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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심정으로 탈북민과 마주 앉아 얘기 도란도란 나눠요”
[인터뷰] 민주평통서울도봉구협의회 곽명애 회장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7/01/05 [11:43]


이제나 저제나 걷혀지기를 바라는 남북분단의 장벽은 도저히 변할 줄 모르고 어김없이 새해 2017년이 밝아왔다. 북녘 땅에서 과반의 인민이 수십 년간 심각한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 오로지 죽은 수령들의 동상건립과 핵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비정상의 김정은 독재정권이 존재하는 한 실현 불가능한 한반도 통일이다.
김정은은 올해도 인민들의 당에 대한 충성심 발휘를 고취시킬 것이다. 수 십여 년 전 김일성이 하던 ‘거짓말 신년사’를 그대로 하는 김정은의 모습에 인민들은 식상함을 넘어 해이와 의심마저 느끼고 있다. 민주국가 남한은 대통령이 거짓말 하면 국민이 분노하여 ‘당장 하야하라!’고 외칠 수 있으나 폭정독재국가 북한에서는 빤한 수령(대통령)의 거짓말에도 2천만 인민이 아무 말도 못한다.
그런 비정한 정권에 등을 돌리고 그 사회를 뛰쳐나오는 사람들이 바로 탈북민들이다. 대한민국에 자그마치 3만 명이 들어와 정착하고 있다. 남과 북을 모두 경험한 이들은 거두절미하고 ‘통일의 선구자’ ‘남북의 가교’들이 분명하다. 이들이 대한민국에 잘 정착함은 통일의 예행연습으로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 자문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는 전국의 탈북민 정착을 간접 지원하는 특수단체이다. 서울시 도봉구에 거주하는 100여명의 탈북민들로부터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항상 고마운 우리 딸’로 불리는 분이 있다. 민주평통 서울시 도봉구협의회 곽명애 협의회장이다. 도봉구청 3층에 있는 협의회 사무실을 방문하여 곽명애 협의회장을 만났다.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1946년 전남 해남 태생이다. 오래 동안 숙녀복 도매업을 해왔다. 50명 정도의 직원을 두고 서울의 평화시장, 남대문시장에서 일했다. 그 와중에 1995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북학학과를 수료하였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한 것은 내 생애 최고의 행복한 순간이었다. 굳이 북한학을 공부한 것은 통일을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다.
▶과거 어떤 사회활동을 하였나?
한복총연합회 선양회장으로 10여년 활동하였다. 우리 한복의 정통성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모임인데 겸해서 지역 사회에서 소년·소녀가장 돕기 운동을 하였다.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우이웃을 돕는 우리의 미풍양속도 함께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나이 들어보니 봉사활동 만큼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것도 흔치 않더라고 하던 주위 분들이 계셨다. 현재 내가 실감하고 있다.
▶민주평통에서 언제부터 봉사했나?
14기(2009년)에서 자문위원으로 시작하여 15기(2011년) 부회장, 16기(2013년) 상임위원으로 활동을 하였다. 17기(2015년)부터 협의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 기의 임기는 2년이다. 10년 가까이 민주평통에서 봉사하면서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인 다문화가정과 탈북민가정에 대한 돌봄 사업이 중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한복총연합회 선양회장으로 10년 활동
한복의 정통성과 우수성 알리는 모임
겸해 사회에 소년·소녀가장 돕기 운동
불우이웃 돕는 것이 좌우명이기도 해
 
▶사업과 봉사활동의 차이는 뭔가.
사업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 돈을 쓸 줄 모르는 것은 바보짓이다. 사람에게서 돈은 쓰고 살 만큼 있으면 되고 죽을 때 한 푼도 못 갖고 가는 돈 때문에 인생 망치는 경우 많이 보았다. 봉사는 돈을 잘 쓰는 모습 중의 일부이고 명예이기도 하다. 돈과 명예는 서로 다른 것이지만 잘 쓰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예를 가지는 것도 힘들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북한에 연고가 있는가?
가문에는 전혀 없다. 사회활동을 하면서 이런 저런 기회에 북한 개성을 다녀왔다. 그때 크게 놀란 것은 남북출입지역을 지나 북측지역에 근무하는 군인들의 모습이다. 북한에서는 최전방이겠는데 거기서 본 군인들이 너무나 왜소했다는 점이다. 남한의 중학생 정도 신장밖에 안 되는 그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꺼멓게 그을려 보였다.
▶개성지역에도 민둥산이 많다던데.
그렇다. 개성시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다. 시 외곽을 벗어나도 나무 한 그루 안 보이는 민둥산이 쉽게 보인다. 안내원에게 물어봤더니 산불로 그렇게 되었다고 하던데 거짓말 같아 보였다. 원유가 부족한 북한에서 주민들이 산의 나무를 마구 베어 사용하였고 그 자리에 밭을 일구어 감자며 콩 등을 심은 것으로 보였다.
 
