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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음식 소개할 기회 있으면, 아무리 바빠도 갑니다”
[인터뷰] 평양냉면 전문점 ‘양각도’ 윤선희 사장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8/01/18 [16:17]

평양냉면의 달인 윤선희(53) 양각도 사장은 북한음식문화 소개에 열심이다. 북한 국영식당 책임자였던 윤 사장은 북한음식전문가라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기회가 될 때마다 밥 만두, 생선장과 등 북한의 음식문화를 시식·체험해주는 봉사활동에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

그것이 곧 오랜 기간의 분단의 구조 속에서 켜켜이 형성된 남북 간 이질감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는 길이라는 생각에서다. 음식을 통해 남북주민 간 이해와 공감의 폭 넓히고, 동질감이라는 사회통합을 이뤄내는 데 작지만 힘을 보태고 싶은 게 자신의 소신이자 통일을 준비하는 마음이란다.

윤 사장은 이제 막 남한정착의 첫발을 내딛은 탈북민들에게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당부한다. 남한사회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열심히 살았기에 남부럽지 않을 매출을 올리는 음식점 사장이 됐다. 또 한식대첩 출연 2회 우승을 비롯해 KBS다큐 공감, 남남북녀, 이만갑, 올리브 오늘 뭐먹지, 모란봉클럽, 성공스토리 출연 등 화려한 방송 이력을 갖게 된 것도 열심히 살다보니 기회가 닿았던 거라고, 그러니 자유대한민국 안에서 꿈을 향해 열심히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양각도를 중심으로 여러 직영점 등을 내 탈북민을 위한 양질의 일터를 만드는 것과 북한음식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배움터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최근 일산 소재 식당에서 만나 이 같은 계획과 남한정착과정의 일면을 들었다.

▶본인에 대해 소개해 달라.

2008년도에 망명했다. 북한에 있을 땐 국영식당을 운영했었고 그것을 토대로 한국에서 ‘양각도’라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1965년생이고,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시이다. 하지만 월남자 가족의 출신성분을 갖고 태어나다보니 함흥시에서 살 수는 없었고 다섯 살 때 함경북도로 추방됐다.

식당 책임자로 있던 당시 은행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돌아가셨고, 그늘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혼자 식당을 꾸리기도, 언제까지 책임자로 있게 될는지 입지적으로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었다. 불안한 앞날에 위태로움을 느끼던 중 친척 방문차 여권을 받아 중국으로 가게 됐다. 북에서 여권을 발급받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

막대한 돈이 들거나 3년이 넘는 시간 등 시간을 할애해야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 그나마 식당책임자로 있어 나름 인맥이 좋은 편이었고, 1년 만에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2007년 말 정식 여권을 받고 중국으로 갔다. 이후 태국을 거쳐 2008년 1월 남한으로 왔다.

 

▲     © 통일신문

 

▶탈북 계기가 있었나.

중국에 3개월가량 머물면서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다. 내게는 평소 월남가족을 뒀다는 출신성분 딱지를 갖고 차별당해 온 것에 아픔이 있었다. 지금은 탈북하면 탈북자체가 나라를 배신했다고 반역자로 여겨 정치범으로 몰리는데, 6.25 1.4후퇴 때 난리 통에 전쟁을 피해 월남한 월남자 가족의 경우도 꼬리표처럼 항시 내게 따라왔고 차별을 뒀다. 그런 사람들은 조선노동당원이 될 수 없고 당원이 되지 못하면 사회에서 기를 펼 수 없었다.

그런데 중국에 있는 동안 북한에 있을 때보다 실제 남한에 대해 확인하는 것이 더 쉬웠다. 한국 등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접하면서 왜 인권도 없고 자유도 없이 출신성분이라는 억압을 받고 살아야 하나라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이후 북한에 돌아가기 보다는 한국으로 가는 길이 좀 더 자식의 장래를 위해 낫겠다, 하는 생각에 어려움 끝에 남한으로 오게 됐다. 다행히 남한 정착 3년 만에 아들도 데려올 수 있었고, 지금은 대학에서 경영학과를 다니고 있다.

월남자가족 출신성분 꼬리표 따라다녀

국영식당 책임자로 근무, 참고신문 통해

남한사회 자유민주주의 잘 사는지 알아

여권 받고 중국 방문 기간 한국행 결심

 ▶북한 있을 때 남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

나는 한국이 부러웠던 것이, 경제적인 것이라든지 그런 것에는 환상을 갖지 않았다. 오로지 민주주의 나라라는 것, 자유가 있다는 것, 출신성분, 출신계급 이런 것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 이런 것들이 갈망하던 것들이었다. 나도 저런 사회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었다. 이런 생각은 북한에 있을 때부터 갖고는 있었다.

북한에는 간부들이 많이 보는 참고신문이라는 게 있다. 당 일꾼 중에서도 계급이 높은 사람들만 보는 신문이다. 당 기관에 있다고 해도 일반 사람들은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신문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정치라든지 남쪽 정보들이 많이 기재가 된다. 북한에서 검열하는 간부들은 참고신문을 합법적으로 본다. 잡혀갈 일은 없다. 국영식당 책임자를 하다보니까, 그런 분들과 왕래를 할 수 있었고, 일찍이 남한 사회상을 알았다. 2007년 전부터 한국 매체, 드라마나 이런 것들을 많이 봤다.

