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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북정책은 오랜 시간 핵 문제 해결에 집중되어 왔다. 제재 강화와 협상 압박, 그리고 제한적 인도적 지원은 외교의 주요 수단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형화된 접근은 북한 내부의 복잡한 현실, 특히 지난 30여 년간 조용히 진행되어온 ‘시장화’라는 사회적 지각변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북한은 더 이상 단순히 ‘통제된 계획경제 국가’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시장은 이미 체제 내부에서 하나의 생존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곧 체제 하부의 비가시적 변화이기도 하다. 문제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이 변화를 대북정책 수립 과정에서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장마당의 기원과 확산...변화 시작
1990년대 후반, 공공배급체계의 붕괴는 북한 주민들에게 단 하나의 해법을 제시했다. 사적 거래 그렇게 자생적으로 등장한 ‘장마당’은 정부의 공식적 승인 없이도 빠르게 확산됐다. 현재는 식량, 약품, 생활필수품에 이르기까지 주요 생계 기반이 되었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70% 이상이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비공식적인 경제 활동이야말로 북한 사회를 떠받쳐온 실질적 기반이 됐다.
특히 주목할 만 한 점은 세대의 변화다. 배급보다 거래를 먼저 배운 젊은 세대, 이른바 ‘장마당 세대’는 사적 경제 활동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성공한 사업가를 꿈꾸며, 국가에 의존하기보다는 자립을 선택하고 있다.
제재가 놓친 현실...시장 억누르면 역효과
미국의 제재 정책은 북한의 외화 수입원을 차단하는 데 주력해왔다. 천연가스 수입, 석탄·광물 수출, 전자제품 반출 등은 모두 제재 대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장마당의 시장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된다.
일부 제재는 오히려 시장을 위축시키고, 다시금 주민들을 정부 배급 체계로 회귀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예컨대 2009년 화폐개혁 실패 이후 북한은 부분적인 달러화를 경험했다. 당시 주민들은 자국 화폐를 불신하고 외화를 거래 수단으로 사용했으며, 지금도 이중 가격 체계는 계속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시장을 완전히 억누르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동시에 외부 제재가 시장의 자율성과 성장 기반을 약화시켰다는 점에서 미국의 전략적 재고가 필요하다.
하향식 개입서 상향식 지원으로 전환
현재 대부분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부를 거친다. 그 결과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돌아가는 효율은 낮고, 정부의 통제력만 강화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너무 많은 지원의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어느 경제학자의 말처럼, 단기적 지원은 때로 장기적 생산성과 자립을 저해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싱가포르 기반의 ‘조선익스체인지(Choson Exchange)’는 2009년부터 정치적 목적 없이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및 경제 교육을 제공해왔다. 이러한 비정치적·비공식적 접근은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자생적 경제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
미국 내 NGO와 시민사회도 북한의 내면적 변화를 이해하고, 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탈북민의 증언, 실증적 자료, 현장 기반 분석을 바탕으로 북한의 시장화 현상에 대한 연구와 교육, 정책적 조명이 이뤄져야 한다.
북한 정권은 여전히 주체 이념을 내세우며 시장을 공공연히 부정하고 있지만, 내부의 실상은 그와 다르다. 주민들은 북한 수뇌부가 하지 못한 개혁을 조용히 해내고 있다. 거래는 통제를 이겼고, 자립은 배급을 넘어섰으며, 조용한 혁신은 체제를 조금씩 흔들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제재와 협상에만 몰두하는 미국의 정책은 더 이상 실효적이지 않다. 북한을 ‘체제’가 아닌 ‘사람’으로 바라보는 정책 전환, 상향식 경제변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외교 전략이 절실하다.
북한은 지금, 내부에서부터 바뀌고 있다. 그 변화의 물결을 정책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미국의 전략은 또 한 번 허공을 향한 외침에 그칠지도 모른다. *외부원고는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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