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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실체를 밝힌다] 김정일과 남산중학교
1984년 평양 제1고등중학교로 개명…과대포장/수재양성 기관으로 개편…흔적 털기 위한 음모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7/04/13 [14:15]

<김형수 객원기자>

집권 이후 김정은의 괴이한 행보가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겉으로는 선대 수령들의 위업을 받드는 척 하면서 정작 선대 수령들을 배신하는 행위가 그렇다.

김정은은 집권하자 제일 먼저 전국의 가는 곳마다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을 세우고 모자이크 벽화를 만든다며 주민들의 고혈을 짜냈다. 그러면서 한쪽으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흔적들을 지워버리느라 애를 쓰고 있다.

 

난잡한 사생활로 배다른 자식들 많아

 

김정은은 집권 후 제 아버지 김정일의 생가엔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할아버지 김일성이 태어난 고향집 만경대에도 아직까지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김일성 혈통의 순수성을 상징하던 ‘만경대 가문’이라는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무슨 어중이떠중이 피가 뒤섞였는지 분간도 되지 않는 ‘백두의 혈통’을 자신만의 혈통인 듯이 꾸며내 가지고 요란하게 선전하느라 분주하다.

비정상적인 원인으로 가정이 깨어져 소위 ‘혁명가 유자녀’가 된 고아들의 양육시설인 만경대혁명학원과 역시 부모 없는 고아들의 양육시설인 육아원은 보란 듯이 돌아보면서 정상적인 교육의 현장은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과학중시 사상’을 내세우면서 북한의 최고 수재들과 간부자녀들만 공부할 수 있는 평양 제1중학교도 전혀 들린 적이 없다.

김정은의 이러한 행동이 본처의 자식 아닌 첩의 자식으로 살아 온데서 비롯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첩의 자식이어서 밖으로 함부로 나다닐 수 없었던 김정은은 어머니 고용희와 함께 김일성의 눈을 피해 원산시 초대소에서 숨어 살아야 했다. 그런 탓으로 김정은에겐 할아버지 김일성과 찍은 사진 한 장도 없어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의 할아버지인 김일성은 본처의 자식이었던 김정일과 김경희, 그리고 후처였던 김성애와 사이에서 태어난 김평일, 김영일, 김경진 모두 남산고급중학교에서 공부시켰다. 자식들을 굳이 숨겨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정일은 난잡한 사생활로 하여 배다른 자식들이 많았는데 누가 본처의 자식인지도 구분을 못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김정일의 자식들은 얼마 전 말레이시아에서 김정은에게 살해된 맏아들 김정남을 시작으로 모두 여섯 명이다.

그중 김설송, 김춘송은 김일성으로부터 유일하게 인정을 받은 김정일의 아내 김영숙의 자식들이다. 맏아들 김정남은 영화배우 성혜림과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고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은 일본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의 자식들이다. 김정일은 고용희와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철과 김정은, 김여정을 고위층 자녀들만 다니는 남산고급중학교에 보내지 못했다. 난잡한 사생활의 비밀이 새어나갈 것이 두려워 비록 자식이긴 하지만 세상에 떳떳이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생들에 비해 학습 실력도 낮아

 

김정일과 김평일이 다녔던 남산중학교는 1954년 9월 1일 평양 제1중학교로 발족된 후 1958년 9월에 평양 제7고급중학교로 개명되었다. 그 이듬해인 1959년 4월에는 평양남산고급중학교로, 1967년 4월에는 평양남산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또 1972년 9월부터 남산고등중학교로 불리다가 1984년 4월부터 평양 제1고등중학교로 이름이 고정되게 되었다. 이름이 자주 바뀌다 보니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아직도 평양 제1중학교와 남산중학교가 같은 학교임을 잘 모르고 있다.

김정일이 다닌 남산중학교는 항일 빨치산과 인민군 고급지휘관의 자녀들, 중앙당과 내각 고위 간부들의 자녀들, 김일성 가문을 다루는 4.15창작단의 유명한 예술인, 문화인들의 일부 자녀들만 입학할 수 있는 사회주의식 귀족학교였다. 1984년 김정일이 이 학교의 명칭을 평양 제1중학교이라고 개명한 것은 이 학교를 곁가지로 낙인찍힌 배다른 동생 김평일과 김영일, 김경진도 다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김정일은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이 학교를 다녔다.

김정일의 배다른 동생 김평일과 남산중학교를 함께 다닌 것으로 확인된 탈북자 출신 조명철 전 국회의원은 “김평일은 특히 체력과 예능이 뛰어났다”며 “대단한 수영 실력을 가졌었고, 손풍금 연주 실력이 일품이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당시 필수과목이었던 모르스 무전 실력도 단연 최고여서 최고사령부 무전수 출신이었던 교사와 무전으로 맞대결을 펼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김평일의 동생들인 김영일과 김경진도 학습과 품성이 늘 모범이었다고 알려졌다.

반면 김정일은 8살 나던 어린 나이에 모친인 김정숙이 사망하자 의붓어머니 김성애에게 맡겨져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남산중학교시절에도 폭력적인 행동으로 주변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곤 하였다.

김정일은 어린 시절에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어를 쓰지 않았고 배다른 동생들에 비해 학습 실력도 매우 낮았다. 김정일은 남산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옛 소련식으로 지었던 김유라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소련서 태어난 자신의 경력 지워

 

1940년 8월 일제 관동군의 토벌을 피해 김일성은 소련으로 들어가 하바롭스크에 있던 극동군 산하 제88혼성여단에 합세했다. 그러던 1941년 2월 16일에 김정숙과 사이에서 김정일을 보았는데 당시 소련식으로 이름을 김유라라고 지었다. 조선혁명박물관에 진열된 김정일과 관련된 사적물들 가운데 남산중학교 과정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는데 원인이 당시 성적기록부나 출석부를 비롯한 학교 문건들에 김정일은 소련 하바롭스크가 고향인 1941년생 김유라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면서 김유라라는 이름을 김정일로 고쳤다. 김정일은 생일도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 조직지도부 책임지도원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 김일성의 생년과 맞추어 1942년생으로 고쳤다. 1984년 남산중학교를 평양제1고등중학교로 이름을 고치며 김정일은 옛 학교의 흔적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그와 함께 남산중학교를 수재양성 기관으로 개편하고 현대적인 학교건물과 총련(조총련)에서 보내준 교육설비들을 보내주었다.

마치 북한의 수재양성에 큰 관심이라도 있는 듯이 평양 제1중학교를 과대 포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남산중학교에 남겨진 김정일의 옛 이름 김유라와 1941년생이라는 흔적을 깨끗이 털어내기 위한 교묘한 음모가 감춰져 있었다.

아직 북한의 주민들이 김일성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시절 김정일은 소련에서 태어난 자신의 경력을 이렇게 철저히 지워버렸다. 하지만 김정일도 옛 소련과 중국에 남겨진 비밀 문건들까지 다 감출 수는 없었다.

세상은 김정일의 본명이 김유라이고 1941년 2월 16일 현재 러시아연방 하바롭스크주 바츠코예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음을 잘 알고 있다. 김정은도 아버지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어지러운 과거를 조작해야 할 운명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던 현대판 ‘홍길동’ 김정은, 어찌 보면 부모가 있었음에도 고아나 다름이 없었던 그런 상처가 남아 김정은은 부모 없는 어린이 시설들만 찾아다니며 정상적인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찾지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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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13 [14:15]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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