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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책임인가를 넘어, 73년 된 군사분계선의 불확실성부터 해소해야 한다.
사라진 것은 표지물만이 아니다
최근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 폭발사고가 발생해 우리 장병들이 다쳤다. 이번 사고에서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에만 있지 않다. 왜 정전협정 체결 이후 70년이 넘도록 군사분계선의 위치와 기준을 남북이 완전히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는가하는 점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9월 28일 중간조사 결과에서 이번 폭발원인이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사고현장에는 우리 군의 지뢰매설 기록이 없고, 북한군 지뢰로 추정되는 물체도 확인됐다. 다만 지뢰의 정확한 매설 주체와 시점, 경위 등은 최종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최종 조사에서 책임이 확인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북한에 대한 비난과 대응으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 같은 사고와 우발적 충돌이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을 함께 살펴야 한다.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에는 표지물이 설치됐다. 하지만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상당수가 유실되고 훼손됐다. 문제는 표지물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군사분계선을 판단하는 기준에도 남북 간 차이가 존재한다. 선을 표시하는 물리적 표지가 사라지고 기준마저 서로 다르다면, DMZ에서 활동하는 장병 입장에서는 작은 오인과 판단 착오도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사고가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선이 불분명한 곳에서 병사들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DMZ는 일반적인 국경과 다르다.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군사적 완충 공간이지만 남북의 병력이 대치하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군사분계선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관리하는 것은 정치적 양보가 아니라 장병의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안전장치다.
먼저 ‘선’부터 확인하자
해법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먼저 ‘선’부터 확인하자. 남북이 군사분계선의 기준을 다시 확인하고, 표지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서로 다른 기준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DMZ에서 작업할 때 상대방의 움직임을 어떻게 통보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2일 군사분계선의 선을 다시 확인하고 확정하는 일을 남북 소통의 출발점으로 삼자는 취지의 제안을 내놓았다.
북한에 책임을 묻는 것과 군사분계선을 확인하는 것은 서로 충돌하는 일이 아니다. 책임을 물을 것은 묻되,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위험을 줄이는 대화도 시작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하면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확성기를 다시 켠다고 해서 DMZ의 지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군사분계선의 위치가 정확해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긴장을 높이는 조치보다 현장에서 사고와 충돌을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장치다.
남북은 이미 경험을 갖고 있다. 2018년 9·19 군사 분야 합의에서 군사분계선 일대의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우발적인 군사충돌을 막기 위한 여러 조치를 추진했다. 이후 합의가 유지되지 못한 한계가 있었지만, 서로의 행동을 관리하는 장치가 군사적 충돌을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은 남아 있다.
평화는 적과 대화하는 일이다
정동영 장관은 최근 북아일랜드의 평화 과정도 살펴봤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평화가 갈등이 사라진 뒤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갈등이 극심했기 때문에 오히려 대화가 필요했다.
평화는 친구와 협상하는 일이 아니라 적과 협상하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남북관계도 다르지 않다. 서로 생각이 같아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다르고 불신이 크기 때문에 만나야 한다.
연락채널을 복원하고, 군사분계선의 기준을 확인하고, 서로의 움직임을 통보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당장 남북관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선 우리 장병들이 다시 다치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군사분계선을 없애자는 것도 아니다. 통일을 당장 이루자는 것도 아니다. 정전협정으로 그어진 선이라면, 적어도 지금 그 선이 어디에 있는지는 남과 북이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이번 지뢰 사고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가장 현실적인 교훈이다.
평화공존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우리 장병이 지뢰를 밟지 않고, 남북의 젊은이들이 다시 총을 쏘지 않도록 만드는 것. 평화공존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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