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미 입장은 ‘대화 자체의 거부’라기보다 ‘대화 조건의 상향’에 가깝다

[분석] 북한의 반응과 2026년 북미정상회담 전망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 | 기사입력 2026/09/11 [18:22]

北 대미 입장은 ‘대화 자체의 거부’라기보다 ‘대화 조건의 상향’에 가깝다

[분석] 북한의 반응과 2026년 북미정상회담 전망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 | 입력 : 2026/09/11 [18:22]

북한의 초기 반응은 냉랭했지만 대화의 문을 닫지는 않았다. 김여정은 한미연합훈련 축소에 ‘전혀 흥미가 없다’고 평가하면서도 김정은과 트럼프의 개인적 관계는 여전히 훌륭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의 첫 조치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정상외교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     

더욱이 북한 외무성은 8월 31일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를 계속 요구하고 한미일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것을 대북 적대정책의 증거로 제시하면서 핵무력을 계속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는 한미연합훈련의 일부 축소만으로 북한의 핵정책이나 대미 협상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낮음을 보여준다.

 

김정은이 정상회담에 응할 가능성 높아

 

그러나 이러한 강경한 대미 입장이 북미대화 자체의 거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은 올해 2월 제9차 당대회에서 한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 “만일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 명기된 우리 국가의 현 지위를 존중하며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조미관계의 전망성은 미국측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에는 응하지 않겠지만,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 현실을 사실상 인정하고 북한이 말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변화를 행동으로 보여줄 경우 트럼프와의 정상외교에 다시 나설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현재 북한의 대미 입장은 ‘대화 자체의 거부’라기보다 ‘대화 조건의 상향’에 가깝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가 특사를 평양에 보내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북한이 포괄적 시험 모라토리엄을 준수한다면 한미연합훈련의 규모와 기간을 추가 조정할 수 있다’는 식의 조건부 제안을 한다면 김정은이 정상회담에 응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5월 트럼프가 싱가포르 회담 취소를 발표했을 때도 북한은 강경 대응보다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만날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김정은은 정상회담이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체면보다 실리를 택할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 회담의 대가로 내놓을 수 있는 조치는 ‘비핵화 결단’이나 검증 가능한 핵물질 생산동결보다 훨씬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한미연합훈련의 추가 축소와 일부 제재완화를 제시한다면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겨냥할 수 있는 단거리·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시험발사 중단까지 협상카드로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는 북한이 스스로 내놓을 수 있는 양보의 범위에 관한 전망일 뿐이다. 한국은 1단

계 합의의 최소조건으로 SLBM을 포함한 모든 탄도미사일 비행시험의 중단을 미국 측에 요구해야 한다.

 

정상회담 시기 11월 18~19일 APEC 주목

 

이러한 시험 유예(모라토리엄)는 외부에서 이행 여부를 확인할 수 있지만, 핵물질·핵탄두 생산과 미사일 양산, 순항미사일 및 전략핵잠수함 개발을 막지는 못한다. 북한이 생산동결을 선언하더라도 국제사회의 현장검증은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정상회담 시기로는 11월 18~19일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전후가 가장 주목된다. 트럼프가 APEC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할 경우 별도의 장거리 순방 부담 없이 김정은을 만날 수 기 때문이다. 장소는 중국 내 별도 장소나 판문점, 또는 평양이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등이 고려될 수 있다.

 

트럼프가 APEC 전후 평양 방문을 직접 제안할 경우 김정은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 현직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북한에는 큰 상징적 성과이지만 미국 국내정치적으로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중국은 북미정상회담을 공개적으로 중재하겠다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한미연합훈련의 축소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변경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대화 재개를 지원할 전략적 유인이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최근 서울에서 미국이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월 24일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실제 방문이 예정대로 성사될 경우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한 중국의 역할도 미중 정상 간 논의 의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중국이 북한의 핵증강 제한을 미국·한국과 동일한 우선순위로 보지는 않을 것이므로 중국의 협조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북미정상회담 자체가 한국의 국익 아닐 것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북미관계, 평화체제, 한미연합훈련, 대북제재, 핵·미사일 위험관리와 장기적인 핵증강 제한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위험한 경우는 북한이 핵실험과 일부 미사일 시험만 중단하고, 미국은 한미연합훈련을 장기간 중단하고 제재를 크게 완화한 뒤 핵물질·핵탄두 생산과 검증 문제를 후속협상으로 미루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은 핵전력을 계속 늘리면서 정치·경제적 보상까지 얻을 수 있다. 북미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한국의 국익은 아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실제로 줄일 때에만 한국에도 의미가 있다. 실적인 대안은 두 극단 사이에 있다. 첫 단계부터 북한에 전면 사찰을 요구하는 ‘검증 가능한 생산동결’도, 모든 핵능력을 단기간에 없애려는 일괄타결도 성사 가능성이 낮다. 대신 정상회담에서 장기적 대타협의 전체 방향과 상응조치를 포괄적으로 합의하고, 실제 이행은 낮은 단계에서 시작해 점차 높은 수준의 핵제한과 검증으로 이동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외부에서 확인 가능한 핵·탄도미사일 시험 중단 ▲북미·북일 관계정상화 과정 가동 ▲핵전력의 상한 설정과 추가생산 제한 ▲신고·감축·확대된 검증과 평화체제 구축으로 이어지는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 방식이다.

 

이 접근이 필요한 이유는 북한의 협상환경이 2017~2018년과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2026년 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 핵무기의 수량과 종류를 계속 늘리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고, IAEA도 영변과 강선에서 우라늄 농축활동이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제재완화만으로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멈추고 국제사찰까지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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