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시베리아벌목장에서 탈출 벌목공들 늘자 탈북자 돕는 한국교회 주목”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 18] 한국계 의료선교사 부부 피살 사건 (상)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1/04/08 [10:24]

“북, 시베리아벌목장에서 탈출 벌목공들 늘자 탈북자 돕는 한국교회 주목”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 18] 한국계 의료선교사 부부 피살 사건 (상)

통일신문 | 입력 : 2021/04/08 [10:24]

1995년 하바롭스크의 봄은 늦게 왔다. 계절은 3월 하순이건만 차디찬 기운은 그대로였다. 분위기는 늘 무겁고 암울했다. 도시에는 어두운 색깔의 드넓은 아무르 강이 흘렀다. 이 강줄기는 중국 하얼빈까지 뻗친다. 중국에선 이 강을 흑룡강이라 불렀다. 모스크바 특파원시절 이 하바롭스크를 2번 방문했다. 러시아지역 일제관동군에 징병된 조선인발자취 추적을 위해, 한 번은 탈북벌목공 관련취재 등 때문이었다.

하바롭스크는 시베리아관문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했다. 북한은 지난 1960년대부터 오랜 세월 구소련(러시아)과 삼림벌목계약을 맺었다. 이 때문에 하바롭스크에는 시베리아로 파견된 북한벌목공 수천 명이 들락거렸다. 한때 벌목공들은 약2만 명에 달했다. 이 벌목작업 활성화를 위해 하바롭스크 시에는 오래전부터 북한임업대표부와 경제대표부 두 건물이 존재했다. 한참 세월 지난(구소련 붕괴)후 하바롭스크에 진출한 한국정부로선 어느 소속기관하나 없었다.

 

 


러시아 현지에서 이주헌 부부 선교사의

하바롭스크 선교봉사는 한인목사들 보다

단연 돋보여…개인재력과 의술로 당시에

곤경에 처한 주민들 물심양면으로 도와

교회선교 통해 탈북벌목공들 은밀히 도와

‘탈북자 대부’, ‘탈북자 아버지’ 소문 퍼져

 

지난1993년 6월이다. 이 스산한 하바롭스크 땅에 미 버지니아에서 한국계 의료선교사 부부가 부임했다. 미 시민권자인 이주헌 심장의(당시60세) 박사부부였다. 그들은 연세대를 나왔고, 부인 이계월 씨는 간호사출신이다. 구소련붕괴 후 한국과 외국종교기관들이 러시아전역에 쏟아져 들어올 시기이다. 하바롭스크 등 극동지역에도 무려 17개나 되는 한국계 종교기관이 주에 정식등록 후 적극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주헌 선교사는 1972년부터 20년간 미 버지니아에서 개인병원을 개업해 심장 내과전문의로 일해 온 독실한 개신교인이다. 이들 부부는 미 동부 버지니아 거주 때 교회창립멤버로서 한인침례교회를 세웠다. 그러다 잠시 미 의료생활을 접고, 93년 6월 미국 남 침례교단으로부터 의료선교사자격으로 러시아 현지에 파송된 것이다. 하바롭스크 의과대학을 방문 초빙교수도 겸직했다.

러시아 현지에서 이주헌 선교사(심장의)의 하바롭스크 선교봉사는 다른 어느 한인목사들보다 단연 돋보였다. 개인재력과 의술로서 당시 곤경에 처한 현지주민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기 때문이다. 곧 의인으로 소문이 났다. 현지에 침례교회를 세우자 환자와 러시아 교민이 몰려들었다. 그는 하바롭스크 의과대학에서 심장학을 가르치며 틈틈이 연구생활도 했다.

한편 교회선교를 통해 인근의 탈북벌목공들도 은밀히 도왔다. 어느 틈에 ‘탈북자 대부’, ‘탈북자 아버지’라는 소문이 퍼졌다. 당시 내 가까운 지인역시 하바롭스크선교사로 체류해 있어 현지내용을 전해줘 알게 된 사실이다.

선교사로서는 바로 코앞에 북한기관요원이 상주해 있는 상황에서 탈북자를 돕는다는 사실은 극히 위험스런 행위였다. 북측은 시베리아벌목장에서 탈출하는 벌목공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자, 탈북자를 돕는 한국교회들을 주목하게 된다. 북측은 자체조직으로 체포 조를 만들어 극동지역을 뒤지고 24시간 주변을 감시하던 시절이었다.

이주헌 선교사는 그러한 뒤숭숭한 분위기속에 만 2년 간 선교생활을 보냈다. 1995년은 마지막 선교활동을 마무리를 짓던 해였다. 그해 가을 선교사생활을 청산하고 미 버지니아로 귀향하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전인 3월 하순 마침내 우려됐던 참극이 발생한 것이다. 북한 측 소행으로 여겨지는 위장벌목공 짓으로 선교사부부가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다. 평소 이 선교사가 도와주던 위장탈북자로부터 당한 비극적 사건이었다.

