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하기가 두려운 세월

박신호 방송작가 | 기사입력 2023/06/05 [16:49]

전화 하기가 두려운 세월

박신호 방송작가 | 입력 : 2023/06/05 [16:49]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번호를 알기 위해 이름을 찾았다. 가나다순으로 찾던 손가락이 가다가는 멈칫멈칫했다. 명단에서 지워야 할 이름이 그냥 남아 있어서다. 그동안 이렇게나 많이 타계했단 말인가? 본 김에 지워 버릴까 하다가 나중에 지우기로 하고 다시 후배 친구 이름을 찾았다. 전화번호를 찾은 지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본 지는 몇 년 됐고 통화한 지도 3~4년은 족히 됐을 것이다. 선뜻 전화번호가 찾아지지 않았다.'

 

▲ 박신호 방송작가     ©통일신문

한때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만났다. 절친한 사이였다. 방송국 TV PD도 지냈고 지사 사장도 지낸 그와는 만나는 장소가 술집이었다. 술도 어지간히 좋아했다. 어느 때는 잔뜩 취했어도 심야에 집까지 찾아와서는 술병을 내밀며 마시자고 했다. 그런 후배 친구 사이인데도 선뜻 전화 걸기가 두려운 이유가 있었다. 몇 년 전에 병이 더 나빠져 혼자 걷지도 못한다는 소식을 들어 그동안 더 나빠졌으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신호음이 길게 가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이 스쳐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받지 않았다. 순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만 불길한 생각을 누르며 그 친구와 지낸 지난날을 떠올려 본다. 마침 가까이 살아, 작가와 PD라는 관계를 넘어 서로 부담 없이 교류했다. 물론 작가와 PD 관계로 엮으면 자유스럽지 않을 수 있었으나 당시 내 본업이 공무원이기도 했기에 개의할 필요가 없었다. 부부와 여행도 다니며 친하게 지냈다. 흉금을 털어놓았다. 그런 사이이건만 막상 그가 깊은 병으로 눕고 보니 만나기는커녕 간혹 전화 걸기도 두려워진 것이다. 너나없이 늙으면 병 소식만 들어도 두렵고 무서운 게 자연스러운 건가?

 

 

전화 건 이틀 후에 의외로 친구 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 아닌가?

안녕하셨어요?”

의외로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반가움과 고마움이 밀려왔다. 친구와 전화를 바꿨다. 어눌한 말투가 병세는 더 나빠졌다. 그래도 친구는 통화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인생을 달관한 사람 같았다.

어쩔 거유. 받아들이구 살아야지요. 흐흐흐

 

위로랄 수 없는 얘길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순간 탄식이 흘렀다.

(우리 모두, 여정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구나)

오고 가는 게 인생인데 그나마 전화라도 제대로 나누며 살면 좋으련만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 왠지 모를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오늘도 또 그랬다. 70여 년이나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 친구는 전화를 걸 때마다 첫마디가 똑같았다.

 

신호야, 고독하다. 너무 고독하다!”

처음에는 이 첫 말에 말문이 닫혔다. 부인이 어찌 되셨나? 가족 중 누가 불행한 일이라도 있었나? 아니면 이 친구가 너무 견디기 힘들어...

고독하긴 왜 고독해?”

고독해. 너무 고독해. 하루 종일 할 것도 없어

부인과 자식 셋 중 한 아들과는 같은 지붕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부인과는 밥 먹을 때만 얼굴을 보고는 할 말도 없어 금방 제 방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간단다. 그러니 고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할 말이 있어야 말을 하지. 매일 하는 거 없이 지내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노?”

설상가상으로 귀까지 어둡다. 보청기를 했다가 팽개쳐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엉뚱하게 제 말만 늘어놓기 일쑤다.

 

 

고독하다, 고독해. 너무 쓸쓸해...”

나이 89세이니 고독할 만한 나이인가?

신문에서 이런 설문을 봤다. “당신은 몇 살까지 살고 싶은가?” 50%“100세까지 살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인생을 즐기고 싶어서31,9%였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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