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2019.07.24 [13:02]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정치  경제  군사/외교  사회/NGO  탈북민  인터뷰  통일교육  오피니언  북한풍물기
탈북민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탈북자 정착 스토리 13] 전철우 스페로스 대표
개그무대에서 유통업계 요식사업가 대부로 변신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3/08/19 [16:10]
 전철우 스페로스 대표가 처음 데뷔한 곳은 개그무대였다. 1994년 MBC 공채 개그맨으로 그의 특기는 ‘북한사투리’였다. 당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남한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다소 각색된 부분도 없잖아 있었지만 난생 처음 보는 ‘북한사람’의 사투리 개그에 대한민국은 주말 저녁마다 폭소에 빠졌다. 이후 그는 기세를 몰아 사업가로 나섰다. 북한의 음식이 사업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쓰러졌다 일어서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한때는 삶의 미련마저 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섰으며 마침내 오늘날, 대한민국 유통업계를 움직이는 ‘큰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방송인이자 100억대의 수입을 올리는 요식사업가, 전철우 대표의 인생이다.
1989년 무너진 베를린 장벽
1969년 평안남도 남포 출신인 전 대표는 유복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군 장성이었으며 어머니는 대학 교수였다. 덕분에 북한 최고 명문대인 김책공업대학을 졸업하고 국비로 동독 드레스덴 대학에 유학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 그는 북한의 현실을 목격했다. 남한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북한과 달리 동독 사람들은 서독의 문화를 비교적 자유롭게 접할 수 있었고 일부는 아예 서독으로 넘어가기까지 했다.
당시 공산진영에서 최고 수준이었던 동독의 경제사정도 북한의 것과 비교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1989년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 붕괴 사건과 함께 그는 혼란을 틈타 남한으로 망명했다. 순전히 북한체제에 대한 혐오에서였다.
한양대 재학시절 MBC 개그맨으로 유명세를 탔던 전 대표는 기세를 몰아 사업에 손을 댔다.
하지만 아직 남한의 물정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에게 각종 위기가 닥치기 시작했다. 사기꾼들이 접근했으며 언론의 평판도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결국 크고 작은 실패 속에 한 때는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했다. 전 대표는 이렇게 회상했다.
“사업을 하는 중 몇 번의 사기를 당했다. 남을 쉽게 믿고 금방 마음을 내어주는 성품이라 이용당하기 쉬웠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철저히 ‘혼자’라는 외로움이었어다. 형제가 없는 외로움, 부모가 없는 외로움…. 외적인 것보다는 내면에서 겪었던 ‘혼자’라는 아픔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사업적 실패는 필연적으로 가정의 불화까지 불러왔다. 네 번의 결혼, 그의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과거로 남았다. 하지만 천성으로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으로 전 대표는 무일푼 상태에서 재기에 성공해 지금은 수십 여 개의 프랜차이즈를 거느리고 수십 억대의 홈쇼핑 매출을 거느리는 유통업계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가 거느린 직원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
그는 하루 만에 홈쇼핑에서 ‘항아리 갈비’ 2만 세트를 팔아 8억 원의 수입을 남기기도 했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전철우의 빨간 냉면’ 등 그의 이름이 찍힌 식당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연간 총매출은 100억 원을 웃돌고 있다.
“이북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전 대표는 자신의 성공비결로 ‘북한식 사고방식에서 탈피하는 것’을 꼽는다.
“탈북한 분들이 처음 겪게 되는 실수는 한국 시장을 꼼꼼히 파악하지 않는 거다. 하지만 한국 시장을 잘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령 20~40대를 고객으로 하는 우리 프랜차이즈는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떠한 것을 좋아하는지, 시장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고 최신 동향은 무엇인지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
그는 또 ‘자기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끊임없는 자기 혁신이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전 대표의 삶은 누구보다 드라마틱했다. 길지 않은 시간에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맛보면서 호된 경험을 겪은 그이기에 어쩌면 오늘의 행복이 더 크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북 출신의 망명가들을 중심으로 새터민 후원 모임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런 모임보다는 개인적인 후원에 관심이 많다. 우리 직원 중에도 이북 출신들이 있다. 잘 챙겨주고 싶지만 더러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참 안타깝다.”
전 대표는 심기일전해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면서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2005년 ‘전철우의 고향마을’을 창업하고 현재 (주)스페로스 대표로 재직 중이며 ‘제주청정정육마을’이란 새 브랜드를 개발해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전철우의 고향마을’은 2900원짜리 국밥으로 유명세를 타며 패스트푸드형 한식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지속적 연구개발로 다양한 메뉴와 저렴한 가격을 갖추고 있어 현재 50여 개 체인이 성업 중이다. 홈쇼핑에도 직접 출연해 ‘전철우 고향랭면’을 꾸준히 판매하고 있다고 하니 어찌 안 바쁠 수가 있을까.
직함은 ‘대표 일꾼’ 우리말
명함에 새겨진 전 대표의 직함은 ‘대표 일꾼’이란 우리말이다. 으뜸으로 일도 열심히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말이다.
방송 활동도 예전만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영화 ‘교도소 월드컵’에 우정출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살려 ‘남남북녀’ 시나리오를 감수하기도 했다.
사업이 만만치가 않아서 두 개를 다 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사업이 자리 잡아가는 단계라서 아직은 일이 우선이지만,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그를 다시 보더라도 놀랄 일은 아닐 것 같다.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뭔가는 이룬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전 대표의 사업이 잘되어 외로운 탈북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모델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3/08/19 [16:10]  최종편집: ⓒ 통일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회원약관 개인보호정책 회사소개 한국통일교육학회 기사제보 보도자료
(140-806)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85-3 남영빌딩 201호
(주)통일신문(TEL:02-701-8347 FAX:02-701-8345)
Copyright ⓒ 2007 unityinfo.co.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