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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실체를 밝힌다] 김정은과 김정운
할아버지 김일성과 찍은 사진 한 장 없어/원산시 고향을 양강도 삼지연군으로 정해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7/06/01 [14:27]

<김형수 객원기자>

김정일의 셋째아들인 김정은의 얼굴이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2001년 4월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에 의해서였다.

 

김정일 전속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폭로

 

김정은의 과거에 대해 알려면 후지모토 겐지가 어떤 인물인지 잠깐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일본에서 평범한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1982년 북한으로부터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받고 평양 고려호텔의 요리사로 일하게 되었다.

이후 김정일의 애첩인 고영희가 숨어 지내던 원산초대소에서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로 일하며 왕재산경음악단 배우 엄정화와 결혼해 딸 2명을 보았다. 그러나 1998년 일본으로 몰래 전화를 한 것이 들켜 1년6개월의 감금형에 처해졌다.

그때부터 후지모토 겐지는 언젠가 자신도 수용소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하여 탈출을 결심하게 되었다. 후지모토 겐지는 2001년 4월 초밥용 식재료 구입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면서 대담하게 탈북을 강행하였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철과 김정은, 김여정 삼남매의 놀이 상대가 되어 어려서부터 친분을 쌓았다. 그랬던 관계로 2009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에 대해 언론에 많은 자료들을 제공했다.

일단 후지모토 겐지가 밝힌 김정은의 본명은 김정운이었다. 한자로 ‘바를 정(正)’자와 ‘운전할 운(운)’자를 썼는데 한마디로 곧은길을 간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김정일의 후계자로 선정된 김정은은 기존의 이름에서 한자를 바꾸었다. ‘바를 정(正)’을 ‘정사 정(政)’으로 ‘운전할 운(운)’을 ‘은혜 은(恩)’자로 고쳐 ‘곧은길을 간다’는 본명의 의미를 ‘지혜롭게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으로 고쳤다. 김정은을 선전하는 북한의 초기 자료들도 지금처럼 ‘은’자가 아닌 ‘운’자였다.

북한이 기존의 김정운이라는 이름을 김정은으로 처음 바꾸어 표기하던 시기가 2009년 6월부터였다. 김정은이 여태 자신의 가정환경에 대해 밝히지 못하고 있는 원인도 태어날 당시 모친을 둘러싼 복잡한 가정환경이 문제였다.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김정일은 본처와 애첩을 비롯해 공식적으로 알려진 여성만 5명이다. 그러다나니 배다른 자녀들이 7명이나 되었다. 김정은 역시 김정일의 본처가 아닌 숨겨놓은 애첩의 자식으로 생전에 김일성조차 모르던 인물이었다.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을 통해 김정은에 대하여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후지모토 겐지는 자기의 저서에서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영희를 김정일의 네 번째 부인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하였다. 스위스 베른의 ‘리베펠트-슈타인 횔츨리’ 공립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김정은과 함께 유학생활을 하던 외국인 동창생들은 김정은이 다른 학생들의 축에 끼우지 못하고 늘 외톨이었다며 틈만 나면 공원에 나가 혼자서 농구를 즐겼다고 회고했다.

 

어릴 때 축구공·배구공 놀이 좋아해

 

후지모토 겐지도 김정은은 어릴 때부터 축구공과 배구공 놀이를 아주 좋아했고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언급했다. 이런 김정은이 어느 날 갑자기 김정일의 후계자로 발돋움을 하면서 이름만 아니라 출생일까지도 전부 고쳐버렸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일본인 전용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 머물던 원산초대소에서 1984년 1월 8일에 태어났다. 그러나 북한은 과거 김정일이 그러했던 것처럼 내부 선전 자료들을 통해 김정은이 태어난 해를 1982년생으로 왜곡하고 있다.

김정일의 첫 여성은 해방 전 민족주의 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홍명희 선생의 딸 홍일천이었다. 그를 만나 1966년에 첫 자식인 김혜경을 보았고, 이후 노동당 선전선동부에서 사업할 때 영화배우 성혜림과 사이에 맏아들 김정남을 보았다.

김일성이 직접 골라주고 인정한 김정일의 본처는 김영숙이었는데 그 사이에서 두 딸인 김설송과 김춘송이 있다. 김정일은 본처인 김영숙과 살면서 만수대예술단 무용수였던 고영희와 바람을 피워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을 보았다.

 

후계세습 위해 이름과 생년일 바꿔

 

만수대 예술단 무용수였던 고영희는 재일교포 출신이었는데 귀국선을 타고 원산항에 들어 올 때의 본명은 고영자였다. 고영희의 아버지 고경택은 해방 전 일본 오사카의 나리타 군수공장에서 조선인 징용자들을 관리하던 악질 친일파였다.

일본이라면 치를 떨던 김일성이 친일파 후손인 고영희와 자신이 후계자로 정한 김정일이 동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대번에 후계자 지위를 박탈했을 것이다. 하기에 김정일은 김일성이 사망할 때까지 고영희의 존재를 철저히 숨겨왔다.

김정은은 지금껏 어릴 때의 사진을 일부 공개했지만 그 중에서 제일 먼저 내놓아야 할 할아버지 김일성과 찍은 사진은 한 장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생전에 김일성이 김정은의 존재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사진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2008년에 김정일은 뇌혈전으로 쓰러지면서 외국의 유명의사들을 불러 들여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경과가 좋지 않았다. 서둘러 후계자 문제를 결정하게 되었는데 맏아들 김정남과 둘째 김정철, 셋째 김정은을 놓고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김정일의 맏아들인 김정남은 외교활동에 뛰어났지만 늘 개혁개방을 주장하는 인물이었다. 더욱이 김정남은 김정일로부터 버림을 받고 모스크바의 작은 병원에서 오랜 기간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비참한 운명을 고한 성혜림의 아들이었다. 고영희와 사이에 태어난 둘째 아들 김정철은 성격이 너무 온순한데다 호르몬 과다분비 증세로 일생동안 몸조리에 신경을 써야 할 인물이었다. 그에 비하면 셋째인 김정은은 김정일을 닮아 성격이 포악한데다 명예욕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철학적 상식이 빈곤해 선대 수령들의 잘못을 따질 능력이 못 된다는 점도 아마 김정은을 후계자로 만드는데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김정일도 너무 어린 김정은의 나이가 걱정됐는지 그를 1982년 생으로 둔갑시켰다. 이리하여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세습한 3대가 다 마지막 숫자가 2년으로 끝나는 해에 출생한 것처럼 신비화했다. 후계세습을 위해 이름과 생년도 바꾼 김정은은 최근 들어 가짜고향을 만드느라 혈안이 됐다.

순수 ‘백두혈통’임을 과시하며 권력을 잡은 김정은에게 러시아의 하바롭스크에서 태어난 아버지 김정일과 일본 오사까에서 태어난 어머니 고영희는 큰 걸림돌이었다. 혈통으로 따지면 김정은은 백두산 줄기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짜낸 게 고향을 백두산으로 옮기는 묘안이었다. 북한은 원산시에서 태어난 김정은의 고향을 양강도 삼지연군으로 정하고 삼지연 건설을 대대적으로 벌려놓았다. 하지만 고향이 백두산이면 저절로 ‘백두의 혈통’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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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01 [14:27]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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