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텅 빈 서울의 공포심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2/08/03 [23:31]

[모란봉] 텅 빈 서울의 공포심

통일신문 | 입력 : 2022/08/03 [23:31]

<박신호 방송작가>

여름 휴가철 텅 빈 서울 거리를 보고 있자면 갑자기 불안해지고 공포심이 밀려올 때가 있다. 잊고 싶은 악몽들이 덤벼들어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떨리기도 한다. 뿐만이 아니다. 비릿한 냄새까지 느끼기도 할 때가 있다. 내 뇌리에는 1950년 민족상잔의 잔영(殘影)이 사라지지 않고 문득문득 엄습해올 때가 있어서다.

6, 25 전쟁 당시 서울 한복판에 살았던 이들은 텅 빈 시가에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던 처참한 모습들을 곳곳에서 목격했을 것이다. 특히 9, 28 수복 시 괴뢰군들이 시가전을 벌인다고 곳곳에 흙 부대를 쌓아 놓고 시뻘건 눈을 부라리며 총구를 겨누고 있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시가는 죽은 듯했다. 강아지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이미 괴뢰군이 다 잡아먹어 없었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쥐 새끼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70여 년이 지난 오늘, 휴가철을 맞아 서울의 텅 빈 모습을 지워버리듯 시선을 돌리면 활기찬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이다. 언제나 해외여행객으로 붐비고 있는 모습이다. 텅 빈 도시의 공포심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철부지 모양 마음이 들뜬다. 언젠가 갔었던 해외 나들이가 떠오르며 미소를 짓게 된다. 간사하고 얄팍한 속내가 금세 드러난다.

여행이란 고통과 괴로움이라고 한다. ‘집 나가면 개고생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서 만이 아니다. 여행을 뜻하는 단어 ‘트래블’의 어원이 서양 중세의 ‘트라바유’에서 고통과 괴로움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교통편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라 여행이 고통과 괴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느 해였던가. 동해해수욕장에 갔다가 귀가할 때였다. 길이 막히니 밤늦게 떠나는 게 좋을 것이란 말을 듣고 밤 10시경에서야 설악산 콘도에서 떠났다. 웬걸, 단 몇 분도 못가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교통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운전대를 수없이 주먹으로 내리치기 몇 번 만인가에, 12시간 만에 강원도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고생은 잊을 수가 없다. 생생한 기억이기에 여름 휴가철이면 그때를 들먹이게 된다. 

“휴가철이라고 해외여행 한 번 선 듯 가자고 하지 못하면서 주절주절 무슨 변명을 그리 늘어놓긴 늘어놔요!?”

하루하루가 민망할 때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별로 전화를 하지 않던 후배다. 반갑게 받았다. 수인사가 오가자 후배가 머뭇머뭇 전화를 건 뜻을 말한다.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인데 오래전부터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방송 팬’으로 보고 싶다는 거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30년 동안 인기 프로였던 5분 드라마 ‘김삿갓 북한방랑기’를 15년 동안 3000회 이상 집필한 작가가 아닌가. 궁금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후배의 말은 그게 아니었다. 성우(聲優)팬으로 보고 싶다는 거다. 성우라면 드라마 작가로 등단하기 전인 60년대에 한 10년 동안 한 것뿐이다. 그것도 주역을 맡아 본 적도 별로 없었는데 만나보고 싶어 한다니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속을 하고 나갔다. 노인이 나타났다. 80살이라고 했다. 그때 학생이었는데 라디오를 끼고 살아서 박신호 선생을 잘 안다고 했다. 저간의 얘기를 들어보니 많이 알기도 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새마을 운동’이 떠올랐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국책사업으로 새마을 운동을 대대적으로 일으키고 있었다. 그 바람에 방송 종사자들이 전국의 시골 구석구석을 다녀보는 기회가 생겼다. ‘깡촌’을 다녀보니 신성일은 잘 몰라도 이창환이를 알아줬고 엄앵란보다 고은정이 스타였다. 그 덕에 나도 잠시 성우의 보람을 느껴봤었다.

이 무더운 여름에 뜻하지 않은 팬의 초청으로 맛있는 민어 매운탕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텅 빈 서울이 그토록 가슴 아프게 하더니 올드팬 덕분에 즐거운 한여름을 새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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