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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서 배운 참 민주주의…통일되면 북한서 실행에 앞장설 것”
[통일을준비하는사람들] ‘거리 소년의 신발’ 발간한 이성주 북한인권시민연합 컨설턴트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7/06/14 [16:33]

탈북민 사회에서 이변이 생겼다. 제19대 대통령선거를 2주 앞둔 4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한반도민주청년연합, 남북현대사산책, 통일시민아카데미, 남북청소년나눔운동 등의 소속 탈북청년 40여명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이들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 더불어 사는 따뜻한 공동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문재인 후보에게 희망을 건다며 문 후보에 의한 정권 교체만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탈북민 단체의 공개적 진보정당 대선후보 지지는 초유의 일이다. 그동안 과반의 탈북민 단체나 다수의 탈북민들이 보수정당을 적극 지지하던데 비하면 말이다. 시대의 선각자들이라 불리는 청년들에게서 발생한 이러한 변화적인 모습은 기성 탈북민 사회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확실한 것은 시민사회 활동을 하는 탈북단체장 및 청년들에게서 북한주민들의 비참한 인권 해결을 위해 남한사회나 국제사회가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는 나름대로 분명한 견해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청년들은 미래를 앞서가는 사람들이 분명해 보인다. 요즘 탈북민 사회에서 영문으로 된 책을 미국에서 출간한 탈북청년이 있어 화제다. 그 주인공은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이성주 컨설턴트이다. TV에도 자주 출연하여 낯설지 않은 그와 서울 강남의 커피숍에서 마주 앉았다.

▶고향이 어딘가?

1987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어머니와 내가 우리집 식구 전부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고 전체 인민이 김일성 3년 상을 치렀다. 이 기간 음주가무가 중단되었고 밤낮으로 인민들은 김일성 동상을 찾아 울고 또 울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수령의 제사를 3년 상으로 치루는 우리나라는 아무리 봐도 희망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이것이 상부에 보고되어 강제 제대를 당하고 1997년 함경북도 경성군으로 추방되었다.

▶무척이나 억울했겠다.

경성군 행정위원회로부터 배정받은 주택은 대략 3평 남짓의 허름한 단층집이다. 아버지는 전기사정으로 기계가 멈춘 경성OO공장 노동자로 배치 받았고 나는 경성OO인민학교에 편입학하였다. 아버지는 중국밀수꾼을 친구로 사귀었고 그를 통해 무엇이든 장사를 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고 애써 노력하였다.

▶인민학교시절 어떤 추억이 있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당당한 어조로 “얘들아! 오늘은 총살구경을 가자”고 하기에 내 귀를 의심하며 눈이 둥그레졌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촌놈’이라며 놀렸다. 경성군 룡천철다리 아래에서 진행된 ‘반역자사형식’에서 안전원(경찰)이 공개한 남녀사형수 죄목은 남자는 구리(동) 도둑질을 하여 중국에 팔아넘긴 죄, 여자는 중국에 가서 남조선 선교사를 만나고 성경책을 보았다는 것이다.

인민학교 시절 경성군 룡천철다리 아래서

진행된 ‘반역자사형식’에서 남녀총살광경

기억에 생생…죄목은 도둑질과 중국에서

선교사를 만나고 성경책을 보았다는 것

▶좀 더 자세히 소개해 달라.

호송지프차에 실려 온 사형수들은 허름한 막사에 들어간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고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청년호송원(경찰) 여러 명이 달려들어 사형수를 구타한다. 물론 밧줄에 온몸이 묶였지만 만에 하나 발악을 할까봐 그런 것 같다.

수백 명 대중 앞 말뚝에 세워진 사형수들의 눈은 흰 천으로 가려졌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졌다.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3명의 군인이 모두 9발의 총탄을 사형수에게 발사하였다. 이런 사형은 1년 반 동안 8회 정도 있었다.

▶경성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1998년 아버지가 쌀을 구하려 중국을 간다며, 5개월 뒤에는 어머니가 같은 목적으로 친인척이 있는 강원도로 간다며 집을 나갔다. (그 뒤로 어머니 소식은 지금까지 모른다.) 이후 모 동급친구와 씨감자(밭에 심은 싹이 돋아나는 감자) 도둑에 나섰고 경성장마당에서 전문 도둑질하는 꽃제비(방랑소년)가 되었다.

군인이던 아버지는 말 한마디로 숙청당해

쌀 구하려 중국으로 가고, 어머니도 집나가

먹을 것 찾아 경성장마당서 꽃제비로 도둑질

▶그 생활도 치열한 경쟁이라던데...

도둑질 선배인 그 친구가 알려주기를 “이 생활을 하려면 오직 자신, 즉 자기 뱃속에 무엇을 넣을까? 하는 생각만 해야 한다. 너희 아버지, 어머니도 너를 버리지 않았냐? 배가 고프다는 생각보다 손이 먼저 빨라야 한다”고 하였다.

구걸해 먹고, 훔쳐 먹고, 덮쳐 먹고... 어떻게든 먹어야만 살아남는다. 꽃제비 유형은 단신형(1인)과 무리형(5~7명이 된 조)이 있는데 단신형은 오래못가 죽는다. 내가 4년간 체험한 무리형은 협동으로 생활하기에 쉽게 죽지 않는다.

▶사회에 대한 원망이 커겠다?

어린 나이여서 전혀 없었다. 또한 외부세계를 조금이라도 알아야 비교를 하겠는데 인민들이 못 사는 것은 전부 미국과 남조선 탓이고, 명절에 아이들에게 사탕 몇 알을 공급해도 수령의 하늘같은 배려라고 하니 말이다. 부모에 대한 원망은 많았다. 이렇게 나를 버리고 도망 갈 거면 왜 낳았냐고.

