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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탈북민 대통령 짝 사랑했지…우리를 알지도 못했어”
[인터뷰] 실향 1세대에 들었다 김정섭, 이정덕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7/02/09 [14:42]

평양태생의 실향민 두 분을 만났다. 6.25전쟁 발발 전후 스무 살 나이에 38선을 넘어 남하한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이제나 저제나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하루를 천년같이 기다린다.
나이 아흔을 바라보는 실향1세대인 김정섭(87) 선생과 이정덕(88) 선생은 평양의 한 동네 태생으로 김일성 공산정권이 싫어 1950년에 서울로 내려왔다.

두 분은 북한 공산정권에 대한 분노의 혈기로 국군에 입대하여 6.25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국군복무 및 공직생활, 사업 등을 하였으며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2천만 인민을 굶겨 죽이는 무능하고 야만적인 김정일 정권이 싫어 1997년에 서울로 와서 집필과 사회활동을 하며 사는 기자는 그동안 고향이 평양인 여러 실향민을 만났으며 그들 중에는 하늘나라로 가신분도 적지 않다. 김정섭, 이정덕 선생과의 끈끈한 정으로 오랫동안 지내고 있는데 참 감사하다.
두 분은 “북한에 진실을 전파하기 위해 대북삐라를 보내는 이민복 풍선단장과 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이민복 대북풍선단장을 만나기 위해 함께 가며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분 소개해 달라
김= 1931년생이다. 당시 주소는 평안남도 대동군 룡산면이다. 그게 지금은 평양시 만경대구역 룡봉리로 되었다. 형제는 7남매 이었고 6.25 동란에 평양에서 헤어졌던 큰형님을 서울에서 만났다. 피난과 복새통 속에서 만났으니 정말 반가웠고 놀라운 일이다. 형은 3일 만에 부산으로 피난을 갔고 나는 국군입대에 자원하였다. 고향 평양을 떠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백년이 훌쩍 넘었다.
이= 같은 고향이고 내가 한 살 많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철도공장에 배치를 받았다. 지도에서 보니 서평양역 근처에 있었는데 지금은 거기에 철도대학이 들어선 걸로 안다. 김정섭 선생을 1977년에 업무상 알게 되었는데 한 고향친구를 여기 서울에서 만나 지금까지 형제이상의 우정으로 지내오고 있다.
▶고향을 떠나게 된 이유는 뭔가?
이= 고등학교 때 서북청년단에 가입하였다. 서북청년단은 해방 후 월남한 이북청년들이 만든 반공청년단체다. 그 지부가 평양과 이북 각 지역에 있었다. 우리 고향 룡악산은 평양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이다. 하여 김일성이 가끔 휴양을 하려 왔다. 시내에서 룡악산을 가려면 꼭 우리 마을을 지나는 다리를 통과해야 하는데 김일성이 탄 승용차가 지나는 순간 그 다리를 폭파할 계획을 준비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모 조직원의 처남이 이 사실을 상부에 고발하면서 정체가 탈로 났다. 가입 조직원 18명 중 12명이 하룻밤 사이에 체포되었다. 나는 당시 개인용무로 시내에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곧바로 남하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1949년 12월이었다.
이후 국군에 자원입대했다. 20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중령으로 전역하여 한국도로공사 과장으로 근무하였고 정년퇴직을 했다. 이후 일본과 무역하는 개인 사업을 하였으며 지금도 간간히 그 일을 하고 있다.
▶가족 현황이 궁금하다.
서울에서 결혼을 하여 아들 셋을 낳았다. 큰 아들이 예순을 넘겼으니 내가 나이 먹은 것을 실감하겠더라. 아내가 치매로 수년간 고생하다가 3년 전 하늘나라로 갔다. 통일이 되면 내 고향 평양으로 함께 여행을 가자던 꿈은 한갓 빈말로 끝났다. 살았을 때 좀 더 따뜻하고 살뜰히 대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김 선생은 어떻게 고향을 떠났나?
8.15해방을 맞고 평양에 들어선 김일성 공산정권은 날강도 정권이나 다름없었다. 일제 치하에서 부를 형성하여 가진 재산을 전부 국가에 헌납하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일제 치하든 무슨 치하든 전부 개인이 노력해서 얻은 재산을 가난한 인민들과 함께 나눠야 한다며 강제적으로 수탈하였으니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인민재판장에 세웠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선배인 이정덕 선생의 남하로 고향은 들썩거렸다. 서북청년단 가입한 학생들 체포로 우리 후배들에게도 영향이 미쳤다. 계속 사상투쟁, 비판, 감시 등이 있었으며 도저히 이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후 전쟁이 터졌고 1950년 12월에 남하하여 국군에 입대했다. 5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국무원사무국(현 행정자치부)과 심계원(현 감사원)에서 공직생활을 하였다. 일본 게이오대에서 경제학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평양을 다녀 온 적이 있다던데...
