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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토끼로 4년에 한 번씩 화학무기 실험/한 번 각 250마리 투명형 등 독가스 실험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7/04/20 [14:30]

<김형수 객원기자>

김정일의 맏아들 김정남이 생화학무기 테러로 사망했다는 소식은 충격이다. 김정남은 지난 2월 13일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국가안전보위성 요원들에 의해 살해됐다. 시신부검을 통해 김정남이 신경성독가스인 VX에 의해 살해됐음을 말레이시아 당국은 밝혀냈다.

 

기관지 흡입형 화학무기 보유

 

김정남을 살해한 VX는 베노모우스 어젠트 엑스(Venomous agent X)라는 독성물질의 약칭으로 화학적 명칭은 메틸포스포노티올레이트(methylphosphonothiate)이다. VX는 지금까지 연구된 화학물질 중에 독성이 제일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VX는 신경성 독가스인 사린보다 최소한 백배 이상의 독성을 나타내며 피부를 통해 인체에 흡수될 경우 10분 이내에 목숨을 잃게 된다. 2차 세계대전 기간 히틀러가 유대인과 전쟁포로들을 사살하는데 화학무기인 염소성 독가스를 사용했다.

화학무기는 제1차 세계대전을 승패를 가른 프랑스의 쏨무즈강 전투에서 독일군이 처음으로 사용했다. 당시 사용된 화학무기는 기관지에 직접 침투해 독성을 일으키는 염소성 가스로 이런 화학무기는 방독면만 쓰면 피해를 입지 않았다.

겨자가스나 유황 등으로 만들어지는 염소성 가스가 이런 기관지 침투형 가스이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히틀러는 포로들과 유대인들을 상대로 기관지 침투형 가스보다 더 효력이 강화돼 방독면도 무력화 킬 수 있는 화학무기를 연구했다. 방독면도 무력화 시키는 독가스를 신경성 독가스라고 하는데 신경성 독가스는 기관지로 직접 침투하지 않아도 피부를 통해 흡입된다는 특징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달라붙었다. 핵무기를 개발할 수준이 못되는 기술 후진국이나 가난한 나라들은 신경성 독가스나 세균무기로 대량살상 효과를 얻으려고 분주했다. 신경성 독가스는 화학물질로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어 ‘가난한 자들의 핵무기’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적은 비용과 간단한 시설만 있어도 핵무기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화학무기, 신경성 독가스를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었다. 북한도 6.25 전쟁이 끝난 직후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화학무기와 전염성 세균에 기초한 생물무기를 보유했다.

하지만 북한은 기관지 흡입형 화학무기를 보유했을 뿐 핵무기 급에 이르는 피부 흡입형 화학무기 생산은 못했다. 그래서 초기 북한은 탄저균과 콜레라와 같이 전염성이 강한 세균을 배양하는 방법으로 세균무기 연구를 기본으로 진행했다.

 

1980년대 독자적 화학무기 개발 본격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 독자적인 화학무기 개발을 본격화했다. 김정일은 세균성무기가 장기적인 보관이 어렵고 실제 사용하면 아군도 피해를 입는다는 약점을 꼽으며 신속성과 안전성이 보장된 화학무기개발을 촉구했다.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북한은 자강도 강계시와 평안남도 덕천군 등 4개소에 생화학무기 연구시설을, 함흥? 만포?순천?청진?안주 등 8개소에 생산기지를, 황해북도 사리원과 황해남도 연안군, 세포군 일대에 6개의 저장시설을 갖추었다.

1995년 중앙당 선전선동부 강연과 지도원이 출연한 간부강연회에서 ‘독화학무기 10㎖ 앰플을 서울 상공에 떨어뜨리면 10만 명을 죽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군인들과 대학 기숙사생들을 제일 괴롭히는 전염성 질환이 무좀이었는데 일단 무좀에 걸리면 ‘백약이 무효’였다.

‘화학무기 차단제’는 연고 상태로 치약처럼 짜서 사용했는데 역한 냄새가 났다. 그러나 이 약으로 무좀은 완전히 치료되었다.

이 약은 유사시 화학전이 벌어질 경우 노출된 피부에 바르면 생화학무기의 독성을 무독화 한다고 하였다. 그것이 현재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린이나 VX도 막아 낼 수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생명과학부에서 공부하던 1986년 평양의학대학 인체표본실에서 해부학실험을 수료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 의학대학 1층에 있는 대형탱크 속에서 포르말린에 잠긴 수십 구의 성인시신들을 목격했다고 한다. 해부조는 4명이 한조로 구성됐는데 매 조에 포르말린에 잠긴 시신 한구씩 배당되었다. 대부분의 시신들은 어린애 시신이었는데 평양산원과 구역병원 산부인과 해산실에서 중절된 시신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인시신들도 있었는데 해부학 실험실습 시간에 한 친구가 “이 어른 시신들은 어떻게 표본으로 들어왔는가?”고 해부학 교수에게 질문을 던져 당황하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질문을 받은 해부학 교수는 “학생은 제 시간에 맞춰 실습을 잘하면 그만이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가 어데 있나?”고 화를 냈다. 보름동안의 해부학실습이 다 끝나고 해부학 교수와 술자리를 같이 할 기회가 생겼는데 거기에서 솔직한 이야기가 나왔다. 해부학에 쓰이는 시체들은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화학무기 연구과정에 죽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양강도 풍서군에 화학무기 실험장

 

그때까지만 당과 조국을 배반한 사람들이니 당연한 게 아닌가 생각을 했다. 지금 그 생각을 하면 세뇌되어 정의와 인권에 대한 분간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수치스러울 뿐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와 화학부, 원자력학부에는 군부대에서 현역으로 입학해 졸업 후에 다시 부대에 복귀하는 위탁생들이 있었다. 부대의 비밀이 새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위탁생들이었지만 대학생활을 하면서 가까워지게 되면 가끔씩 북한 당국이 화학무기를 연구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평양의학대학 임상학부를 졸업하고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위치하고 있는 ‘고산지대 생물연구소’에 있다가 생물학부에 다시 입학해 생화학을 전공하는 위탁생이었다. 성은 임씨였는데 결핵환자처럼 바짝 여윈 체구였다. ‘고산지대 생물연구소’라고 하니 고산지대의 생태계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기관인 줄로 착각했다. 알고 보니 북한의 핵실험장이 있는 풍계리 만탑산에는 1980년대부터 생화학 무기를 연구하는 ‘고산지대 생물연구소’가 있었다고 했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고산지대 생물연구소’에서 모르모트에서부터 원숭이,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명체를 가지고 생화학 무기를 연구했는데 그 친구는 “독가스를 직접 실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양강도 인민위원회 지방공업관리국 기술준비소에 있을 때 양강도 풍서군에 출장을 나갔다가 황수원저수지로부터 30리 정도 떨어진 곳을 지나게 되었다. 주변산림이 없는 맨땅이었는데 그곳이 북한의 화학무기 실험장이다.

풍서군 기술준비소 소장이 그곳에서 4년에 한 번씩 화학무기 실험을 했으며 개와 토끼를 비롯한 동물을 가지고 실험을 했는데 한 번에 각각 250마리 정도씩 가지고 개활형, 밀폐형, 수분형, 투명형의 독가스 실험을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김정은은 생화학 무기 보유를 넘어 실제 자기의 배다른 맏형인 김정남을 VX 독가스로 살해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금수산기념궁전에 박제품이 돼 누워있는 독재자 김일성과 김정일도 벌떡 일어나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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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20 [14:30]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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