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탈북민 버스기사...보람 있는 일이기에 신바람난다[통일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 부천 여객주식회사 김금성 기사통일부 산하 기관인 ‘남북하나재단’으로부터 경기도 부천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된 탈북청년을 소개해 탈북민사회에 널리 홍보했으면 좋겠다는 것에 귀가 솔깃했다.
일반적으로 버스기사는 대부분 중년나이인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새파란 젊은이, 그것도 20대 후반이다. 과거 기자도 20대 후반에 여기 서울에 왔으나 ‘버스기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조차 못했으니 더욱 놀랐다. 여의도 커피숍에서 만난 취재원은 키가 185이상 되어보였으니 또 한 번 눈이 커졌다. 대부분 검고 거칠어 보이는 이미지이기도 한 북한청년의 느낌은 전혀 없었다. 서울태생이라고 해도 믿어질 것 같은 곱상한 청년이다. 부천시 여객주식회사 첫 탈북민 출신의 버스기사인 김금성 청년과 찻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대학에서 함께 공부한 동료들이 전공분야서 일하는 친구는 10명 중 1~2명...남한사회서도 대부분 보통 그렇다고 한다
- 왜 버스기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나? 무슨 일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 일도 어쩌면 내가 대학 때 배운 부분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동차과도 그렇지만 재난구호도 비슷하다. 버스이용객 중에는 바쁘게 내 버스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는가. 버스기사의 고객친절 정신도 생명안전을 제일로 하는 서비스정신에 기초한 것이다. - 취업을 어떻게 하였는가. 인터넷에 접속하여 직업채용 사이트를 보던 중 ‘버스운전기사 양성과정 참가자 모집 공고’를 접했다. 주무기관이 ‘남북하나재단’이어서 믿음이 갔고 좋았다. 이후 ‘남북하나재단’ 해당 관계자에게 전화를 했고 자세한 안내를 받게 되었다. 양성과정을 거쳐 작년 가을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여객주식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 전공과 현재 직업은 안 맞는데 그렇게 됐다. 처음에는 이런 현상이 나뿐인 줄 알았는데 주변에 너무 많더라. 대학에서 함께 공부한 동료들이 자기 전공분야서 일하는 친구는 10명 중에 1~2명이다. 남한사회서 대학졸업생들 전체가 보통 그렇다고 한다. 대학 때 배운 전공은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그 분야를 꼭 하겠다고 고집하면 시간낭비고 결국은 허무함, 허탈감으로 이어지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젊어서 배운 것은 언젠가 필요할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 다양한 자격증이 있던데. 1종 보통운전면허는 성년인 19살이 되자마자 취득하였다. 예전부터 자동차 애착이 누구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특수운전면허(트레일러, 구난차), 원동기(오토바이) 운전면허를 취득하였다. 모두 인명피해 예방 및 재난구조 등에 유용하게 쓰일 자격증들이다. 작년 4월에는 버스운전자격증(대형운전면허)을 취득했다.
직업채용 사이트서‘버스운전기사 양성과정 참가자 모집 공고’ 접하고 자세한 안내받아 기관이 ‘남북하나재단’이어 더욱 믿음이 가
특수운전면허(구난차), 원동기 운전면허 취득 인명피해 예방 및 재난구조 등에 쓰일 자격증
-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94년 량강도 혜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수도난방사업소 노동자, 어머니는 부양(주부)이었다. 2007년 고등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동시에 태권도학교(체육구락부)에 다녔다. 오전에는 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일반수업을 했고 오후에는 태권도학교에서 보통 4~5시간의 훈련을 했다. 오전에 다닌 학교도, 오후에 다닌 태권도학교도 모두 국가에서 운영하는 학교다. 북한은 남한처럼 사립학교가 전혀 없다. 내가 인민학교 3학년 즈음 아버지는 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가정의 경제생활이 어려워 어머니가 장사에 나섰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는 밀수를 하려 중국으로 갔다. 수개월이 지나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으니 나는 방랑아가 되었다. 시장과 철도역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근근이 살았다. 