▶초기 남한 정착과정에 대해 말씀해 달라.

처음엔 눈을 떠도 소경이었고 귀가 열려있어도 귀머거리였다. 분명 한민족, 조선말은 맞는데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지 어떤 뜻으로 하는 얘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나원에서 배우긴 했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 도움이 된다고 느끼진 못했다. 선생님들이 교과서만 쭉 읽어주는데도 뭐가 서술돼 있는지 우리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거였다. 쭉 읽고 나가다.

마지막에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하는데…. 아니, 전체를 다 모르겠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한 번 딱 질문해보기를 ‘선생님 아는 게 없어서 질문 못하겠습니다. 아는 게 있어야 질문하지요?’그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하나원은 전문 공무원들의 일자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교육을 위한 교육, 현실성이 동떨어진 교육을 한다는 얘기다.

▶어떻게 개선됐으면 좋겠나?

말로만 때우는 것보다 현장 실습형 교육이었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체험 위주로 교육하면서 하루는 실습형으로 해보고, 그 다음날은 직접 부딪쳐보는 체험을 가진다면, 남한사회의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빠를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이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용역이라 하고, 이 사람들처럼 일하면 일당을 받아야 하는 거고, 이런 곳은 4대 보험 같은 것은 전혀 반영이 되지 않는 거고, 이 일자리를 얻으면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안 좋다든지…. 현장 위주의 교육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하나원에서부터 나는 어떤 직장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조금이라도 준비할 수 있다. 한국을 알아가는 데는 사회라는 현실에 직접 몸을 부딪치면서 교육받는 편이 훨씬 빠르다고 본다. 하나원에서 나와 현실에 부딪치면서 비로소 남한사회 적응이라는 첫걸음을 뗐다.

 

▲     © 통일신문

 

▶사회에서는 어떤 일부터 했나. 이후 식당 운영하기까지는.

북한에서 음식을 맡은 사람으로서 한국에서도 음식을 하면 어떨까 등 고민이 많았다. 그러려면 한국 음식 조리법에 대해서도 알아야했고 돈도 있어야 했다. 직접 몸담고 체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초기 정착 후 17개월 동안 다양한 프랜차이즈음식점에 취업했다. 어깨 너머로 배워가며 아 이런 시스템이었구나, 아 이건 이렇게 만드는 거였구나, 이런 베이스구나. 이 음식의 포인트는 뭐구나 등 남한 사람들 입맛에 맞는 음식에 대해 하나하나 배웠고, 한식조리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후 소규모 김치 만드는 가게를 운영하다가 자금을 좀 더 마련하면서 지금의 식당을 하게 됐다. 원래는 윤선희의 평양면옥으로 시작했는데, 상호가 좀 긴 것 같아 양각도로 변경했다. 양각도는 북한 대동강에 있는 섬인데 북한을 잘 모르는 한국인들한테 유명하고 아름다운 섬 이름도 소개할 겸 서로 알아가는 과정도 될 수 있겠다 싶어 정하게 됐다.

대표 음식은 평양을 상징하는 평양냉면인데, 담백하면서 풍부한 육향 맛을 제대로 살린 게 평양냉면의 장점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포인트다. 북한에서 유행하는 현대판 평양냉면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먹고 있는 평양냉면은 거의 1920, 1930년대 유행하던 냉면 맛이다. 옛날 배합하고 현재 배합이 다른데, 아주 고급스러운 육수 맛을 만들고 있고, 정말 맛있다는 호응을 얻고 있다. 덕분에 손님이 끊이지 않고 장사가 잘 돼 매출을 많이 올리고 있다.

다양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일하며

어깨너머로 한국음식 특징·조리법 배워

한식대첩 출연해 10회까지 올라가며

평양냉면, 만두, 천하일미 소개에 보람

▶한식대첩 출연이 전환점이 된 것 같다.

2015년 한식대첩이라는 프로그램 나가서 제가 우승을 두 번 했다. 북한음식 전문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맛난 북한음식을 만들어보자, 그게 적중하게 타이밍을 잘 맞췄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한식대첩이란 방송은 전국 각도 서울, 강원도 전라남북도 충청북도 등 각 지역 음식 고수들이 지역을 대표해 나와 고장의 음식을 만들어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한 팀씩 떨어지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인데 방송 10회까지 올라갈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웃음) 그때 대상이 12회에서 나왔는데, 10회 동안 냉면, 만두, 천하일미 등 다양한 북한전통음식을 소개할 수 있던 점이 보람됐다.

▶남한에 와서 제일 좋았던 음식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한국 와서 가장 좋았고 맛있다, 라고 느낀 것은 싱싱한 생선을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북한은 바닷가 아닌 이상 싱싱한 생선을 도심에서는 먹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도심에서도 싱싱한 생선이나, 해산물을 먹을 수 있다. 시원하고 개운한 탕이나, 구이라든지 이런 걸 먹을 수 있다는 것에 큰 감탄을 했다. 고기도 품질관리를 잘 하다보니까 우수한 육즙이 나오는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또 사계절 싱싱한 야채들을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 요리를 만드는 제 입장에선 정말 감탄스러웠다.

