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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을 파라…무엇이든 끈질기게 하면 보답은 꼭 있다”
[탈북민의 삶 그리고 희망] ‘평양칼국수’ 박정은 사장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7/10/19 [14:00]

서울에서 20년 살아보니 남과 북이 달라도 너무 다름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5천만 국민이 살고 있는 남한에서는 1년 내내 사람이 섭취할 다양한 음식이 풍부하여 ‘오늘은 무슨 음식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있어도 ‘오늘 먹을 음식은 있나?’ 하고 근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주거지 어디에나 슈퍼마켓이 있으며 도시들에는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등이 많다. 거기에 음식점 종류와 간판은 우후죽순처럼 널려있다. 남한에서 하루에 수백 개의 음식점이 새로 생기고 없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남한이 음식천국이라면 북한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 잘살고 못사는 차이가 하늘땅만큼이나 격차가 크다. 의류, 식품, 음식 등 사람이 쓰고 먹고 사는 무엇이든 부족한 북한이다.

사람이 쓰고 사는 생필품 모두를 국가에서 인민들에게 공급하는 것이 원칙이나 물건이 없다나니 그 원칙마저 사라졌다.

그렇게 굶주리는 사회에서 살았던 탈북민들이어서 일까? 의외로 남한에 와서 음식점에서 일하거나 경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서울 금천구에서 ‘평양칼국수’를 오픈하고 영업 중인 탈북여성 박정은 대표를 만났다.

▶고향이 어디인가?

1977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고 여동생이 있다. 중학교 교원(교사) 출신인 어머니는 주부였다. 청진교원대학을 졸업하고 1998년부터 3년간 유치원 교양원(교사)으로 일을 하였다. 아버지가 직업군인(장교)이라 자주 이사하는 것이 싫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살았다.

▶독립생활이 어려웠을 덴데…

1999년 봄, 대홍단감자농장에 진출하려고 무산으로 갔다. 무산역을 나오는데 어떤 청년이 “일하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자리가 있다”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귀가 솔깃해서 따라나섰는데 어느 골짜기 시냇물을 건너 어떤 남자에게 나를 인계하였다. 그 시냇물은 두만강이고 그 남자는 중국인 브로커였다.

허나 중국 땅에 발을 들여놓은 지 하루 만에 공안에게 체포되어 북송되었다. 무산구류장을 거쳐 농포집결소로 수감되었다. 하루 14시간 이상의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어떤 날은 지역의 안전부, 보위부에서 나온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외부에 나가 노동을 하기도 하는데 주로 자기들의 부업지 농장일이다.

▶집결소(수용소)안의 생활 실태는 어땠었나.

곰팡이가 낀 감방 곳곳에 이가 득실거렸다. 수감자들의 식사는 짐승도 먹지 못할 사료 같은 것이나 그래도 죽지 않으려면 먹는 방법 밖에 없었다. 계호원(간수)들이 수감자를 대하는 것은 마치 개, 돼지보다 못하게 취급한다.

‘이년아 개년아 쌍년아’라는 욕은 기본이고 쩍하면 구타로 자신들의 분풀이(스트레스 풀기)를 한다. 생리대가 없어서 중국에서 잡혀 나온 여성들의 속옷을 음식과 바꿔 그것을 찢어 생리대로 사용했다. 여자들의 방에서는 생리대를 빨아서 줄에 널어놓은데 어떤 날은 방에 들어가면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중국인 브로커에 의해 중국 땅에 도착

하루 만에 공안에게 체포되어 북송 돼

무산구류장을 거쳐 농포집결소로 수감

하루 14시간 이상 강제노동에 시달려

 

▶탈북결심은 어디서 했나?

집결소 안에서 중국에서 잡혀 온 여성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었다. ‘중국에서는 하루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3일 먹고 산다’는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 수감 두 달 만에 지인의 도움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마음먹고 나를 중국으로 넘긴 무산 청년을 찾아가 행패를 부렸고 그리고 부탁했다. 제대로 중국 브로커를 소개해달라고.

▶재탈북 노정은 어떻게 되나.

1999년 가을, 다시 두만강을 건너 이번에는 내몽고 쪽으로 들어갔다. 장애인에게 팔려가서 살다가 누군가의 신고로 체포되었다. 석 달 뒤 단동을 통해 신의주로 북송되었다. 다행히 2000년 2월 김정일의 ‘단순 생계형 탈북자들은 용서하라’는 방침 덕에 풀려났다. 2주간 걸리는 기차를 타고 고향에 돌아왔다.

