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2017.12.16 [23:14]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정치  경제  군사/외교  사회/NGO  탈북민  인터뷰  통일교육  오피니언  북한풍물기  생활/문화
오피니언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림일 칼럼] 박정희를 독재자라면 김일성은…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7/11/16 [15:28]

<림일 탈북작가>

내가 북한에서 교육받은 대로 아는 김일성은 1912년 4월 15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청소년기에 반일군대를 창건하고 일제와 싸워 1945년 8·15해방을 이룩했다. 이후 그는 개인의 땅을 강제로 몰수하여 국가가 소유토록 했다.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국한 김일성은 자신의 남침야욕으로 도발한 1950년 6·25전쟁에서 ‘미제’와 싸워 3년 뒤 ‘승리’하였다. 이후 전체 인민에게 직업 및 연령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식량배급제’와 남조선간첩 색출명분의 ‘통행검열제도’를 실시했다. 이쯤 되면 북한주민들은 목장에서 사육되는 동물이나 마찬가지다.

전체 북한주민들은 어려서부터 의무적으로 당국의 강제조치에 의해 ‘사상조직생활’을 하고 있다. 김일성사상학습, 노동당정책강연, 주생활총화 등 사람들의 사상과 정신을 노동당에 의해 통제받는 영혼 없는 식물인간으로 살고 있다.

북한전역에 세워진 수 만개의 김일성 동상, 박물관, 기념관, 태양상, 영생탑 등은 분명 인민들 굶주림의 가장 큰 원인이다. 또한 100만 인민군 10년 복무제와 핵개발과 미사일발사 등이 끊이지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아들에 이어 손자가 나라를 통치함은 전 세계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김일성은 독재자가 분명하다.

서울생활 초기 어느 날 신문에서 ‘독재자 박정희’라는 문구를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잠시 내가 평양에서 ‘노동신문’을 보지 않나 하는 착시현상마저 들었다. 과연 한국전쟁의 주범인 김일성에게 붙는 ‘독재자’라는 별칭이 박정희에게도 맞을까?

100년 전 오늘(11월 14일) 경상북도 구미에서 태어난 박정희는 1961년 제2군 부사령관으로 재임 중에 5·16군사정변을 일으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었고, 1963년 육군대장으로 예편하며 제5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유신초기에는 새마을운동으로 나라의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였고 제5차 경제개발계획을 완성했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3위 경제대국건설이 최고목표였던 박정희의 국민빈곤 탈출의 꿈은 확실히 이루어졌다. 적어도 식량이 없어 굶어죽는 국민이 없으며 살찌는 것이 너무 괴로워 다이어트와의 생사판결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 6대 자동차생산국, 세계 7대 무역대국의 타이틀을 가졌으며 세계경제 10위권에 있는 남한이다. 일반 국민들이 직장에서 휴가를 받고 해외로 여행을 다녀오는데 이는 북한에서는 물론이요, 가난한 나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다소 장기 집권했던 김일성과 박정희는 분명 상반되는 인물이다. 냉정히 말해 1민족 2국가인 한반도의 70여년 근대정치사에 새겨진 군인출신의 두 사람은 극단적 보수독재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그들은 시대와 환경, 이유와 과정이 어떻든 결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고작해서 ‘인민들에게 쌀밥에 고깃국을 먹이는 것이 평생소원’ 이었던 김일성은 역사의 패인이 되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마냥 운둔해서 살았던 그는 북한사회를 남한경제의 40분에 1에도 못 미치는 가난하고 빈곤한 나라로 만들었다.

국민을 배불리 먹이겠다고 외국에 가서 차관을 얻어오는 등 동분서주하며 18년 집권한 박정희를 독재자라면, 48년 집권하며 굶주림으로 2천만 인민을 통치했고 죽어서도 수억 달러짜리 시신궁전에 있는 김일성은 뭐라고 해야 할까?

