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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실체를 밝힌다] 김정일의 삼곡리 꽃사슴목장
3백 마리 불과한 작은 목장…사육관리 위해 외국의 선진적 기술과 장비 투입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7/11/30 [15:00]

<김형수 객원기자>

북한에는 김일성의 지시로 지방 곳곳에 사슴목장을 만들었다. 가장 초기에 생겨난 사슴목장이 청진시 청암 구역에 있는 마전사슴목장과 평안남도 구성시 백상리에 있는 백상사슴목장이다.

이곳 목장들은 사육환경이 열악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양강도 삼수군과 삼지연군에 있는 꽃사슴목장은 최고위층을 위해 아미산총국이 직접 관리하는 목장이다. 녹수리 꽃사슴목장은 1960년대 김일성에 의해 생겨났고 삼곡리 꽃사슴목장은 1980년대 김정일이 만들었다.

 

강서·창성·원산별장 김정일 혼자 사용

 

1980년대 김정일은 노동당 재정경리부 산하에 38호실을 내오고 김일성 몰래 외국에 비밀자금을 빼돌렸다. 1970년대까지 김일성과 김정일은 양강도 강구특각과 포태특각, 남포시 와우도특각과 같이 별장을 따로 짓지 않고 함께 사용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김정일은 북한의 곳곳에 자신만을 위한 별장들을 따로 지어놓고 김일성과 일정한 간격을 두었다. 강서초대소와 창성초대소, 원산초대소가 김정일이 혼자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놓은 대표적인 별장들이었다.

김정일은 만수무강연구소를 자신의 산하에 두고 싶어 했으나 김일성의 수중에 들어있는 만수무강연구소를 빼앗아 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평양시에 있던 아미산 농장을 총국으로 확대개편하고 식자재와 가구, 피복류에 이르기까지 모두 생산하도록 했다. 아미산총국을 통해 김정일은 물질문화 생활을 풍족하게 보장해주는 방법으로 북한의 최고위급 간부들을 장악했다.

이런 암투 속에서 김일성의 녹수리 꽃사슴목장에 대응해 김정일이 만들어 낸 것이 삼곡리 꽃사슴목장이다. 특징은 다 같은 아미산총국 산하임에도 녹수리 꽃사슴목장은 김일성의 재산이고 삼곡리 꽃사슴목장은 김정일의 재산이라고 할 정도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일성의 재산인 녹수리 꽃사슴목장은 ‘고난의 행군’시기에 폐쇄되었지만 김정일의 재산인 삼곡리 꽃사슴목장은 폐쇄되지 않았다. 아미산총국 산하 녹수리 꽃사슴목장은 북한의 사슴 원종장인 마전사슴목장에서 새끼들을 가져다 번식시켰다.

녹수리 꽃사슴목장은 1960년대 김일성이 다른 간부들과 사슴불고기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 놓은 큰 규모는 아니었다. 녹수리 꽃사슴목장은 1980년대부터 김일성, 김정일이 피서철이면 늘 삼지연군을 찾으면서 아미산총국 산하로 전환되었다.

1980년대 김정일이 직접 양강도 삼수군 삼곡리에 위치를 잡아 준 꽃사슴목장은 같은 아미산총국 산하라고 하지만 구성과 내용부터 녹수리 꽃사슴목장과 달랐다. 삼곡리 꽃사슴목장은 기존의 사슴목장에서 새끼들을 들여다 키우지 않았다.

 

시기별 질병 예방에 투자 아끼지 않아

 

김일성 일가를 위해 북한의 전국에 자리 잡고 있는 8호, 9호 작업반들에는 사냥꾼들이 따로 있었다. 이들이 동원돼 야생에서 태어난 새끼사슴을 포획하거나 어미사슴들을 산채로 잡아들여 삼곡리 꽃사슴목장에 가두고 길들이고 번식시켰다.

양강도 삼지연군 녹수리와 마찬가지로 삼수군 삼곡리도 자연환경에서 사슴을 키우는데 적합한 지역이었다. 삼곡리 꽃사슴목장은 두릉봉 기슭에 위치해 있는데 두릉봉은 양강도 삼수군과 김정숙군에 위치한 해발고가 1,922m인 산봉우리이다.

