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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참 많이 불렀다. 그때 통일은 설명이 필요 없는 민족적 과제였다.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태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북한의 태도는 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3년 말 남북관계를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이후 통일과 민족이라는 개념을 대남정책에서 지워가고 있다.
남한에서도 현실적인 평화공존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통일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북한의 두 국가론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전쟁을 피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지금의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당장의 통일보다 군사적 충돌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는 일이 우선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것과 통일을 포기하는 것은 같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통일은 어느 정부의 선택적인 정책목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헌법적 가치다.
독일의 경험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독일 역시 1949년 이후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 40여 년을 살았다. 냉전이 굳어지면서 가까운 미래에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서독은 빌리 브란트 정부 이후 동방정책을 추진하며 동독의 현실을 인정했지만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통일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했다. 동독·소련·동유럽과 관계를 개선하고 긴장을 완화하면서도, 독일인들이 언젠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하나의 국가를 이룰 가능성까지 닫아버리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1989년,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던 베를린 장벽붕괴가 찾아왔고, 이듬해 10월 3일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다. 물론 동독 주민들의 평화혁명과 소련·미국 등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결정적이었지만, 오랫동안 통일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았기에 그 기회를 국가적 결단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
한반도라고 해서 역사가 지금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북한 체제가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될지, 국제질서가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1988년의 독일인들에게 "2년 뒤 독일이 통일된다"고 말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믿었겠는가.
그래서 통일정책은 오늘 당장 통일하기 위한 정책만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전쟁을 막는 것도, 남북주민의 동질성을 유지하는 것도 통일정책이다. 북한 주민에게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을 알리는 일,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는 일, 이산가족의 아픔을 기억하는 일, 젊은 세대에게 분단의 시작과 우리가 선택해야 할 미래를 가르치는 일 모두 넓은 의미의 통일준비다.
더 중요한 것은 통일의 방법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통일은 전쟁에 의한 통일도, 강제적인 흡수통일도 아니다. 북한 주민 스스로 자유와 더 나은 삶을 선택하고, 남과 북의 주민들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평화적 통일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목표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 통일은 날짜를 정해놓고 추진하는 행사가 아니라, 역사적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붙잡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긴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렇게 많이 불렀던 노래를 다시 떠올려본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오늘의 현실에서는 다소 낯설게 들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노래를 무조건 따라 부르기보다 스스로 물어볼 때가 됐다. 과연 우리의 소원은 아직도 통일인가.
대답은 그렇다 이다. 다만 과거의 구호로서가 아니라, 자유와 평화, 그리고 남북 주민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통일이어야 한다. 정권은 바뀔 수 있고 남북관계도 변할 수 있다. 북한이 오늘 통일을 부정한다고 해서 대한민국까지 그 꿈을 접을 이유는 없다.
평화를 위해 현실을 인정하되, 통일을 향한 문까지 닫아서는 안 된다. 독일이 그랬듯이, 역사적 기회는 예고장을 보내고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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