 

▲ 하바롬스크 아무르강

 

1995년 마지막 선교활동 마무리 짓던 해

그해 가을 선교사생활 청산하고 버지니아로

귀향 계획 세워졌지만 3월 하순 참극 발생

북측 소행으로 여겨지는 위장벌목공 짓으로

선교사부부가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다

 

피의자인 송창근은 며칠 후 곧 체포됐다. 그는 이주헌 선교사가 집으로 불러 6개월 이상 성경을 가르치고, 매달 생활비 30만 루불과 옷가지 등을 챙겨주던 탈북벌목공이었다. 러시아경찰에 따르면 “송창근은 살해사건 후 살인현장을 배회하다가 불심검문으로 체포돼 심문결과 자신이 살인범임을 자백했다”고 밝혔다. 주변에선 송창근은 이중 스파이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러시아 경찰조사로는 범인 송창근이 ‘이주헌 선교사가 송을 한국에 보내준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어겨 실망 끝에 중국조선족 2명을 1백 달러씩에 고용해 청부 살인케 했다’고 실토했다는 것이다. 범인이 송창근 임이 밝혀지자, 교회주변에선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늘 돌봐주던 은인을 살해할 수 있느냐”고 경악했다.

그러나 일부 고려인 교인들은 “송은 처음부터 탈북벌목공이 아니었다”며 “그는 북한 프락치(스파이/공작원)로서, 북측은 그를 이용해 계획적이고 치밀한 청부살인을 도모케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러시아풍토는 소액비용으로 청부살인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송창근 자백내용은 러시아신문에도 공개됐다.

러시아 경찰 측도 “북한에서 제출한 70여명 수배자(탈북자) 명단에 송창근 이름이 없는 점, 러시아어가 능통하고 탈북도주자로서 두려움이 없는 점, 그가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 타 지역을 자유로이 다닌 점”등을 지적해 북한공작원으로서 정체성을 의심했다. 

또 러시아경찰은 살해현장인 이 선교사아파트에 상당액의 미화(17,000달러)와 귀중품(보석류 등), 신용카드와 여권 등이 그대로 남아있고, 집안집기 등이 정돈된 채로 있는 점으로 미루어 원한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단정했다.

 

▲ 하바롬스크 의과대학


피의자인 송창근은 며칠 후 곧 체포돼

그는 이주헌 선교사가 집으로 불러 성경을

가르치고, 매달 생활비, 옷가지 등을 챙겨주던

탈북벌목공…북측, 그가 자살해 시체 아연관에

실어 평양으로 송환 러시아에 통고, 사건 종결

 

당시 미국정부는 처음으로 미 국적시민이 러시아에서 피살된 사건이라 수사관계자를 하바롭스크에 보내는 등 무척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미 언론 등은 이 사건이 북한 특수부의 테러공격으로 간주했으나, 뚜렷한 증거가 없었다.

러시아 미 대사관의 진상규명요구로 러시아 측은 ‘특별조사팀’을 구성해 피의자를 어렵지 않게 잡았으나, 그 피의자를 북측에 곧 인계함으로서 사건이 미궁에 빠진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러시아 세고드냐 지등 일부 러시아 언론에서는 ‘북한인 살인범 석방’이라는 제호아래 사건담당이었던 하바롭스크 검찰청 강력계 여반장인 리디아 지야코노바의 처사를 비난한 기사를 본적이 있다.

북측은 송창근을 인계받자 얼마 후 ‘송창근이 곧 자살해 시체를 아연관에 실어 평양으로 송환했다’고 러시아 측에 통고하고, 사건을 종결시켰다. 당시 북한과 러시아 간에는 시체송환 때도 법의학적 심사나 세관검사 없이 자유로 왕래하는 관례로 돼 있었다.

또 시베리아 북한벌목장은 오랫동안 ’인권사각지대‘로서 러시아경찰도 손 못 대는 북한관할의 ‘치외 법권’ 권한지역으로 인정돼 왔다. 이주헌 선교사 피살사건으로 인해 하바롭스크 지역 내 한국 개신교회들의 탈북자와의 접촉과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고 전해졌다.

이주헌 선교사부부가 거주했던 미 버지니아 (버지니안 파일럿)신문에선 이 피살사건을 대서특필하고, 당국에 강력한 진상규명을 촉구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미 버지니아 한인침례교회에서는 이주헌 선교사 피살 후 담임목사가 하바롭스크를 방문했다. 그때 그 목사는 현지 러시아의 한 정보기관원으로부터 ‘현재 송창근이 북한에 들어가 훈장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나 모두가 추정일 뿐,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얘기만이 난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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