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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과학탐험과 생태보존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북극이 이제는 거대한 지정학 경쟁의 전장이 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공세가 격화되면서 북극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고, 기존 질서를 유지해온 북극이사회조차 기능정지상태에 빠지고 있다.
이 같은 국제질서의 흔들림은 단지 북극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북극에서의 입지를 재정비하는 일은 북한 문제 대응에 있어서도 중요한 외교적 기반이 될 수 있다.
한국은 2002년 스발바르 제도에 다산기지를 세운 이후 북극에서의 존재감을 꾸준히 키워왔고, 2013년에는 북극이사회 상시참관국으로 등록됐다. ‘극지활동 진흥법’ 제정과 ‘극지활동 기본계획’ 수립을 통해 북극·남극을 아우르는 전략 체계를 갖췄다.
최근에는 차세대 쇄빙연구선과 남극 내륙기지 건설계획 등 실질적 사업도 추진 중이다. 이러한 행보는 과학기술에 기반 한 ‘극지 중견국’으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극 질서는 큰 변화를 맞았다. 러시아와의 공동 프로젝트는 중단됐고, 한국 조선업체들의 북극 관련 계약도 제재로 인해 무산됐다. 전통적 파트너였던 러시아와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한국은 북극 외교 전략의 방향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유럽 국가들과의 협력은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다.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은 북극 거버넌스, 지속가능성, 기술혁신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 잠재력이 크다. 최근 몇 년 사이 방산 협력(K9 자주포 도입), 우주 산업 협력(극궤도 위성 발사), 해양 감시·통신 협력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외교 차원을 넘어 실질적 전략 파트너십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북극에서의 한-북유럽 협력이 단순히 북극 이슈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북극 협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중견 파트너들과의 안보·기술 협력을 다져나가는 일이다.
동북아 안보의 중요한 축인 북한 문제 대응에도 긍정적 파급 효과를 줄 수 있다. 위성 감시, 극지 통신망, 자율 시스템 등의 기술 협력은 북한의 군사 활동 모니터링, 전략적 억제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협력을 제도화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한국은 북유럽 방위협력체(NORDEFCO)와의 연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합동 군사훈련, 학술 교류, 북극 공동연구 등을 통해 실질적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북극에서의 협력은 한반도 안보 전략의 일부로 기능할 수 있다.
북극은 더 이상 과학자들의 실험실이 아니다. 자원, 안보, 기술, 외교가 교차하는 새로운 국제 무대이다. 한국이 이곳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외교적 역량과 기술적 기반은 이미 충분하다. 다만 그것을 실현할 전략과 파트너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북유럽과의 협력은 북한을 비롯한 복잡한 안보현실을 마주한 한국에게 또 다른 안정 축을 제공할 것이다. 한국의 북극 외교는 곧 한반도 평화와도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퍼즐의 한 조각이다.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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