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북송 재일 교포의 증언’

제83차 (사)물망초 인권 세미나 개최

송두록 기자 | 기사입력 2023/11/20 [18:30]

‘최초로 북송 재일 교포의 증언’

제83차 (사)물망초 인권 세미나 개최

송두록 기자 | 입력 : 2023/11/20 [18:30]

()물망초(이사장 박선영)는 국군포로들의 북한에서의 생활을 생생하게 듣기 위하여 함경북도 유선탄광에서 석탄을 캔 북송 재일교포인 이상봉 씨를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한다1121일 오후 230분 프레스센터 18(서울클럽)에서 진행하되는 이상봉씨의 이번 세미나 발표내용 중 일부를 발췌했다.

 

 

1989, 1990년 사이에 있었던 날이다. 키가 크고, 머리도 크고, 목청도 큰 꺾다리였다. 머리도 좋아 그 힘든 채탄공을 하면서도 야간에 기능공학교를 2년 동안 다녀 최우등졸업을 했다. 국가기능공 자격1급을 받아 기계설계원이 됐다. 체구는 컸어도 천상 학자스타일이었다.

뭐든지 열심히 하던 그는 말이 없었지만, 4-5년 같이 지내다 보니 언젠가는 내게 일본말로 이런 말을 하더라. "할아버지, 아버지, 나 이렇게 3대가 큰 한옥집에 살 때 머슴이 9명이나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승식. 국군포로였다. 집이 부자였던 것 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아버지가 브로커를 통해 여러 탄광을 뒤져 함경북도 회령에 있는 유선탄광에서 그를 찾아냈고, 아들 며느리 손주 등 3명 등 5명을 탈북 시키는데 성공 했다. 그 사실도 우리는 전혀 몰랐다.

어느 날부터 안 보였고, 브로커가 다녀갔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두어 달 후 그가 중국에서 붙잡혀 강제북송 돼 유선탄광으로 돌아와 유선강가 자갈밭에서 공개 처형되면서 우리는 그 사실을 알게 됐다.

1960, 17살 때 부모님과 함께 북송선을 타고 '지상천국'이라는 북한으로 간 내가 유선탄광에 탄을 캐러 갔을 때는 600명이던 국군포로가 사고와 질병 등으로 다 죽고 90명 정도 있었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곁을 잘 내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형님, 형님, 하면서 친해진 몇 명에 대해서 말해보겠다.

 

이상은 북송 재일교포 이상봉 씨가 증언한 "함경북도 회령시 유선탄광에서 만난 국군포로들"의 일부 내용이다.

 

83차 물망초 인권 세미나는 물망초 국군포로 송환위원회 정수한 위원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하고, 북송 재일교포 이상봉(가명)씨가 함경북도 탄광 포로들의 삶을 증언할 예정이다.

 

평양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본의 아니게 함북오지의 국군포로 밀집지역인 경원탄광에서 20년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국군포로를 만난 탈북민 1호 약사인 강춘녀(가명)님과 국군포로 증언집 아무러 데리러오지 않았다를 출간한 물망초 국군포로 송환위원회 이혜민 위원이 토론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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