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핀 뽑힌 한반도… 도발보다 치명적인 '구조적 침묵'

김성근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6/10/01 [18:00]

안전핀 뽑힌 한반도… 도발보다 치명적인 '구조적 침묵'

김성근 논설위원 | 입력 : 2026/10/01 [18:00]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 이후 약화된 확전 통제장치 위기관리 위한 군사 핫라인 복원 이 시급하다.

 

과거와 다른 '구조적 침묵'...확전 막을 장치 없어

 

최근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들려오는 파열음이 심상치 않다.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천명한 이후 군사분계선 일대에 장벽을 세우고 지뢰를 매설하는 등 요새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급기야 지난 9월 21일 우리 장병들이 DMZ 수색작전 중 지뢰 폭발로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r김성근 남북지역교류중앙협의회 부회장

  우리 군은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에 의한 폭발로 판단했고,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29일 담화를 통해 이를 '자작극'이라고 부인했다. 북한은 이를 30일 공개했다. 같은 날 유엔군사령부는 군사분계선 이남에서 북한 대인지뢰를 발견했으며, 이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언론과 정치권이 북한의 물리적 도발과 거친 수사에 주목한다. 그리고 30여 년간 남북협상 현장을 지켜본 필자의 눈에는 또 다른 위험이 보인다. 치명적인 위협은 물리적 도발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뒤에 짙게 깔린 '들리지 않는 침묵'이다.

 

한반도는 지난 70여 년간 늘 위기와 맞닿아 있었다. 제1·2차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2015년 목함지뢰 사건 등 무력 충돌로 이어질 뻔 한 아찔한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에는 위기 상황에서도 판문점 연락채널이나 군사통신선 등 최소한의 소통망이 작동했다. 겉으로는 총구를 겨누고 맹비난을 쏟아내더라도, 물밑에서는 상황을 확인하고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통로가 있었다. 이런 장치가 우발적 충돌을 더 큰 충돌로 확대하는 것을 막는 일종의 안전판 역할을 했다.

 

이러한 소통망은 상대를 신뢰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신뢰하기 어려운 상대와의 충돌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다. 군사적으로는 이를 '확전 통제'라고 한다. 우발적인 충돌이나 오판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더 큰 무력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소모적 정쟁보다 '위기관리 투트랙' 가동해야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내세운 이후 기존 남북연락채널은 사실상 가동되지 않고 있다.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 사이의 통신수단이 존재하지만, 최전방에서 직접 마주하는 남북 군사당국 사이의 직접 소통망은 사라졌다.

 

문제는 단순히 연락이 불편하다는 데 있지 않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상대의 의도를 확인하고 오판을 바로잡을 안전장치가 약해졌다는 뜻이다.

 

상대의 작은 움직임을 공격신호로 오인하고, 그에 대한 대응이 다시 상대방의 공격 신호로 해석되는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 특히 최전방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여러 판단과 대응이 연쇄적으로 이뤄진다. 소통의 부재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위험을 키울 수 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강력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군사적 억제력을 유지하고 정전협정 위반에는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군사적 억제와 위기관리는 함께 가야 한다. 억제력을 유지하면서도 우발적인 충돌이 전면적인 무력 충돌로 번지는 것을 막는 장치를 동시에 갖춰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남북 합의가 아니다. 남북 군사당국 간 통신선을 복원하고, 우발적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소통체계를 다시 가동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엔군사령부를 통한 소통은 중요한 안전장치다. 그러나 당사자인 남북 군사당국 사이의 직접 소통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의도를 직접 확인하고 잘못 전달된 신호를 바로잡을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

 

신뢰할 수 없기에 대화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군사적 충돌을 관리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다. 신뢰할 수 없는 상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소통채널이 필요하다. 안보의 목적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데만 있지 않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고, 원하지 않는 전쟁을 예방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이념과 정쟁의 거친 소음을 걷어내고 지금 우리가 먼저 복원해야 할 것은 끊어진 군사 통신선이다. 거창한 평화 선언보다 실질적인 위기관리 장치 하나가 더 절실한 때다. 안전핀을 다시 꽂는 것. 그것이 시계제로의 한반도에서 시작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안보이자 평화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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