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공무원은 정권이 교체되어 이전 정부와 다른 지시를 내릴 때 어떤 길로 갈 것인가? 옳은 길로 가야 한다. 그래야 일시적으로 불이익을 겪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승리하게 된다. 옛날이야기지만,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는 인물, 대조적인 두 인물의 사례를 보자.
정충신은 임진왜란 때 적진을 뚫고 사명을 잘 수행해 대신 이항복에게 발탁되어 무장이 된 인물이다. 믿을 만한 무장이라 일본과 후금을 다녀오는 등 군사 정세에 밝았다. 한명련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임진왜란 2년차에 역사에 등장했다. 매우 잘 싸운 것 같다. 명나라군 제독 마귀가 왜적을 잘 사살한다고 극찬했다. 선조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궁궐 숙위 오위장에 임명할 정도였다. 이 둘의 운명이 바뀐 것은 이괄의 난 때였다.
1624년 1월 한겨울에 부원수 이괄이 난을 일으켰다. 반정을 해서 옹립한 인조에 불만을 가지고 무력으로 정권을 잡고 다른 왕을 추대하려고 했다. 이괄은 수하의 1만 2천여 군사를 거느리고 평북 영변에서 출격했다. 가는 길에 북방에 있던 정충신과 한명련을 포섭하고자 했다.
박명련은 이괄에 붙었다. 부장이 되어 이괄을 도왔다. 반면, 정충신은 조정에서 혹시 이괄에게 붙을까봐 우려했지만, 도원수 장만의 지휘부로 가서 진압군에 섰다. 박명련은 잘못된 길을 갔다. 패전하고 쫓기다가 부하들에게 죽었다. 한때의 용사가 역적이 되어 패가망신했다.
정충신 장군은 한양성 밖 안산에서 이괄 군을 격파하는 대공을 세웠다. 백사 이항복이 스승이자 은인이었다. 그는 올바른 길을 감으로써 영예를 누리고 무장으로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또 다른 예로, 고려 말 문과시험에 각각 장원급제한 신흥 사대부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명문대가의 아들인 염흥방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시골의 한미한 가문의 정몽주였다. 둘은 성리학으로 백성을 가르치고 원나라 대신 신흥 명나라와 수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공민왕이 시해당하면서 외교노선이 뒤집혔다. 권문세족이 권력을 잡고 옛날처럼 원나라와의 국교를 유지하려고 했다.
둘은 반대하다가 다른 신흥 사대부와 함께 유배 갔다. 각각 다른 유배지에 간 둘은 외톨이가 되어 여러 가지 고민을 많이 했다. 인생에 있어 무엇이 현명한 건지 골똘히 생각했다.
입바른 소리를 해서 유배 왔다고 생각한 염흥방은 풀려나자, 도움이 안 된 사대부를 멀리하고 권력자들과 어울렸다. 권문세족으로서 토지를 겸병하여 백성들의 원망을 사면서도 잘못인 줄 몰랐다.
염흥방은 권문세족의 횡포와 폐단에 분노한 최영장군과 이성계장군에게 잡혀 죽었다. 그만 죽은 것이 아니었다. 패가망신했다. 반면, 정몽주는 승승장구, 재상인 수시중을 하다가 절개를 지켜 만고의 충신이 됐다.
다시 돌아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탈북민을 강제 북송한 사건을 보자. 지금 생각해보면,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 헌법위반, 불법인데도 국민은 제대로 알지 못해 막지 못했다. 법적 근거도 없는 탈북민을 파는 행위, 국민을 포기하는 행위는 국가가 저지를 수 없게 되어 있다. 저지르면 안 된다. 불법이다.
그러므로 공직자는 상급자가 이런 일은 지시하면 이행하면 안 된다. 공무원이 하수인이 아니지 않은가. 지식과 경험도 많은 공무원이 불법을 저지르는 데 가담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상명하복의 군대 조직도 아닌데 왜 불법적인 지시를 따랐는가? 저항하고 거부해야 한다. 정충신, 정몽주의 사례처럼 옳은 길을 가야 한다. 한순간의 판단이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앞으로 공직자는 불법행위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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