2005년 10월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임원 160명 속에 끼워 방문했다. 당시는 남북교류가 활발하던 때다. 평양에서 1박 2일 체류하며 느낀 것은 처음부터 수령과 제도찬양 그리고 체제선전이다. 크게 놀란 건 아니지만 북한정권이 들어선 1945년도 당시나 그 모양, 그 꼴, 그 주제라는 것이 참으로 답답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에피소드가 있었나?
하루는 안내원이 시내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하던 해설 중 “언젠가 남조선의 모 지식인이 평양을 보고 장군님의 배려로 ‘세계1등 도시’가 되었다면서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고 하였다. 내 짐작으로는 북한당국이 충성경쟁의 일환으로 만든 말인 것 같았고 그 자리에서 면박을 주었다. “대체 어떤 놈이 그랬어? 장군님의 배려로 평양이 ‘세계특등 도시’가 되었는데. 어떤 반동 놈의 새끼가 그랬어?” 하고 말이다. 안내원이 얼굴이 빨개져 아무 말도 못하고 우리 일행은 키득키득 웃었다.
▶해방 후 김일성 정권에 대해서 말해 달라.
이= 그 당시 김일성은 가짜라는 인식과 풍설이 많이 돌았다. 김일성 이름이 평양에서 크게 났던 것은 1937년 보천보 습격 사건 때인데 그 전투를 지휘한 김일성은 대략 60대 초반의 장군으로 알았다. 그런데 평양에 나타난 김일성은 33살의 젊은 사람이었으니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그렇다고 함부로 말은 못했다.
김= 당시 남의 집 머슴, 강간범, 재물 약탈자, 사기꾼 등 사회의 온갖 불량배들이 인민위원회에 가입했다. 정상적인 사람은 ‘같이 일하고 같이 나누어 갖자!’는 공산당의 호소에 침을 뱉었다. 기고만장한 불량배들은 공산당에서 내준 빨강완장을 차고 거들먹거렸고 과거에 자기들을 괴롭혔다는 지식인, 자산가 등에게 호통을 치며 살았다. 그게 바로 노동자 농민이 주인인 사회주의라고 소리쳤다.
▶당시 평양 주둔 소련군은 어땠나?
김= 말도 못한다. 당시 평양시민들은 강도나 마찬가지인 소련군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라고 할 정도로 인식이 안 좋았다. 우리 동네에 있던 소련군은 소학교 여학생들을 유혹하여 병영으로 데려가 강간하는 놈도 있었다.
그걸 보며 우리는 너무 울분에 못 견뎌 그 놈들에게 집단 뭇매를 안기기도 하였다. 그놈들은 총을 가졌으나 그래도 정의감이 넘쳤던 우리는 그걸 무서워하지 않았다.
이= 소련군 놈들은 식당에 와서 음식을 먹고도 값을 안내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일쑤이다. 주로 술집에서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났는데 거기에 주인이 반박하면 인민위원회에 불려가 자이비판을 받기도 했다. 해방된 북조선을 지켜주려 왔다는 탈을 쓴 야만인이 바로 소련군이었다. 상당히 무식하고 포악한 놈들이었다.
▶대북풍선에 언제부터 관심 가졌나?
이= 대북전단은 과거 군(軍)에서도 보냈고 그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왜냐면 군대에서 적군에 대한 심리전의 일환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부터 탈북민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이 보내는 전단을 알고 호기심을 가졌다. 북한을 잘 아는데서 탈북민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 아무래도 적을 이기려면 적을 잘 아는 사람들의 전략이 가장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김정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삐라나 대북방송으로 북한주민들에게 정보제공을 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20년 전 남한에 와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역설한 황장엽 선생의 신신당부의 말씀이기도 하다. 얼마 전 태영호 공사가 기자회견장에서 하는 소리도 꼭 같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새겨들어야 한다.
▶현 시국을 어떻게 보나
김=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서 찍은 사람이다. 우리 이북출신 사람들은 보수성향의 대통령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늘의 모습은 실망이다. 말로만 통일은 대박이요,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이요 했지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를 한 명도 배출 안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결국은 실향민과 탈북민들이 짝 사랑으로 대통령을 좋아했지, 정작 대통령은 우리를 알지도 못했다.
이= 정말 걱정스럽다. 요즘 대선후보들이 저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군복무기간을 6개월 혹은 1년으로 줄이겠다고 하는데 정신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실망도 실망이지만 과거 김정일에게 재가를 받아 대북정책을 폈던 한심한 집단이 다시 집권하겠다는 것도 큰 실망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바뀌는데…
이= 그것이 문제다. 우리는 이승만 정권 때부터 현 정부까지 굴곡 많은 현대사를 살아왔다. 솔직히 말하면 역대 대통령 후보들이 권력집권을 위해 안보장사를 하였다. 지금은 덜 한 편인데 과거 70~80년대는 노골적으로 하였다. 총선 때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장밋빛 정책을 내놓았다가도 아니면 말고 식이다.
김= 과거에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달래었다. 우리라고 왜 고향의 형제처자들이 굶어죽는 걸 보고 가슴 아파하지 않겠는가. 정말이지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안보에서 만큼은 정치권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었으면 한다. 솔직히 통일이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하늘나라로 갈 것 같아 두렵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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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2/09 [14:42]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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