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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실체를 밝힌다]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
평남 대동군 고평면 칠골 출신…태어난 고향 이름도 바꾸니 지나간 역사도 바꿀 수밖에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7/05/18 [15:06]

김일성은 23년 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지만 그의 생일은 손자인 김정은에 의해 북한에서 ‘태양절’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북한의 많은 간부들도 김정은이 김정일의 첩에 불과했던 재일교포출신 무용수 고용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과 그의 모친 고용희는 김일성의 눈을 피해 원산초대소에서 숨어 살아야 했다.

 

출생과 관련한 내용 증명할 사람 없어

 

한마디로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에게 김정은이라는 손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런 관계로 하여 김정은은 지금껏 할아버지 김일성과 사진 한 장도 남길 수 없었다. 김정은이 떠드는 ‘백두혈통’도 온갖 거짓으로 일관된 모략이었다.

김일성이 ‘백두혈통’이라는 근거는 과거사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김일성 일가를 ‘백두혈통’으로 만들어준 세 가지 거짓말, 즉 김일성 일가의 고향 바꾸기와 이름 바꾸기, 과거사 바꾸기의 그 실체를 파헤쳐 보려고 한다.

생전에 김일성이 고향집이라던 만경대를 과연 몇 번이나 찾아보았을까? 북한의 학생이라면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는 ‘혁명 활동’ 교과서를 보면 김일성은 해방 전인 1912년 4월 15일 당시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에서 김성주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고 서술돼 있다. 지금의 만경대구역 만경대동이 그곳이다.

해방 후 김성주가 김일성이라는 이름으로 만경대에 들린 것은 할아버지 김보현과 할머니 이보익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 김보현과 할머니 이보익이 살던 집이 오늘날 김일성이 태어났다고 선전하고 있는 만경대 고향집이다. 하지만 당시까지 김보현과 이보익이 살던 만경대에서 김일성이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할 그 어떤 자료도 없다.

해방 후 김일성의 어린 시절 친구나 김일성이 만경대에서 태어났음을 확인해 줄 사람들이 없었다는 점이 이상하다.

북한은 어린 시절 김일성이 만경대에서 태어났고 동네대장으로 ‘군함바위’에서 일제와 싸우는 놀이를 좋아했다고 선전한다. 그렇다면 해방 후 김일성과 함께 놀고 소꿉시절을 보냈다는 친구들 몇 명 정도는 반드시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김일성의 출생과 관련한 내용을 증명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은 너무도 이상하지 않은가?

김일성 일가는 당시 고평면 남리에 있던 안식교 교회에 다녔는데 훗날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공부했던 평양숭실학교도 기독교 분파인 안식교가 운영했다. 가난 탓인지 모르겠지만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은 18살 나이에 결혼을 했다.

칠골 안식교 장로 강돈욱의 딸로 김형직과 결혼한 강반석은 당시 스무 살이었다. 김형직은 결혼 초기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본가보다 교회 장로로 가정에 여유가 좀 있었던 처가인 강돈욱의 집에서 머물며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 공산주의 단체를 만들었다고 주장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면 김일성의 고향집은 만경대에 있던 묘지기 김보현의 가정이 아닌 기독교 장로 강돈욱의 집이라는 말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면 김일성은 왜 속 시원히 고향을 만경대 주변 칠골이라고 밝히지 못 했는가 이다.

평양의 고위급 간부들은 다 알지만 김일성이 태어난 강돈욱의 집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막히고 한눈으로 봐도 별채까지 달린 부잣집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북한의 선전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강돈욱이 기독교계의 장로였고 김일성의 어머니인 강반석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종교를 미신이라고 선전하던 김일성의 처지에선 자신이 태어난 환경과 고향을 솔직히 밝힌다는 것이 쉽지 않았고 두려웠으리라는 분석이다.

이런 원인들로 하여 해방 후 김일성은 할아버지 김보현이 살던 만경대를 자신이 태어난 고향집으로 거짓 선전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결국 김일성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철저히 숨겨야 했다.

그러나 김일성 역시 자신이 거짓으로 꾸며낸 고향집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았나 보다. 사람은 가장 어려울 때에 고향부터 찾는다고 했는데 김일성은 해방 후 할아버지를 찾아 만경대에 들렸을 뿐 이후 만경대에 들른 기록은 없었다.

가난한 가정에서 어려서부터 ‘례배당(교회)’에 가지 말자고 동네 아이들을 끌고 다녔다는 김일성, 그렇게 끌고 다녔다는 동네 어린이들은 해방을 맞은 고향땅에서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단순히 고향만 왜곡한 것이 아니었다.

김일성이라는 이름도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이다. 아버지인 김형직 사망 후 김일성은 화성의숙에서 공부를 했는데 이때가 15살부터 17살까지 사이였다.

화성의숙은 민족주의 조직인 정의부가 세운 독립군 간부양성소였다. 북한은 예술영화 ‘조선의 별’에서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 동맹’을 결성하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김일성이 나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민족주의 학교인 화성의숙에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이라는 첫 공산주의 단체를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김일성은 화성의숙을 다니던 도중 아버지인 김형직의 사망소식을 듣고 중국 안도현 소사하 마을에 있던 집을 찾아왔다. 북한은 그때 아버지 김형직이 남긴 두 자루의 권총을 가지고 김일성이 처음으로 무장투쟁에 나섰다고 선전한다.

 

김성주라는 본명에서 ‘한별’ 별명 얻어

 

그런데 김일성은 김형직이 사망하자 화성의숙을 그만두고 중국의 큰 도시에 있던 길림육문중학교에 다녔다. 당시 길림에는 중국 만주족들과 조선족들로 이루어진 큰 깡패조직이 있었는데 조선족 깡패조직의 두목이 차광수였다.

김일성은 차광수의 부하였는데 훗날 북한의 역사에는 차광수가 오히려 김일성의 부하로 등장했다. 뿐만아니라 차광수를 비롯한 청년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처음 김성주라는 본명에서 ‘한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설명을 하고 있다. 또 북한은 김일성이 1930년 6월 30일 중국 만주성 장춘현의 카륜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회의’를 조직했는데 이 회의에서 참가자들의 한결같은 염원에 의해 한별이라는 별명에서 김일성이라는 별명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옛 일제의 문건들에 김일성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1922년 경부터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평면 칠골에서 태어난 김성주가 10살이 되던 때에 이미 만주에서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군이 일제와 싸웠다는 얘기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금수산기념궁전에 누워있는 북한의 옛 독재자는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도용한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칠골 출신 김성주라는 사실이다. 태어난 고향도, 이름도 바꾸다나니 지나간 역사도 모두 바꿀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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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18 [15:06]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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