삼곡리 꽃사슴목장은 약 300여 마리의 우량종 꽃사슴을 분산 사육하고 있다. 두릉봉 계곡에서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3km가량 길게 늘어선 여러 채의 건물이 사슴목장이고 그 끝에 목장관리소와 목장을 지키는 인민보위대 건물이 있었다. 1980년대 이곳에 사슴목장이 들어섰다는 소식을 들은 김일성은 여기서 생산되는 녹용과 사슴피, 사슴뼈를 전부 일본 (조)총련에서 들여 온 만년제약공장에 넘겨 간부들과 옛 빨치산 출신들에게 보약을 만들어 주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김정일은 이곳 목장이 규모가 작고 이제 갓 지어진 것이어서 만년제약공장에서 보약을 생산할 사슴을 충분히 보장할 수 없다는 구실로 김일성을 설득해 끝내 아미산총국 산하에 남겨두고 자신만을 위한 꽃사슴목장을 유지해왔다. 이곳 꽃사슴목장의 유지를 위해 양강도 혜산시에 있는 혜산농림대학 축산학부와 혜산의학대학의 의료진들, 양강도 수의방역소 전문가들이 직원으로 채용됐다. 목장의 사육관리를 위해 외국의 선진적인 기술과 비싼 장비들이 투입됐다.

꽃사슴의 생리적 특성과 생활 습성을 고려하여 적당한 방목과 자연사료 및 인공사료의 배합도 외국의 기술을 모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육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방역에 관심을 두고 시기별로 발생하는 질병 예방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진드기에 의한 감염증과 농양, 발굽썩음병(부제병), 패혈증이 사슴에게서 가장 잘 발견되는 질병이었다. 가을철에는 등에라고 불리는 소파리의 한 종류가 사슴의 목과 등에 알을 쓸어 애벌레를 기생시키기에 특별히 밀폐된 공간에서 키웠다.

 

녹태고·전록환·녹혈주 제품은 최고급

 

비록 3백여 마리에 불과한 작은 목장이지만 이곳에서 생산되는 녹태고와 전록환, 녹혈주 등 특제품들은 최고급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사슴뿔인 녹용은 봄철에 새로 돋아 한창 자라고 있는 시기인 6월 초에 톱으로 베어냈다. 아직 푸른색을 띤 녹용을 톱으로 베어내면 그 자리에서 피가 샘솟는데 이 때면 어떻게 아는지 양강도의 제노라는 간부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사슴뿔을 베어낸 자리에서 샘솟는 피를 입을 대고 마시고 약솜에 묻혀가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누구도 몰라야 했는데 1994년 녹용을 수거하기 위해 현장에 내려왔던 아미산총국 간부가 발견하고 즉각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김정일은 자신의 재산인 사슴에 간부들이 함부로 입을 대고 피를 빨아 먹는다는데 참을 수 없었다. 당시 양강도 수의방역소장을 지내다 삼곡리 꽃사슴목장에 부임돼 온 관리소장과 초급당 비서가 모두 중앙으로 불려갔다. 목장의 직원들은 관리소장과 초급당비서를 조용히 숙청해 다시는 보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각 이들의 목숨을 구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바로 그해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한 것이었다. 김일성의 사망으로 잔뜩 긴장해 있던 김정일과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는 언제 이들을 불러 책임을 따질 형편이 못됐다. 김일성의 사망에 잇따른 ‘고난의 행군’은 북한을 인간생지옥으로 만들어버렸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게 이들이 평양에 끌려 올라갔던 사건이었다. 결국 이들은 변변한 검열도 받지 못한 채 목장을 잘 돌보라는 지시만 받고 돌아왔다.

북한의 인민들에게 ‘고난의 행군’은 피눈물이 나는 시절이었지만 이들에겐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 최근 미국의 구글 상업위성이 무료로 인터넷에서 제공하고 있는 사진을 보니 삼곡리 꽃사슴목장도 새로 단장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김정은의 재산이 된 아미산총국의 재산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해마다 수천달러씩 들여 해외에서 명품들을 수입해 쓰는 김정은의 초호화생활을 알게 된다면 북한의 인민들이 얼마나 분노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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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30 [15:00]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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