 

▲     © 통일신문

 

▶제2회 국민대 통일의 날에서 북한음식체험행사를 진행해 호응이 좋았다.

북한음식을 소개하는 것 또한 남과 북의 동질감을 찾고, 다른 점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음식 전문가로서 남한사람들에게 북한음식을 소개하고, 음식문화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떤 행사든, 어떤 자리든 아무리 어려워도 간다가 내 소신이다.

탈북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활동이 남한주민과의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 작지만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때 제2회 국민대 통일의 날에서는 대학생들과 시민들에게 북한의 밥만두와 생선장과를 소개했다. 북에서는 밥을 만두피에 싸서 튀기거나 쪄 먹기도 한다. 이를 밥만두라고 하는데 배고플 때 들고 다니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이다. 생선장과는 조청이랑 간장 등에 살짝 조린 상류층들이 먹는 고급간식으로 맥주안주나 아이들 간식으로 유명하다. 정말 맛있다며 어떻게 만드는 거냐며 적극 관심을 가져주는 모습에 참여하길 잘했구나,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자신위해 열심히 살고, 뚝심으로 정진하면

대한민국이 인재로 알아보고 기회 올 것

유흥업소로 빠지는 탈북민보면 안타까워

업주 채용 못하도록 법적제재 엄격해야

 

▶탈북민 정착에 필요한 정책적 제언을 한다면.

하나원 수료하는 탈북민들 중 유흥업소에 빠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남한사회 물정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돈을 많이 준다는 말만 믿고 유흥업소 개념도 없는 사람들이 발을 딛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경우를 볼 때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얼마든지 통일일꾼으로 키울 수 있는 역량들인데 정말 애석한 노릇이다. 본인도 잘못된 길에 빠진 것을 알게 되면, 그 길에 여전히 있기를 원하지 않을 거다. 돌이키고 싶을 거다. 훗날 통일이 돼 고향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더욱 후회할 것이다.

그래서 유흥업소 업주들이 북한에서 온 탈북민을 고용하는 경우, 그러지 못하도록 어떤 제재를 가하는 그런 조치들이 필요하다. 노래방, 술집 등 그 업주는 나라에서 제재를 주는 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왜, 그 사람들이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은 그 사람들을 채용해주는 곳이 있고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이 있기 때문 아닌가. 탈북민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저는 이 점이 꼭 반영됐으면 좋겠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한다고 밝혔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치적 색깔을 갖고 참여하거나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북한입장에서 우리도 한민족임을 잊지 않았고, 항상 통일을 원하는 사람들임을, 또 한 민족으로서 항상 단합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임을 이번 기회에 그런 인식을 남한 사람들한테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이번 일로 남북관계가 좋아진다면, 개성공단 같은 공장이 북한 전역에 들어가면 좋겠다. 그러면 사람들 삶이 나아질 것이다.

개성공단 같은 공장 북 전역에 설립돼야

북한음식 배우는 학교 만들어 가르치고파

남북사회통합 이뤄내는 인식개선에 앞장

▶앞으로의 계획, 꿈은 어떤 것인가.

탈북민들이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 탈북민들이 맘껏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는데 기여하고 싶다. 또 북한음식을 배우는 학교를 작지만 의미 있게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꿈이 있다.

통일 후 북한에 가면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사람으로서 자본주의 사회 변화라든지, 한국 사람들과 경제활동을 함으로 인해 도움이 될 만한 사항을 알려주고 서로 다른 점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것 등 남북한 통합을 위한 인식개선에 앞장서고 싶다. 통일이 된다고 하면 북한사람 심리와 한국사람 심리가 합쳐지려면 큰 산을 많이 넘어야 된다.

한국은 자유라는 테두리 안에 오픈되어 있는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닫고 살고 있고 북한은 굉장히 닫혀 있을 것 같지만 또 역설적으로 오픈 마인드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은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잘못을 하면 책임을 져야하고, 또 경제 때문에 일상의 모든 것이 많이 묶여있다. 싸인 하나 잘못 하면 한 순간 재산을 잃을 수 있고, 소송에 지면 돈이 압류되고, 신용불량자 되면 취직 등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다.

전국이 CCTV 안에 있고, 핸드폰으로 상담할 때 녹취되는 등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조심할 수밖에 없다. 신분증 빌려주고 통장 개설해주고 등을 부탁하면 남한은 범죄에 악용될 염려가 있어 큰일 날 얘기다. 그에 반해 북한은 자기 집, 재산이 없고 다 국가 소유고, 남한 같은 경제구조 개념이 없다보니, 휴대폰 내 명의로 해줘, 하면 바로 해준다. 그런 점에서 남북한 주민이 함께 어울려 경제활동을 하다보면 처음엔 인식 차이가 너무 커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인식통합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윤진석 기자 38tongi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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