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보다는 당장의 남북 평화공존과 협력에 더 큰 비중

[기획] 역대 대통령의 통일정책... 노무현 정부의 상반기 대북정책 ⑯

윤현중 기자 | 기사입력 2026/09/11 [15:17]

통일보다는 당장의 남북 평화공존과 협력에 더 큰 비중

[기획] 역대 대통령의 통일정책... 노무현 정부의 상반기 대북정책 ⑯

윤현중 기자 | 입력 : 2026/09/11 [15:17]

  노무현 대통령

대북정책의 첫걸음은 순탄치 않았다. 인수위 시절부터 불거진 '대북송금 의혹'이라는 정치적 악재가 앞길을 가로막았다.

 

선거 당시 이회창 후보는 김대중 정부가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북한에 막대한 돈을 주었다는 불법송금 의혹을 제기하며 철저한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을 통한 진상규명을 강력히 요구했다. 야당은 대선 결과가 나오자, 국회에서 특검법안을 통과시켰다.

 

▉ 김대중 정부의 불법 대북송금 드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대중 정부의 과거사를 '통치 행위' 또는 '평화 비용'의 성격이 있음을 강조했다. 집권 후 야당이 장악한 국회 상황과 여론의 압박 속에서 이회창 후보 측이 요구했던 '대북송금 특검법'을 수용하게 됐다.

 

집권 후 야당이 장악한 국회 상황과

여론 압박 속에서 이회창 후보 측이

요구했던 '대북송금 특검법'을 수용

 

현대상선이 법절차 거치지 않고 북한에

4억5천만 달러 송금했다는 이야기 나와

 

이는 "통치행위라 할지라도 법치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원칙론적 입장이 반영된 결정이었다. 항간에는 현대상선이 적절한 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북한에 4억 5천만 달러를 송금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대상선을 옹호하며 “현대가 북한으로부터 7대 사업권을 얻는 대가로 송금했으나, 평화와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실정법상 문제가 있음에도 수용했다”고 시인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푸틴



늘 그렇듯이 언론지상에는 예의 지면을 도배하는 파헤치기 식 조사가 진행됐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부 첫 자살 사건이 터졌다. 김대중 정부가 보내는 현금을 북한에 전달한 혐의로 조사받을 예정이던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이 스스로 생명을 끊었다. 조사 결과,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서 북한에 1억 달러를 주었다. 나머지 4억 달러는 현대가 준 것으로 드러났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성이 있었다.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 김대중 정부 핵심 인사들이 구속되었고, 이는 여권 내부의 극심한 분열로 이어졌다. 북한 역시 특검 수사에 강력히 반발하며 남북 당국 간 대화를 일시 중단하는 등 남북관계는 서두부터 냉각기를 맞았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의 심판을 받고 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확보하려 했으나, 대북 평화번영정책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고 대북정책의 초반 동력이 약화된 계기가 됐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 북한과의 신뢰 구축에 차질을 빚으며 대북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 햇볕정책 계승과 동북아 중심으로의 진화

 

노무현 정부는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공동으로 번영하자는 의미에서 대북정책을 ‘평화번영정책’으로 명명했다. 통일보다는 당장의 남북 평화공존과 협력에 더 큰 비중을 뒀다. 햇볕정책을 토대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이룩하면서 동시에 동북아의 공동번영을 해나가겠다는 정책이었다.

 

북한을 압박하기보다 대화와 협력 통해

변화를 끌어내려고 해...평화번영정책은

햇볕정책과 차이가 있는 것 사실이지만

큰 틀에서는 이를 계승하고 보완한 정책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특별한 용건 없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지는 않겠으며, 북한에 대해서도 따질 것은 따지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 지나치게 북한을 배려하고 있다는 국내의 비판을 의식한 것이다.

 

  한중 정상회담



그러나 기본적인 대북정책의 방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종석 NSC사무차장 등 대북정책을 담당한 인사들도 대부분 김대중 정부의 사람들이었다. 북한을 압박하기보다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변화를 끌어내려고 했다. 따라서 평화번영정책은 햇볕정책과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큰 틀에서는 이를 계승하고 보완한 정책이었다.

