

자강도 만포방사공장 노동자들 휴식시간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