봉사라는 것은 돈 잘 쓰는 것 중의 일부
돈과 명예는 다르지만 잘 쓰고 유지해야
명예 갖는 것 힘들지만 유지도 쉽지 않아
 
곽명애 협의회장은 기자에게 ‘2016년 도봉구협의회 활동현황’을 차근차근 기록한 자료를 보여주었다. 본 협의회에서 지난 기간 지역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과 탈북민가정 등과 함께 여러 가지 행사를 진행한 기록들이다. 다양한 행사로 가득한 자료에는 탈북민과 통일, 안보관련 행사가 눈에 띄게 많이 있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국제화시대와 분단시대에 다문화출신과 탈북민은 우리 사회에 들어온 새로운 계층인 것만은 분명하나 엄연히 다르다. 외국인인 다문화출신들은 한국에 살면서도 언제든 고국의 부모형제 친인척과 전화나 왕래를 할 수 있지만 탈북민은 안 그렇다. 외국보다 가까운 지척에 있으면서도 평생 동안 눈물 속에 헤어져 살아야 하는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탈북민들” 이라고 한다.
 
회장 취임하면서 중점 사업으로 지역
탈북민들과 소통하고 시간 함께 하는
것으로 정해…이웃인 그들의 애로를
귀담아 들으니 진심으로 마음 문 열어
 
그러면서 “대한민국에 들어와 있는 3만 탈북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통일의 귀중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이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가? 못하는가에 따라 미래에 올 통일이 ‘행복한 통일’인지 ‘불행한 통일’인지 가늠할 수 있다. 너무나 소중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는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업무수행 능력이 열성파인 곽명애 협의회장은 자신이 취임하면서 가장 중점적인 사업의 하나로 지역 내 탈북민들과 언제든 편하게 소통하고 시간을 함께 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어려운 이웃인 그들의 애로를 진심으로 귀담아 듣기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로 항상 마음의 문을 열어 놓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였다. 탈북민을 ‘먼저 온 통일’로 생각하기에 봉사정신으로 자신을 채찍질 한다고 했다.
▶통일 서예공모대전은 뭔가?
통일을 주제로 하는 서예(붓글씨)와 작문창작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로 진행한 행사다. 각 학교와 학원, 공공기관에 서예공모전 공문을 발송하여 희망자들이 참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대중에게서 나오는 신선하고 멋진 소재의 통일 관련 서예와 백일장은 많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올 초 북핵규탄 1인 릴레이 시위를 하였던데…
민주평통 중앙회 차원에서 진행한 행사였다. 서울시 각 구 협의회에서 릴레이 방식으로 내가 우리 회원들과 함께 참가하였다. 그때 느낀 점은 북한의 핵개발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분노를 현장에서 접했다는 것이다. 어떤 시민은 캠페인에 동참한다며 가던 길을 멈추고 한 시간 남짓 우리와 함께 피켓을 들고 서있기도 하였다.
▶다른 모습도 있었나?
어떤 시민은 우리가 하는 캠페인을 보며 “이게 뭐냐?”고 물었다. 북한의 핵개발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하자 “그게 무슨 소리이냐?”며 금시초문인 듯 하는 표정을 보였다. 또 많은 사람들이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하였다. 그 순간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누구를 탓할 것도 아니다. 바로 우리들의 문제이고 정부가 안보에 대한 대국민 계몽교육을 소홀히 한 탓이라고 밖에는 달리 볼 수 없었다.
▶지역 특성상 탈북민 지원에 어려움은?
도봉구는 서울시 25개 구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지역이다. 도봉구에는 중소기업은 물론 5성급 호텔 한 개도 없으며 서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그런 면에서 타 지역의 협의회 활동보다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문화가정보다 탈북민 정착도움에 우선시 하는 것은 바로 이들이 통일의 인재들이기 때문이다.
▶탈북민을 대할 때 어떤 심정인지.
내가 이 나이 되도록 사업과 사회활동을 해보니 사람의 마음을 사려면 먼저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탈북민 대부분 내 아들 딸로, 나이 드신 탈북어르신들은 내 형제로 생각한다. 세상에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한 진심이 어디 있겠는가? 내 진심을 보이니 그들도 진심을 보이더라. 나는 협의회 임원들과 회원들에게 탈북민을 대할 때만큼은 어머니 심정으로 대하라고 주문한다.
 
도봉구 서울 25개 구 가운데 재정자립도
가장 낮은 지역으로 서민들 많이 사는 곳
타 지역 협의회 활동보다 어려운 점 많아
다문화가정보다 탈북민 정착도움에 우선
바로 이들이 통일의 인재이기 때문이다
 
▶인상에 남는 탈북민은 있는가?
좋은 인상은 아니다. 지역에 사는 50세 남성의 탈북민은 작년 말에 하나원을 나왔다.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에 대한 죄책감으로 항상 술에 빠져 살다가 몸이 너무 안 좋아졌다. 다행이 일찍이 발견하여 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다 시피 하였다. 병원에서 알코올 중독에 가깝다고 진단했지만 아직도 술을 끊지 못한 것이다. 지금도 병원에 있는데 내가 매주 한 번씩 찾아가 그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준다. 만날 때마다 “회장 어머니! 내가 어머니 얼굴을 봐서라도 술을 끊겠습니다”고 하지만 빈말이다.
▶존경하는 사람이 누군가?
남편이다. 내가 늦은 나이에 공부할 때도 “당신! 정말 멋져요” 하며 따뜻이 격려를 해주었고 남매를 키우는 가정살림을 도맡아 하였다. 내가 이렇게 민주평통 도봉구 협의회장으로 봉사하는 것은 사랑하는 남편의 외조가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우리 협의회에서 하는 모든 행사의 보조적인 업무(운전, 심부름 등)를 적극 도와준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개인비서 겸 운전기사나 다름없다.(웃음)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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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05 [11:43]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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