 

실제 김대중 정부 시절 합의가 이뤄진 개성공단 사업이 새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첫 삽을 떴다. 이듬해는 공단 시범단지 부지가 조성되고 첫 제품이 생산됐다. 이와 함께 금강산 육로 관광이 본격화되고 남북 철도·도로 연결 공사가 추진되는 등 이른바 남북 3대 경제협력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러한 사업은 단순한 대북지원을 넘어 남북 간 경제적 상호 의존을 높이고 북한에 시장경제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확산하려는 시도였다. 특히 개성공단은 군사분계선 인근에 북한군 부대를 빼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남북 긴장 완화의 상징으로 평가됐다.

 

한국이 어느 한쪽에 서기보다는 미국과

북한 사이서 중재하고 대화를 촉진하는

역할 해야 한다 판단... 제재와 압박보다

평화·외교 원칙으로 협상통한 해결강조

 

 평화번영 정책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남북관계의 발전을 한반도에만 국한하지 않고 동북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으로 확대하려 했다. 한국이 동북아의 비즈니스·물류 허브가 되고,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주변국을 이끌어 동북아의 새로운 안정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상이었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 자문기구인 동북아시대위원회가 2003년 4월 29일 출범했다. 남북화해를 통해 민족역량을 키우고, 장기적으로 통일한국이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면서 동북아의 안정과 번영을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 배경에 있었다. 그러나 이 구상은 북한 핵문제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주된 이유는 한미 정부 간의 인식 차이였다.

 

노무현 정부는 북핵문제를 기본적으로 미국과 북한 사이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한국이 어느 한쪽에 서기보다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하고 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제재와 압박보다는 평화적·외교적 해결을 원칙으로 삼고,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그러나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단순히 미·북 간의 문제가 아닌 글로벌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및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으며, 대화보다는 원칙론적 압박과 다자적 제재에 무게를 두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북핵 문제 해결 없이는 동북아 평화도, 구조적인 남북경제공동체 형성도 불가능하다"는 한반도의 엄중한 현실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 유엔의 북한인권 문제 제기 시 기권, 회피

 

북한에서 각종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피해자가 양산되는 것은 레닌·스탈린체제의 근본적인 특성과 관련이 있다. 이와 관련, 유엔 인권위원회는 북한에서 오랫동안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침해가 벌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유엔의 북한인권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북한 당국을 직접 비판하기보다 대화와 교류협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논리였다.

 

이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었다. 당시 김 대통령은 북한 주민에게 정치적 자유권을 요구하기보다 우선 북한 주민이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생존권과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2003년 4월 16일 유엔 인권위원회가

EU가 상정한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남북관계 특수성과 대화 상대에 대한

배려 이유로 기권...대화와 교류 통해

북한을 개방시키는 것이라는 논리 펴

 

실제 지난 정부의 햇볕정책은 대북지원을 통해 남북이 화해하고 그에 바탕 해 교류협력을 확대하면 장차 북한 경제가 개선되고 북한 사회도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김 대통령의 일관한 주장일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김 대통령의 모순된 태도였다. 김 대통령은 과거 자신이 권위주의 정부로부터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기본권을 북한 주민에게는 유보하겠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도 지난 정부의 인식을 대체로 이어갔다. 비록 북한인권 문제를 더 많이 고민한다고 했지만, 기본적인 접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3년 4월 16일 유엔 인권위원회가 EU가 상정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을 때,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대화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이유로 기권했다. 북한인권을 개선하는 실질적인 방법은 직접적인 비판과 압박보다는 대화와 교류를 통해 북한을 개방시키는 것이라는 논리였다.

 

권했다. 정부는 북한주민의 인권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면서도 북한의 정치적 권리를 직접 압박하기보다는 경제개방과 시장경제 확대를 지원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인권 개선에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북한주민 인권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면서도 북한의 정치적 권리를

직접 압박하기보다는 경제개방·시장경제

확대를 지원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가 인권개선에 더 효과적이라 설명

 

하지만 북한 전역에서 공안통치와 인권탄압이 계속되고, 탈북자들이 체포와 구금, 가혹한 조사를 겪는 상황에서 이러한 접근은 국내외에서 비판을 받았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이나 북핵 문제와 같은 현실적 국익을 이유로 보편적 인권의 원칙을 사실상 뒤로 미룬다는 지적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에는 이례적으로 유엔 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했다. 그러나 이때도 북한인권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북핵실험 이후 더욱 절실해진 북한과 국제사회의 대화와 협력을 촉진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는 다시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10·4선언이 채택되고 6자회담이 진전되는 상황 등을 고려한 것이었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북한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라는 현실적 목표를 우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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