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15일, 북한은 김일성의 생일을 기념하며 다채로운 행사로 들썩인다. 2025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평양에서는 사탕과 과자 조각 전시회가 열렸고, 영화 상영 주간, 전국 서예 축전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펼쳐졌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평양 화성지구의 대규모 주택 준공식에 참석하며 민생 행보를 보이는 모습은 눈길을 끌었다.
한편, 북한 신문방송 매체들은 주민들이 만수대언덕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꽃을 바치고,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참배하며 선대 숭배를 예전처럼 하고 있다며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엇갈린 시선, '태양절' 명칭 축소 논란
그러나 북한 TV의 요란한 보도와는 달리, 이러한 김일성 생일 기념행사는 국제 사회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교황의 장례식이라는 굵직한 이슈에 묻히거나, 매년 반복되는 행사에 식상해서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취재가 자유롭지 않아서일 수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 언론의 시선은 북한이 김일성 생일을 지칭하는 용어인 「태양절」 사용 빈도수의 변화에 집중되었다. 과거에는 ‘태양절’이라는 명칭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 들어 ‘4월의 명절’이라는 표현 사용 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북한관광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고려투어는 북한으로부터 ‘태양절’이라는 명칭의 단계적 폐기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북한은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주민들에게 내부적으로 지시했다. 그래서인지 평양 시내 곳곳의 선전물에서도 ‘태양절’ 대신 ‘4월 명절’이나 ‘4.15’라는 표기가 확인되었다.
김정은의 감춰진 의도, 선대 우상화 축소인가 홀로서기인가
이러한 ‘태양절’ 명칭 사용 감소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선대 수령에 대한 과도한 우상화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조부와 부친의 후광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시도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4월 16일 2021년 이후 4년 만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그런 의미에서 생일에 대한 명칭과 별개로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에 대한 선전은 과거와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 특이한 것은 과거 왕조시대나 20세기 초 독재국가에서 현직 지도자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선대의 생일을 매년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이례적이긴 하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1925년 이후 소련의 스탈린이나 1939년 이후 나치 독일의 히틀러 역시 자신의 생일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며 개인숭배에 활용했을 뿐, 선대의 생일을 국가적인 행사로 격상시키지는 않았다.
기념방식에서 미세한 변화... 실용주의와 전통의 부활?
그렇다면 왜 북한은 김일성 생일 기념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통일부의 분석처럼,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수용성을 고려하여 유연하게 정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김정은이 김일성 대신 태양이 되고 자기 생일날을 태양절로 만드는 단계일까?
만약 그렇다면, 김정은이 스스로 북한을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고 조부, 부친을 능가하는, 더 위대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는 것인데,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하다.
향후 북한의 행보를 봐야 알겠지만, 미리 예단하기는 이르다. 좀 더 안전한 해석은 김정은 시대의 기념 방식이 아버지 김정일 시대와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김정일은 자신의 이해관계로 인해 만수대언덕의 거대한 김일성 동상과 평양 개선문, 주체사상탑 같은 기념비를 건립해 아버지의 업적을 기지만, 김정은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보는 듯하다.
보통의 경우처럼 선대의 생일은 기억하며 재활용을 계속하면서 자기 후계체제, 즉 집권의 정통성을 확고히하는 데 활용하는 한편, 자기 자신이 민생에 기여하는 모습을 더 부각시키고 싶었던 듯하다. 김정은이 4월 15일 화성지구의 대규모 주택 준공식에 참석한 것이 그 예다.
더욱이 이미 설과 추석 등 전통 명절이 부활되고 배급제가 아닌 점 등으로 죽은 김일성의 생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던 점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결국 ‘태양절’이라는 낯선 이름 대신 ‘4월의 명절’이라는 익숙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김정은 시대의 실용주의적 통치방식과 변화된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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