 

세 번의 탈북과정…흑룡강성으로 들어가

공안이 탈북여성인 줄 알면서도 범죄를

짓지 않았다면 묵시…단속 심하지 않아

 

▶세 번째 탈북과정은 더 두려웠고 어려웠을 것 같다.

5월, 다시 두만강을 넘어 흑룡강성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이 심하지 않았다. 공안이 탈북여성인 줄 알면서도 범죄를 짓지 않았다면 묵시한다. 당시 탈북여성을 체포해가면 그 여성이 낳은 아이를 경찰서에 가져다주면서 ‘이 아이를 경찰에서 키우라’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한에는 언제 들어왔나?

흑룡강성에서 8년을 살았다. 냉면, 김치장사 등을 하면서 돈을 모아 북한의 부모님에게 보내주는 재미가 쏠쏠하여 중국생활에 푹 빠졌다. 그러다가 남한으로 먼저 간 언니들의 전화를 받으며 마음이 변했고 2009년 12월 서울에 왔다.

▶서울에 와서 처음 한 일은?

중국에서 8년간 식당 일을 했으니 그걸 계속 하기로 했다. 강남의 모 한식집에서 2년 6개월간 주방에서 일을 하면서 한식조리를 터득했다. 중국에서 한식은 특별했지만 남한에서 전부가 한식이니 그 만큼 메뉴가 다양했고 경쟁이 치열하다.

2011년 금천구 시흥동에 ‘웰빙건강쌈’이란 식당이름으로 개업을 했다. 창업자금은 정착금과 그동안 벌었던 돈, 친구들에게 빌린 돈 합쳐 30평 규모로 시작하였다. 주 메뉴는 오리고기와 냉면, 쌈밥 등이다. 4년간 그런대로 장사가 잘되니 건물주가 임대료를 높여 받기에 고개를 가로 젓고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얼마 전 두 번째 식당을 개업했다.

주변에서 ‘탈북아줌마 욕심이 많다’고 하는데 듣기 좋았다. 2주 전 ‘웰빙건강쌈’에서 200m 떨어진 거리에 35평 규모의 ‘평양칼국수’를 개업했다. 개업일에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이 다 나갈 정도였다. 우리 식당을 찾는 일부 단골고객들은 “이 식당의 음식 맛도 맛이지만 사장님의 미소가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한다.

솔직히 요리를 공부하지는 않았다. 그냥 음식 만드는 것이 재밌고 그 일에 몰입하다나니 이제는 그것 외에는 아무 일도 못하겠다. 어릴 때 어머니가 ‘사람은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 말뜻을 지금에야 조금 알겠다.

 

중국에서 하던 식당 일 계속 하기로 결정

강남 모 한식집에서 2년 6개월간 주방 일

한식조리 터득…남한 메뉴다양해 경쟁치열

2011년 금천구 시흥동서 ‘웰빙건강쌈’이란

이름으로 개업…현재 200m떨어진 거리에

‘평양칼국수’ 개업, 단골고객 꾸준히 늘어

 

▶박 사장의 영업 특성은 뭔가?

음식을 만들 때 언제나 내가 먹는다는 심정으로 만든다. 조금이라도 맛이 이상하면 과감하게 버린다. 어떤 음식을 개발할 때 드는 비용, 시간을 절대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손님을 맞고 보내는 인사의 예절이다. 직원 4명에게도 항상 이것을 상기시킨다. 서비스업은 미소가 생명이라고.

 

음식은 내가 먹는다는 심정으로 만들어

조금이라도 맛 이상하면 과감하게 버려

손님 맞고 보내는 인사예절이 가장 중요

직원 4명에게도 항상 이것을 상기시켜

 

▶자신이 탈북민임을 숨기지 않나?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내가 탈북민임을 단 한 번도 숨긴 적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답답해서 못 살 것 같다. 그런 것 숨기다가 속병이라도 나면 큰일 아니겠나? 탈북민이 어때서? 나는 북한을 세 번이나 뛰쳐나온 용감한 여성이다.

▶후배들에게 조언 한다면…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다. 주변에서 이것저것 해보면서 시간 낭비, 돈 낭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무엇이든 끈질기게 일하면 그에 대한 보답은 꼭 온다. 내 경우를 봐도 식당일과 경영을 8년 넘게 하니 주변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생기더라. 분명 남한에서는 자기 고생의 보람이 있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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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19 [14:00]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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