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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실체를 밝힌다] 인민군 창군절의 유래
창립 2월 8일…83년도 김일성 우상화 영화/‘조선의 별’ 방영 후 4월25일 변경…학계논란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7/06/14 [16:48]

<김형수 객원기자>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은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명칭으로 화려하게 변신하게 된다. ‘조선의 별’ 제6부 ‘불타는 봄’이 절정이었다.

올해 북한정권은 인민군 창군절인 4월 25일 김정은이 참관한 가운데 사상 최대 규모의 군종합동타격시위라는 걸 조직했다.

이번 창군절을 계기로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핵시설 타격을 거론하고 중국마저도 미국의 공격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김정은은 한 발 물러나 구닥다리 무기들을 꺼내들고 한바탕 객기를 부렸다.

 

영화 ‘조선의 별’방영 후 창군절 날짜변경

 

그래서인지 북한의 창군절은 가슴이 섬뜩한 하루였다. 사실 1980년대 초까지 북한의 창군절은 인민군 창립일인 2월 8일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창군절은 4월 25일로 바뀌었다.

1983년 북한은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예술영화 ‘조선의 별’을 처음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그 과정에서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은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명칭으로 화려하게 변신하게 된다. ‘조선의 별’ 제6부 ‘불타는 봄’이 절정이었다.

김일성도 자신이 쓴 미완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현지 주민들이 동북항일연군 조선인 부대들을 보면 ‘고려홍군’이라고 환영했다는 내용을 서술했다.

실제 조선인민혁명군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북한의 창군절이 인민군 창군일인 2월 8일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창건됐다는 4월 25일로 바뀐 것은 1986년이었다. 그 배경엔 당시 새로 창작된 ‘조선의 별’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김일성을 우상화한 다부작 예술영화 ‘조선의 별’ 제6부의 제목은 ‘불타는 봄’이었다. 이 영화에서 김일성이 1930년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해 일제와 무장투쟁을 벌렸고 그에 기초해 193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을 창설하는 장면이 나온다.

북한 당국은 예술영화 ‘조선의 별’에서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창설했다는 과정이 방영되자 그 내용에 발을 맞춰 발 빠르게 기존의 창군절을 4월 25일로 변경했다. 하지만 창군절이 바뀐 배경을 두고 북한의 학계에선 논란이 많았다.

김일성 종합대학 학생들과 교수들도 조선인민혁명군이 실재한 조직이냐, 아니면 ‘조선의 별’ 대본을 쓴 영화문학 작가 종순의 머리에서 나온 허구냐를 놓고 논쟁을 거듭했다.

북한 당국이 김일성을 우상화하기 위해 만든 영화 ‘조선의 별’은 당시 북한의 대학생들과 지식인들 속에서 뜻밖에도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독서열풍을 몰고 왔다. 그만큼 진실을 파헤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의미이다. 북한 당국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사태를 조기 진화하기에 바빴다.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에 대학생들 의문

 

북한은 김일성과 함께 빨치산활동을 했다는 항일 빨치산 참가자들을 내세웠다. 1988년 4월 25일 빨치산 출신들 가운데서 제일 나이가 어린 황순희가 김일성종합대학에 나와 조선인민혁명군이 창건되던 나날들을 강연했다.

황순희는 당시 조선여성동맹 당위원장을 거쳐 노동당 중앙위 경공업부와 당 역사 연구소 산하 ‘4,15 창작단’에서 사업을 하던 시기였다. 젊었던 황순희는 마치 자신이 목격한 것처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과정을 설명했다.

황순희의 강연을 지켜보던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 속에서 의문을 표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한 대학생이 “황순희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창건될 때 없었던 인물이 아니냐?”라고 주변만 들릴 만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지 않아도 조선인민혁명군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던 학생들이 쑤군거리기 시작하며 주변이 좀 소란해졌다. 그때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를 김일성종합대학 당위원회 지도원과 청년동맹 위원장이 불쑥 나타났다.

분위기가 긴장됐다. 그는 주변의 시선이 쏠리지 않도록 눈치를 봐가며 주변에 앉아있던 생물학부 학생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가는 것이었다. ‘아차, 잘 못 걸려들었구나’ 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당시 노동당의 정책을 설명하는 강연이 모두 그랬듯이 황순희 역시 질문을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설령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질문이 허용된다고 해도 김일성의 존엄과 관련된 문제여서 누구도 감히 질문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강연은 끝났지만 속은 정말 찜찜했다. 이제 대학 당위원회에서 부르면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거짓말이라도 했다가 드러날 경우 어떤 처벌을 받을지 두려운 생각에 저녁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였다.

당시 대학 당위원회 지도원이 이름을 적어간 학생들 중엔 최연실이라고 남학생들 속에서 인기가 높던 여학생도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나오는데 그가 지키고 있었던 듯 출입문 쪽에서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 여학생의 지혜로운 변명으로 처벌 면해

 

얼마 멀지 않은 공원의 큰 나무아래에 이름이 적혀간 학생들 7~8명이 모여 있었다. 설명도 없이 최연실이 나서 앞으로 대학당위원회에 불려 가면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고 말을 꺼냈다.

그럴 듯한 계획이었다. 당시 강의가 끝나면 통일거리 건설장에 지원을 나갔는데 마침 생물학부에서 예술선전활동으로 건설자들을 고무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러니까 황순희의 강연에 의문을 품은 게 아니라 학부에서 긴급하게 제기된 과제에 대해 몰래 논했다는 거짓말을 하자는 취지였다.

그날 점심시간이 지나 이름이 적혀 간 학생들에게 모두 대학당위원회로 모이라는 지시가 내렸다. 장철수가 먼저 나서 당시의 상황을 열심히 설명했다.

여학생들이 예술 활동을 벌릴 때 입을 의상을 대학생복으로 할 것인지, 노농적위대 군복으로 할 것인지를 논했다는 거짓말이었다.

장철수의 얘기에 지도원이 버럭 화를 냈다. “중요한 강연이고 정치행사인데 그런 논의를 해서 주변에 소란을 피워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번 4월 25일 북한의 창군절을 보내면서 그 날이 떠올랐다. 그때 당위원회 지도원이 정말 속았는지, 아니면 알고도 속는 척 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대학 당지도원이 알면서 속는 척 했다고 믿고 있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을 위해서 모르는 척했다고 믿으며 늘 고마운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 존재도 하지 않았던 조선인민혁명군,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조선인민혁명군의 창건일을 창군절로 기념하는 괴이한 나라 북한이 얼마나 존재할지 알 수 없지만 남과 북이 통일되면 반드시 그날의 그들을 다시 만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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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14 [16:48]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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