▶탈북동기와 경로는?

2002년 가을 아버지한데서 소식이 왔다. 자신은 중국에 있으니 안심하고 보낸 브로커와 함께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오라고 했다. 그동안 동고동락하던 꽃제비 친구들에게 적당한 핑계를 대고 새벽 2시 브로커를 따라 나섰다.

아버지는 당시 남한에 있었고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중국에 있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공포와 불안 속에 연길에서 2일, 대련에서 3일을 보내고 브로커들이 만들어준 여권을 갖고 대련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 들어왔다.

▶15살에 왔으니 학업이 힘들었겠다.

하나원 생활을 마치고 2003년 사회에 나와 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일반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북한에서 꽃제비 생활 버릇이 있어 1년도 못되어 문제아가 되어 자퇴를 했으며 중학교 졸업은 검정고시로 봤다. 그 뒤 부산지구촌고등학교에 입학해 3년 기숙사생활을 하며 졸업했다. 이후 서강대학교에 입학하여 정치외교학과와 신문방송학과를 복수 전공했고 2013년에 졸업하였다.

탈북한 아버지 도움으로 2002년 한국입국

일반중학교서 적응 못하고 문제아로 자퇴

검정고시로 부산지구촌고등학교에 입학해

이후 서강대 정치외교·신문방송학과 전공

▶이후 경력을 말해 달라.

2014년 캐나다에 가서 국회하원 수석부의장인 베리드볼린 사무실에서 인턴보좌관으로 5개월간 근무하였다. 하원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발의하는데 내가 겪은 체험담을 증거로, 또 탈북민의 자격으로 작은 힘을 보태었다.

이후 2015년에는 영국에서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을 준비했다. 영국정부에서 주는 쉐브닝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고 이듬해 10월 석사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서울에 있는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하고 있다.

▶어떤 단체인가?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장 박범진)은 1996년 5월 서울에서 설립된 북한인권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비정치 인권단체이다.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은 우선 탈북자구호와 관련하여 유엔에 내는 보고서 및 국제회의 준비 업무이다.

다음으로 탈북민 대상 청년리더십 교육과 자원봉사 훈련이다. 또한 남과 북의 청년들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하는 통일예행연습을 기획한다.

2015년 영국에서 국제관계학 석사과정 준비

영국정부에서 주는 쉐브닝장학금 받으며 공부

현재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컨설턴트로 근무

▶이번에 출간한 번역 책 내용이 뭔가?

한국어 제목은 ‘거리 소년의 신발’이며 작년에 미국에서 낸 영문제목은 ‘Every Falling Star’(별똥별)이다. 땅바닥에 닳고 험하게 낡은 신발로 꽃제비 생활을 하던 기억을 떠올려 번역본 제목(거리 소년의 신발)을 지었다.

책에는 평양의 군인 가정에서 태어난 내가 어느 한 순간 당국의 황당한 처사로 어린 나이에 가족과 흩어져 산전수전을 겪은 쓰디쓴 경험이 담겨 있다. 꽃제비로 4년간 생활한 나의 눈물겨운 스토리를 실감 있게 기록했다.

▶책을 써야겠다는 계기가 있었나?

2010년 경 미국에 단기어학연수를 갔었다. 주말이면 청소년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친구들 중에는 가정불화, 마약, 총기사고 등으로 가출한 청년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니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내 이야기를 영문으로 책을 낸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작년 미국에서 어린시절 경험 ‘별똥별’책 발간

한국어 제목 ‘거리 소년의 신발’…닳고 험하게

낡은 신발로 꽃제비 생활 하던 기억 떠올려…

평양의 군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느 한 순간

당국의 황당한 처사로 어린 나이에 가족과

흩어져 산전수전 겪은 꽃제비로 4년간 생활

그 시절 눈물겨운 스토리 현실감 있게 기록

▶많은 탈북청년들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이 정상이라고 본다. 과거처럼 탈북민이라면 무조건 정치권의 보수정당만 지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묻지마 식으로 절대 보수지지, 특정정당만 지지하는 것은 독재국가 북한과 뭐가 다른가?

우리는 젊은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의 대학가에서 참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기초로 한다는 것을 생동감 있게 배웠다. 민주국가에서 국민들 정견이 다양하듯 탈북민 사회에도 정치에서의 서로 다른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정의는 뭐라고 보나?

종교와 함께 정치정당 및 정책의 다양성이 존재해야 하며 그것을 서로가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 탈북청년들은 자유국가 대한민국에 와서 참 민주주의를 배웠다. 통일이 되면 이 제도를 북한에 도입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를 실행하는데서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바로 준비하는 우리 청년들이다.

미국유학…국제관계학 갈등과 해결학문 연구

조지프 나이 같은 국제정치 학자 되는 게 꿈

언젠가 찾아올 통일에 대비 남북한 사람들의

정서 차이 줄여야…통일 예측하는 사람 없어

내일도 이뤄 질수 있어 그래서 준비는 필연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내년에 미국유학을 떠날 계획이다. 현지에서 국제관계학의 갈등과 해결학문을 연구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조지프 나이 같은 국제정치학자가 되는 게 꿈이다. 언젠가 찾아올 통일에 대비해 남북한 사람들의 정서 차이를 줄여야 한다.

과거 지금의 한반도 분단이 70여년이나 지속 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한반도 통일이 언제 된다고 예측하는 사람도 없다. 분명한 것은 내일도 이루어 질수 있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 준비는 필연이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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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14 [16:33]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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