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 마약류 사범 비율 높아..."북한에서의 습관 못버린 것"[인터뷰] 비영리단체 유엔마약감시단 김미해 회장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민들은 자유를 만끽하는 기쁨과 동시에 그 자유 때문에 각종 범죄에 휘말릴 수 있는 환경을 접하기도 한다. 최근 법무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각종 범죄를 저지른 탈북민은 812명으로 조사되었다. 이중 마약관련 범인이 264명으로 전체의 32.5%에 해당된다. 결코 작은 숫자라고 볼 수 없다. 6년간 해마다 50명가량의 마약류 범인이 발생했다는 통계이다. 경기도 시흥에서 비영리단체인 ‘유엔마약감시단’ 김미해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탈북민들은 왜 마약에 손을 많이 대나. 북한에서 가졌던 생활습관이라고 본다. 2005년경부터 일반주민들도 마약을 찾는 바람이 불었고 5년 뒤에는 절정에 달했다. 탈북민 가운데 약 10%가 북한서 마약경험이 있는 걸로 조사된 자료도 있다. 북한가족에 대한 죄송함, 그리움, 낯선 환경에 대한 외로움과 불안함,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마약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 특별한 사례가 있었다면 어떤 것인가. 남한사람들과 달리 탈북민 마약사범 가운데 절반 이상은 60~70대이다. 과거 북한서 마약을 해본 경험이 있은 걸로 보인다. 그 ‘달콤한 유혹’에 다시 빠진 것으로도 추정된다. 우리 단체는 OO시 XX구에 거주한 마약전과가 있는 탈북노인(70대) 자매를 상담해 생활치유센터로 안내해 주었다. 그 중 한 명은 재범이었고 다른 한 명은 올해 마약치료가 완료되어 센터를 퇴소하였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탈북민 대상 마약예방 교육은 어떻게 하나. 현재 ‘하나원’(탈북민정착교육기관)의 정규교육 400시간 중 마약류 준법교육은 120분, 범죄피해 구제사례 120분, 중독예방교육 60분 등 모두 5시간으로 약 1% 수준이다. 더구나 ‘하나원’ 졸업거주지 전입 탈북민에 대한 초기집중 교육(8일, 50시간)과 지역적응 훈련에 법률지원 및 상담이 있지만 마약관련 프로그램은 전혀 없다.
북한에서 가졌던 생활습관...2005년부터 일반주민들도 마약을 찾는 바람이 불었고 5년 뒤에는 절정에 달해..탈북민 가운데 10%가 경험이 있는 걸로 조사된 자료도
가족에 대한 죄송함, 그리움, 낯선 환경의 불안함, 경제적 어려움이 마약을 찾는 원인
- 문제 해결 대안은 어떤 것인가. 한국에 처음 들어와 의무적으로 입소하는 하나원에서 그리고 사회로 나와서 보충교육 하는 탈북민 대상 프로그램에 마약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예방하는 교육을 꼭 확충시켜야 한다. 탈북민들이 북한에 있을 때 자의든 타의든 마약류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고려해 마약류 관련 교육시간과 내용을 현실성 있게 해야 한다. - 북한서 마약 실태는 어느 정도인가. 사실 북한주민들은 마약이 나쁘다는 인식조차 안 된 실정이다. 국가서 외화벌이로 제조·유통되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마약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 마약을 복통, 두통, 뇌·심장질환, 신경통에 약으로도 쓰인다. 일명 ‘얼음’으로 불리는 마약은 개인이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비싸지도 않다. 희귀품, 인기상품이다 보니 일상에서 사람들이 가까운 사람이나 상급 간부들에게 뇌물로도 사용하고 있다.
현재 ‘하나원’ 마약류 준법교육은 120분 자의든 타의든 마약류에 노출됐다는 사실 고려해 교육시간, 내용 현실성 있게 해야
- 마약 단속을 강하게 하던데. 물론이다. 북한주민들의 약 70~80%가 마약을 하던, 그래서 최고절정기에 올랐던 2010년 가을, 함흥에서 마약범 6명을 군중 앞에 세워놓고 공개적으로 총살했다. 그때뿐이다. 너무나 경제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순간이나마 행복한 기분을 갖고 싶어 마약을 찾고 또한 그것이 돈벌이가 되니까 만들어 파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64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OO구역 당일군이었다. 내가 12살 때 순직하였고 그로인해 우리는 ‘애국열사자가족’이 됐다. 1980년 보안서(경찰서)에 입대하였다. 5년 뒤 평양에 있는 인민보안성(경찰청) 정치대학(경찰학교)에 입학, 1989년에 졸업하였다. 이후 청진시 OO구역 보안서 간부(인사)지도원으로 배치되어 18년간 근무했다. 이후 제대하여 민간인으로 보안서 관련 일을 계속했다.
- 탈북 계기는 무엇인가. 막내딸이 먼저 탈북하여 한국에 와서 전화로 나를 ‘사상개조’했다. 결국은 딸 때문에 우리 가문은 이제 영락없이 감옥에 갈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러자 막내딸이 “엄마! 그깟 ‘애국열사자가족’은 아무것도 아니야. 여기로 온 수만 명의 탈북자 가족친척 중에는 우리보다 더 토대가 좋은 가족도 많다”고 하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고 그렇게 6개월이 지나서야 내 마음도 열렸다. 2011년 5월 압록강을 건넜다.
-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였는가. 그해 12월 하나원을 수료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경기도 시흥에 있는 재단법인 한국지도자아카데미 경리부에 입직, 7년간 근무했다. 이후 딸과 개인사업을 수년간 했고 지금은 단체운영 활동에 전념한다. 2020년 1월 ‘위드퍼스트’ 탈북민단체를 설립했다. 탈북민 정착도움, 한부모가정 및 독거어르신 지원 등 봉사활동이다.
2020년 1월 ‘위드퍼스트’ 탈북민단체 설립 한부모가정 및 독거어르신 지원 등 봉사활동 30%가 남한사람이고 70%가 탈북민... 본부는 경기도 안산에 있으며 서울양천, 군포, 화성, 평택, 제주 등 전국에 8개 지부 설립돼 있어
- 귀 단체를 소개해준다면. 기존에 있던 단체이름을 작년 8월 ‘유엔마약감시단’으로 개명했고 올해 3월 대표회장으로 취임했다. 전체 회원은 140명이고 그중 80명은 탈북민이다. 함께 어울리자는 취지에서 30%가 남한사람이고 70%가 탈북민이다. 본부는 경기도 안산에 있으며 서울양천, 군포, 화성, 평택, 제주 등 전국에 모두 8개 지부가 있다. 회원들 모두가 한 집안 식구처럼 화목하고 열성적이다. 그래서 늘 감사한 마음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뭔가.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을 담보로 죽음의 문턱까지 넘어 온 용감하고 의지가 강한 탈북민들이다.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탈북민들이 마약을 하는 것은 미련하고 바보스러운 행위이다. 무시무시한 총구를 뒤로하고 죽기 살기로 압록강·두만강을 건널 때를 잊지 말라. 그걸 망각하고 마약 범죄자가 되면 고향의 무모형제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고 독재자 김정은이 좋아할 노릇이다.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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