몇 끼씩 굶으니 눈이 캄캄해지더라. - 탈북경위가 궁금하다. 2009년 6월 1일 혜산시 압록강가로 동생친구와 수영하려 나왔다. 당시 김정일의 방침에 따라 삼지연, 보천보지역에 국경철조망이 쳐진다는 소리를 들었다. 혜산지역에는 다행히 철조망이 없었던 것도 어쩌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고 본다. 압록강에서 한창 수영을 하다가 문득 중국 쪽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들었다. 어머니가 식량 구할 돈을 벌겠다며 간 곳이니 혹시 가면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도 내가 강 건너 가보자는 제안에 선뜻 응했다. 중국에서 15살 미성년이니 중국 사람이 신고를 해서 공안이 와서도 몇 번 훈방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러던 중 어느 30대 부부가 나를 찾아오더니 함께 가자며 이끌었다. 성경책을 주며 공부를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기에 공부하겠다고 응했다. 동생친구는 안하겠다고 하니 나만 데리고 상해 쪽에 있는 이우라는 도시로 갔다. - 언제 한국으로 왔는가. 30대 부부는 남한출신의 선교사였다. 수개월간 몇몇 탈북자와 함께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중에 나처럼 한국으로 가려는 어느 탈북여성한데 ‘남조선’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사실과 남한실정에 대해서 소상하게 알게 되었다. 남조선 이야기는 들을수록 신기했고 정말 꿈나라 같은 소리로 들렸다. 이후 중국국경지역인 곤명, 매콩강이 흐르는 라오스를 지나서 태국을 거치며 시련의 강행군을 했다. 2010년 가을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눈물이 났다. 이곳에서의 교육 학업은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하나원(통일부 산하 탈북민정착교육기관)에 입소하면서 ‘한겨레학교’ 고1학년에 입학했다. 이후 서울에 있는 대안학교에 2년간 다님으로 고등학교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 여주대학 자동차과에 1학기 다녔으며 진로를 다시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천대학교 응급구조학과 4년을 졸업했다.
압록강에서 한참 수영을 하다가 문득 중국 쪽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어머니가 식량구할 돈을 벌겠다며 간 곳 가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어 친구도 강 건너 가보자는 제안에 응해
중국에서 15살 미성년이라 신고를 해도 공안이 와서도 훈방하는 것으로 그쳐
- 도중에 다른 대학으로 전학한 이유는. 북한에는 자동차가 많지 않다. 그러나 무척 인기 부문이다. 그래서인지 남한에 와서부터 자동차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달리 많았다. 자동차 관리부문에서 최고가 되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첫 대학선택을 자동차과로 결정했었다. 그러다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 인근 해상서 터진 ‘세월호’ 침몰사건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사고는 일상에서 뜻밖에 발생하니 재난구호, 위기순간에 목숨을 구하는 소방분야서 일하고 싶다는 결심이 들었다. 쉽게 한 생각은 아니다. 나는 탈북할 때 동생친구와 함께 압록강을 건넜다. 그런데 그 친구는 다시 북한으로 갔는지? 아니면 중국 어디에 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통 모른다. 가끔 그를 생각하면서 내가 친구의 몫까지 이 나라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감사의 보답이 ‘작은 봉사’임을 알고부터 너무 행복했다. - 운전하고 있는 버스를 소개해준다면. 운행노선은 부천-김포공항이다. 1회 왕복시간은 대략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사이다. 하루 평균 5~6회 운행하며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체계이다. 배차시간은 출퇴근시간에는 13분, 낮 시간에는 17분, 밤 시간에는 20분 간격이다. 첫차는 4시 20분에 출차하고 마지막차는 자정 1시에 입차한다. - 근무 중 어떤 때가 제일 힘든가? 버스가 운행 중 해당 정류장에 들어서면 일부 승객은 휴대폰만 보다가 승차해서 “아저씨! 이거 OO가는 버스 맞나요?” 하고 묻는다. 잘못 탄 것을 확인하고 내리는 승객은 더 얄밉다. 그 손님 때문에 운행시간에 지장을 받는 것이다. 술에 취한 손님도 문제다. 불필요한 질문을 하는데 고객의 안전을 책임진 버스기사는 고도의 안전감각으로 일하기에 방해가 된다. 늦은 밤 운행 중에는 간혹 만취한 손님이 음식물을 토하기도 한다. 그것을 치우는 것도 고역이다.
