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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3월 남한으로 와서 서울시내 거리에 ‘평양냉면’ ‘함흥냉면’ 등의 간판을 보고 다소 놀랐다. 이를 거꾸로 보면 북한에 ‘서울국수’ ‘대전국수’ 간판이 있다는 소리인데 영화에서나 가능한 그림이다. 그만큼 북한당국이 인민들에게 남한사회를 꼭꼭 숨기려는 의도이고 또한 남한사회와 경쟁할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분단이후 시작된 남북한의 경제격차는 오늘까지 무려 80배로 벌어졌다. 남한이 북한에 비해 80배나 잘 산다. 수령만을 위한 사회주의는 전체 국민을 위한 자본주의를 절대 능가할 수 없다. 부산에서 북한음식전문점 ‘아리랑식당’의 허정희 대표를 만났다.
- 고향을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역사상 최악의 경제난은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시기이다. 당시 중국에 친척이 있어 그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버티고 이겨낼 수 있었다. 이후 중국친척집의 신세도 약해졌다. 허나 가족을 굶길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겠기에 2010년 봄, 눈물의 두만강을 건넜던 것이다. 중국에서 일정기간 체류하다가 탈북자 신분이 두려워 고민 끝에 제3국을 거쳐 2014년 3월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 정착생활 초기를 말해 준다면. 부산에 주거지를 받았다. 아침 6~8시 식당일을 했고 9시부터 학원공부를 했다.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고깃집 알바를 했고 버스 3정거장도 걸어 다녔다. 경남정보대학 국제미용학과(2년제)를, 고신대학교(4년제) 뷰티케어학 전공을 졸업했다. 2017년 지금 운영하는 피부건강샵 가게를 오픈하여 현재까지 오고 있다.
- 아리랑식당을 소개해 달라. 지난 2024년 11월에 개업했다. 부산지역 일부 탈북민이 모여서 돈을 벌자는 것보다 연로하신 어르신들에게 조용히 봉사한다는 심정으로 우리네 고향인 북한음식을 위주로 영업을 한다. 지난 6·25전쟁 때 피난의 임시수도였던 여기 부산에는 이북 흥남항에서 미군함선을 타고 피난을 내려온 실향민들이 대거 있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점심은 지역거주 취약계층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지역 탈북민이 모여 연로하신 어르신들에게 봉사한다는 심정으로 고향의 맛 북한 음식 위주로 영업
부산에는 흥남항에서 미군함선을 타고 피난을 내려온 실향민들이 많이 있어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점심 지역거주 취약계층 어르신들 위한 무료급식 봉사
- 그래도 영업인데 이익은 창출되나. 솔직한 말로 가게 관리비 정도만 나와도 만족이라고 생각한다. 큰 욕심은 없다. 둘 다 나이가 들어서 만난 우리 부부는 함께 사는 자식도 없다. 그리고 건강하다. 그러면 되지 않겠는가. 그냥 내 자식 같고 내 부모 같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최고로 행복하다. 봉사의 묘미를 느껴본 사람만이 이것을 알 것이다.
- 메뉴와 좌석 수는 어느 정도인가. 주 메뉴는 청진냉면과 두부밥, 아바이순대와 만두 등이며 모두 12가지 식사종류가 있다. 청진냉면의 고명은 오이, 무생채, 김가루 등이다. 시중에 파는 일반냉면에 있는 고기와 계란이 없다. 일부러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이다. 모두 10가지 보약 같은 재료로 만든 육수가 진미의 특성이다. 물냉면, 비빔냉면, 온면 등 3가지가 있고 국물을 남기는 사람이 별로 없다. 좌석은 1·2층 합쳐 40석 규모이다. 예약도 받는다.
- 청진냉면, 처음 듣는 이름이다.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 와보니 평양냉면, 함흥냉면, 해주냉면 등 북한지명 이름을 단 냉면이 제법 있었다. 청진은 북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 부산이나 같다. 우리 단체회원 반 이상은 고향이 청진, 그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애향심은 탈북민이나 남한사람이나 똑같다.
주 메뉴는 청진냉면과 두부밥, 아바이순대 만두 등 모두 12가지... 청진냉면의 고명은 오이, 무생채, 김가루로 육수가 진미의 특성 좌석은 1·2층 합쳐 40석 규모 예약도 받아
- 어떤 마음으로 영업을 하는가. 나이 60세 넘은 우리 부부가 미력하나마 작은 정성으로 열심히 하는 일이다. 시종일관 감사한 마음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힘들 때마다 고향사람들을 조용히 생각하면 미안함이 들고 힘이 부쩍부쩍 솟는다. 사실이 그렇다. 우리가 이 자본주의사회에서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못 먹고 사는 북한에 계시는 우리의 부모형제, 자식, 친척 등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고생에 비하겠는가.
- 고향이 어디인가.
1965년 9월 함경북도에서 태어났다. 고등중학교 졸업 후 바로 지망했던 대학을 가지 못한 이유는 부모님이 중국연고자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별로 좋은 계층은 못된다. 1984년부터 기계전문학교(2년제)와 화학공업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화학연합기업소 공무기술과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 사무실 직원의 대우는 어땠나. 북한의 연합기업소는 남한으로 치면 대기업에 해당된다. 해마다 연간계획을 완수한 때에 국가서 내려오는 배려상품이나 사회 각처서 올라오는 생활지원물자 등이 들어온다. 주로 의류피복 및 생활용품, 농·식품 등이다. 이것을 생산계획에서 모범적인 직장의 노동자들에게 배급하는데 노동자가 1개를 가진다면 사무원은 2~3개 가진다. 이런 풍조는 거의 오랫동안 굳어진 직장생활 문화라고 보면 될 것이다.
- 또 다른 경력이 있다면. 결혼하고 아이를 둘 낳았다. 직장생활과 육아를 같이하기가 힘들어 사직했다. 이후 인민반장(30여 가구의 행정을 맡아보는 사람) 업무를 1년간 하다가 지역인민방장을 겸하였다. 9개의 인민반장을 통솔하는 자리다. 인민반장은 당에서 내려오는 각종 지시문을 전달하고 온갖 사회노동에 필요한 자재들을 수거해 바친다.
- 소원이 있는가. 탈북민 여러분! 부산으로 오면 ‘아리랑식당’을 찾아주세요. 우리 고향 분들은 무료로 대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탈북민들을 국민으로 받아준 대한민국 정부에 너무나 감사하다. 그 고마움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한민국에 아주 적게라도 보답하는 것은 봉사활동 밖에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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