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게 무료하다는 건 고문을 하는 거나 다를 게 없다. 공허만이 가득 맴도는 공간에 하루 종일 홀로 있다는 건 고문이나 다를 바 없다. 평생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그만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라는 뜻도 있으련만 하릴없이 산다는 건 고문을 하는 거나 뭐가 다를까 싶다. 이건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홀로 마무리하라는 뜻이 아닌지, 인생의 종착역은 끝내 외로움과 마주하다가 가라는 건 아닌지. 노인을 방황하게 만든다. 노인은 모자를 집어 들었다. 언젠가부터 외출할 때면 으레 찾아 쓴다. 그러곤 텅 빈 거실을 한 번 훑어보고는 집을 나선다. 갈 곳이 따로 없다. 먼 길도 가지 못한다. 차를 타고 가도 오래 가지 못한다.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늦은 오후의 지하철은 앉을 자리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노인은 계속 따라다니는 잡념을 떨쳐버리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네이버를 친다. 전화 온 것 없고 카톡도 없는 화면에 어제 보다가 만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치장한 백화점 사진이 나타났다. ‘서울 명동 회현 지하 쇼핑센터 1번 출구 앞’이란 글자도 보였다. “벌써 세밑인가...”
차창 밖은 어느새 어둠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노인은 깜박 잊었다는 듯이 황급히 내렸다. 출구로 나오자 휘황찬란한 불빛이 앞을 막았다. 불빛을 헤치고 보니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신세계백화점이었다. 백화점 외벽을 거대한 스크린으로 만들어 크리스마스 판타지 극을 펼쳐 보여주고 있었다. 생각 없이 영상을 보던 노인은 갑자기 힘이 풀리며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지쳐서도 아니고 백화점 벽에 흐르는 불빛 영상에 압도당해서도 아니다. 지난날 잿빛 건물이 떠올라서였다.
수복한 지 얼마 안 된 1952년 서울 거리는 불에 타다 만 앙상한 벽돌 건물들이 여기저기 힘들게 버티고 있었고 거리는 사람도 별로 보이지 않아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노인은 소년으로 돌아가 있었다. 6, 25전쟁이 나기 직전에 다니던 학교가 미쳐 올라 오지 못해 갈 곳 없는 중학생 소년이 되었다. 어느 날 소년은 동네 친구의 손에 끌려 동화백화점 앞거리에 갔다. 백화점은 언제부터인가 미군 PX로 변신해 있었다. 끼니가 없는 시절이다. 한 푼이라도 벌이가 될 것이 있으면 불덩이 속에라도 뛰어들 절박한 때였다. 친구는 가만있어 보라고 했다. 재수 좋으면 단 한 번에 한 달 먹을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몇 번이나 그게 뭐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끝내 PX 앞까지 갔다. 주말의 그곳은 딴 세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 사는 곳이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고 길가에는 목판 장사꾼들이 즐비했다. 더 놀라운 건 거리를 메우다시피 한 사람들이 모두 덩치 큰 외국군들이었다는 거다.
친구가 소년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으로 앞을 가리켰다. 흑인 미군 바지 뒷주머니였다. 거의 반은 나와 있는 두툼한 지갑이 눈에 들어왔다. 놀라 친구의 얼굴을 보자 그는 찡끗하더니 잽싸게 미군 뒤를 따라붙는 것이었다. 소년은 우뚝 섰다.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사건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한 달 치 식량이 순식간에 잡혔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친구는 눈 깜짝할 새 길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노인은 근처에 있는 한국은행으로 가 돌난간에 앉았다. 이미 화려한 영상을 자랑하던 백화점은 사라지고 회색빛이 감돌던 옛날 동화백화점이 들어섰다. 그리고 조용히 교향곡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비창’ 1악장 주제가 가슴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교향곡인지 가늠도 안 된다.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서울 명동은 어느덧 문학청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에 끼니도 걸은 얼굴로 다방에 종일 죽치고 앉아있었다. 그런 중에도 동화백화점 맨 위층에서 열린 음악 감상회에는 만원이다시피 했다. 실존주의 철학 바람이 불고 있을 때여서 ‘비창’에 더 갈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고즈넉한 목소리로 들려주던 계정식 의학박사의 해설에 모두 심취했다. 굶주렸어도, 지치고 지쳤어도 ‘비창’ 선율에 빠져들었다. 중학생이던 소년은 고등학생 청소년이 되어 심각한 얼굴로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밤은 이미 깊었다. 노인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계 박사의 얼굴에 겹쳐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얼굴이 보였다. ‘비창’은 계속 흘렀다. 아직 갈 길이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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