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세월은 떠밀려가지 않건만

박신호 방송작가 칼럼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1/02/18 [10:32]

[모란봉] 세월은 떠밀려가지 않건만

박신호 방송작가 칼럼

통일신문 | 입력 : 2021/02/18 [10:32]

▲ 박신호 방송작가     ©통일신문

명절 때 친구들을 만나면 고향 얘기들을 많이 하게 된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점점 늘면서 으레 앉으면 고향 얘기부터 시작해 부모와 집안 얘기를 하게 되나 보다. 내 경우에는 6·25 때 월남한 친구가 많은 터라 이 친구들을 만나면 고향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부모와 집안 식구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요즘 사람들은 집안 얘기하는 걸 금기시하는가 보지만 우리 세대만 해도 만나면 서로 집안 식구 얘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된다. 그런 걸 보면 지금과 같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칸막이가 생긴 건 아무래도 진솔한 대화를 나누지 않아서가 아닐까 한다. 

 
어느 학자는 식구, 이웃, 친구고 간에 덜 친밀해지게 된 것은 예전과 달리 주거 공간이 넓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전에는 생활공간이 좁아 어쩔 수 없이 끼어 살아야 했으나 지금은 공간이 넓어지면서 독립된 방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니 자연히 거리를 두게 됐다는 것이다. 하긴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라고 해도 대면 생활이 짧아지면 사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긴 하다. 체온을 느낄 수 없으면 멀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난 태어나 고향 얘기를 별로 해 본 일이 없다. 부모나 집안 얘기를 그리 한 적도 없다. 서울이 고향이고 가족이 다 서울에서 줄 것 살아와서일 것이다. 그래서 주로 남의 얘기를 듣는 편이어서 친구들이 얘기 상대로 만만하게 생각해 자주 그리고 긴 시간 같이 있으려 하지 않았나  한다. 하지만 세월은 지난날을 하나하나 지어가고 있다. 마주 앉을 친구들이 어느새 하나둘 사라지고 전화 한 통 변변하게 나누기도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 막역한 친구가 시도 때도 없이 자주 전화를 걸어온다. 귀도 잘 안 들린다면서 전화를 걸고는 힘없는 목소리로 “외롭다”고 한다. “외로워 못 살겠다”고 한다. 처음엔 놀라 집에 아무도 없느냐고 하면 마누라도 있고 누구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외로워 죽겠단다. 뭐라 위로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만히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50킬로도 안 되는 자그마한 체구에 주름진 얼굴이 보였다. 나이를 따져 봤다. 87세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이 거지반 85세 전후로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세월에 떠밀려 가고 있는가 보다.

잠자리에 들면 으레 라디오를 켠다. 음력 정월 초하루 0시 시보가 울리면서 뉴스가 나왔다. 듣다가 깜짝 놀랐다. 음력 설날 첫 방송 뉴스가 너무나 놀라웠다. 한 아기의 충격적인 죽음을 다룬 사건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화가 났다. 공공방송의 데스크가 제정신 가지고 뉴스를 편집했나 싶어 벌떡 일어나 앉았다. 설날 첫머리 뉴스로 끔찍한 소식을 전해야 한단 말인가. 분노가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한 공공방송 아나운서가 제 마음대로 여당에 불리한 기사를 빼버리고 뉴스를 읽었다더니 이건 무슨 짓인가. 

그날 밤이다. 음력 설날이 막 지나는 자정에 다른 공공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또 놀라게 했다. 첫머리 뉴스가 또 다른 아기 참사 사건 소식을 다루고 있었다. 해외동포들이, 북한주민들이 그딴 소식을 듣자고 했나. 하도 기막혀서 천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겹쳐서 서슬이 시퍼레진 김정은의 얼굴이 떠올랐다. 

올 음력설을 전후해 북한 정권은 특별경비주간을 선포하고 주민들의 이동과 집합을 단속했다. 이동과 집합의 자유가 없는 곳인데도 또 특별단속을 한 것은 너무나 경제가 엉망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2, 16 김정일 생일 선물 때문에 당과류 생산으로 설탕값이 천정부지다. 뭣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있다면 핵무기 생산일 것이다. 핵무기는 김정은의 몸통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로 해서 북한은 국제 압력과 경제난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으며 김정은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도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 정권은 주민을 단속하기 위해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며 대북방송을 차단하고 있으며 대북 전단을 차단하고 있다. 그래도 이 나라는 계속 떠밀려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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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의 핵심 생명줄 '고려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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