2017년 11월 14일 -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에 즈음하여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7/11/16 [15:28]  최종편집: ⓒ 통일신문
 
18년 폭압정치를 한 박정희는 독재자 다카키 마사오 진면목 17/11/19 [19:47] 수정 삭제
  일제 시절 창씨 개명한 다카키 마사오 - 박정희는 일본천황에 충성결의 혈서를 쓰고 일제 만주육사 출신 장교가 된 후, 반일 독립운동가를 사냥하는 일제장교로 입신양명을 꾀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일제는 항복선언을 한 후 패망한다.
그 후, 그는 남로당 장교로 변신하였다가 검거되지만, 사형직전 조직을 배신하고 동료들을 밀고하고 혼자 살아남는 비열한 선택을 함으로써 기사회생한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운 좋게 다시 복권되어 전쟁통에 승승장구 반전의 기회를 잡은 박정희는, 4.19 민주항쟁 이후 탄생한 민주정부를 쿠데타로 붕괴시켜 권력을 찬탈하는 반민주 폭거를 저지른다.
그 후, 1979년 심복 김재규의 저격으로 궁정동 안가에서 비명에 가는 그 순간까지 18년간 중앙정보부와 군부, 경찰을 손아귀에 쥐고 김일성에 버금가는 독재 철권 정치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유린하며,
무자비한 그의 독재에 저항하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고 그 가족들의 삶을 파괴시키는 천인공로할 죄악을 저질렀다.

기밀해제된 미 비밀문서와 '프레이저 보고서’에서 비친 박정희는 어떤 인물이었던가?
  " 한 마디로 말해서 박정희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감정기복이 심하고 제멋대로인 지도자이다. 그는 권력을 이용해서 국내외에 상당한 부를 축적했고, 반대파를 제거했으며, 국민들을 탄압했던 인물"이라고 보고서는 보고 있다.
또한 보고서에 의하면, 박정희는 경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오로지 돈이 굴러다니는 곳이 있으면 부하들과 작당해서 뜯어먹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고 그러한 내용이 보고서 곳곳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38년 전 박정희가 비명횡사하는 바람에 외국은행의 비밀금고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천문학적 뇌물은 기필코 회수해야될 대한민국과 국민의 피땀어린 자산이다.
( 박정희와 프레이저보고서 동영상 참고-
http://hsunryou.blog.me/221143049999)

  그런데 필자 림일은, '독재자 박정희'를 독재자라 부르면 안된다는 논리를 만드는는 데 북의 독재자 김일성을 무리하게 끌어다 비교하는 견강부회와 후안무치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

오늘날 우리 경제와 민주화가 박정희의 독재 덕분이라는 논리비약은 또한 얼마나 부끄러운 무식의 소치인가.
독재자 박정희가 18년 독재기간 언론 앞에서 낮에는 농부들과 막걸리쇼를 연출하고,
밤에는 시바스리갈을 폭음하며 주지육림을 헤매다 결국 안가에서 여대생과 연예인의 치마폭 사이에서 비명횡사한게 한국의 경제발전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독재자 박정희의 무자비한 철권통치와 민중 압살 정책에도 불고하고,
'한강의 기적'이라 할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을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성취 이면에는,
군부독재시절 정경유착으로 막대한 부를 치부하고 급성장한 재벌과 그 부의 세습이라는 폐해가 있고,
좀더 깊이 들여다 보면 박정희 집권시절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미국의 기여와 지원,
살인적인 저임급 고노동으로 헌신한 수많은 불루칼라 노동자들,
전세계 곳곳을 누비며 달러벌이에 투신한 수많은 대한민국 화이트칼라들,
바로 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5천만 민초들의 땀과 저력 등 여러 요소가
결합된 결과라 하는 것이 현재 역사가들의 중평이다.

헌데 필자는 탈북자로서의 짧은 지식과 편견으로, 망국 적폐 반역자 박근혜의 아비- 독재자 박정희를 감싸며, 감히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민주 시민을 능멸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림일은 함부로 떠벌이며 곡학아세 하지 말고 자중하라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회원약관 개인보호정책 회사소개 한국통일교육학회 기사제보 보도자료
(140-806)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85-3 남영빌딩 201호
(주)통일신문(TEL:02-701-8347 FAX:02-701-8345)
Copyright ⓒ 2007 unityinfo.co.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