일부 승객은 휴대폰만 보다가 승차해서 “이거 OO가는 버스 맞나요?” 하고 물어 잘못 탄 것 확인하고 내리는 승객 얄미워 그 손님 때문에 운행시간에 지장을 받아
버스 정류장에서 탈 사람이라는 뜻에서 손들어 보이는 고객 무척 고맙게 느껴 탈 손님도 없는데 잠시 정차하고 가면 그만큼 시간이 낭비되기에 그렇게 생각
- 보람이 있을 때는 언제인가. 버스 정류장에서 자기가 탈 사람이라는 뜻에서 손들어 보이는 고객이 너무 고맙다. 아니면 다른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인지도 모르기에 기사로써는 무척 궁금하다. 탈 손님도 없는데 잠시 정차하고 가면 그만큼 시간이 낭비되기에 그렇다. 버스에 오르며 “기사님! 수고 많네요”, “아저씨! 수고 하세요”라는 승객들의 응원인사 한 마디에 마음이 뿌듯하고 정말 힘이 난다. 일터로, 집으로 향하는 행복한 시민들을 태우고 다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니 항상 즐거운 기분이다.
남과 북의 주민들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 하면서 나누고 베풀며 사는 삶이 있으면 어려운 북한 땅에서 고생하며 사는 동포들 고통에서 해방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
- 취업 준비생들에게 할 말은. 돈, 명예, 보람... 모두 사람에게 필요한 목표일 것이다. 개인적 생각인데 가령 돈만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 지겨울 것 같다. 사람은 무엇인가 사회에 기여하는 보람도 분명 있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는 것보다 얼마나 열심히 보람 있게 하는 일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맞다. - 바라는 소원이 있다면.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이 그리울 때가 가끔 있다. 통일은 안 되더라도 남과 북의 주민들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를 하면서 나누고 베풀며 사는 삶이 있으면 좋겠다. 어려운 북한 땅에서 고생하며 사는 우리 동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가끔씩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북한의 우리 부모형제들 제발 고통에서 해방되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림일 객원기자
============================================================================================= 버스운전기사 양성과정 참가자 모집 4월~ 12월까지 수시모집 형식 진행
탈북민정착지원기관인 ‘남북하나재단’(이사장 정인성)서는 올해도 버스운전기사 양성과정 참가자 모집 공고를 계속한다. 올해 4월부터 12월까지 수시모집 형식으로 진행하며 교육기간은 15일간(120시간, 1일 8시간, 9:00~18:00). 버스운전 교육장소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화성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삼존로 200)이다. 교육대상은 버스운전기사 취업희망자로써 만20세 이상부터 만60세 미만의 탈북민이다. 실업자는 특별히 우대하여 준다. 지원자격은 탈북민실업자 중 교육이수 후 해당분야 취업가능한자, 1종 대형면허증 소지자, 버스운전자격증 소지자, 결격사유 해당 없는 자다. 또한 1종 보통운전면허 경력1년 이상 소지자이며 2종 보통운전면허만 소지한 자는 신청불가다. 교육비, 숙박비(지방거주 대상), 운전연수비, 단기연수 지원, 1종 대형면허 취득비 지원(버스운전기사 양정과정 참가자만 해당) 등이 있다. 취업처는 경기도권 버스회사 중심 취업, 화성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서 협업된 운수업체 중심 취업이다. 신청방법은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남북하나재단’ 방문, 우편접수로 한다. 우편주소 - (우편 04168) 서울 마포구 새창로 7(SNU장학빌딩) 4층 남북하나재단 자립지원부 직업훈련 담당자 앞 - 이메일주소: soohyang@nkrf.or.kr 제출서류는 신청서1부, 개인정보수집·이용·제공동의서1부, 북한이탈주민확인서1부, 1종대형면허증 사본1부, 버스운전자격증사본1부, 운전경력증명서1부이다. 운전경력증명서는 접수서류 마감을 기준 한 달 이내 발급한 서류만 인정한다. 버스운전자격 취득방법은 운전정밀적합검사 신청(1577-0990) → 버스자격시험 응시(인터넷 포탈에서 ‘버스자격시험’ 검색 후 신청접수)이다. 운전정밀 적합검사를 사전에 적합 받아야 버스자격시험 응시가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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