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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실체를 밝힌다] 통남황기농장
토양은 토심이 깊고 배수가 잘되는 진참흙 적합/산등성이가 아닌 산 중턱에 재배하는 것을 원칙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8/02/14 [14:53]

<김형수 객원기자>

양강도 삼지연군에만 녹수리 꽃사슴목장, 포태 황구목장, 통남 황기농장 등 ‘아미산 총국’산하의 농장과 목장들이 다른 지역보다 많았다. 삼지연군 포태감자농장 통남분장에 위치한 통남 황기농장은 양강도 보천군에서 삼지연과 이어진 도로를 따라 10km쯤 가다 보면 통남분장의 첫 마을에 위치해 있다.

최고 12년생의 황기와 장뇌삼 생산

마을의 낡은 건물들 사이로 아담하게 지은 농촌문화주택 40여 채가 눈길을 끄는데 여기가 ‘통남 황기농장’ 종업원들의 살림집들이다. 그곳에서 1km 정도 떨어진 산등성에 오르면 넓은 초원에 잘 지은 건물 3동이 나타난다. 아미산 총국 산하 통남 황기농장‘의 사무실이다. 사무실 입구에는 이곳 농장에 제일 큰 황기 밭이 있고 주변엔 크고 작은 황기밭들이 여러 개가 있다. 사무실에서 20미터가량 지나면 주변의 황기 밭과 키 낮은 잡관목들 사이에 둘러싸인 너비 80미터 길이 100미터의 장뇌삼 밭이 있다.
북한에서는 흔히 ‘장뇌삼’을 ‘인조산삼’ 또는 ‘재배산삼’이라고 불렀다. 이곳 아미산 총국 산하 삼지연군 통남 황기농장에서는 최소 6년생, 최고 12년생의 황기와 장뇌삼을 생산해 김일성 일가와 북한 고위층들에게 공급하고 있었다. 황기黃&#33450;는 옛 중국의 한방 본초학서인 농본초경에도 소개된 콩과 종의 여러해살이식물이다. 농본초경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부터 몸의 기를 보충하는 중요 약재로 황기를 많이 사용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황기는 시대에 따라 이름도 다 달랐는데 고려시대에는 왕지(皇耆)라는 이름과 수판마(數板麻)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조시대에는 감판마(甘板麻)로 불리다가 18세기에 들어서서는 맛이 달다고 하여 ‘단너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6세기에 유명한 의학자인 허준은 자신이 쓴 책 ‘동의보감’에서 황기의 효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허준은 황기에 대해 ‘성질은 약간 따뜻하고 맛은 달며 독은 없다. 허손 증으로 몹시 여윈데 쓴다’고 기록해 놓았다.
또 동의보감에서 황기에 대해 ‘원기를 회복해 살이 찌게 해 추웠다가 열이 나는 것을 멎게 하고 몸이 허약해서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치료하며 흉터를 없애고 오래된 상처에서 고름을 빨아내고 아픈 것을 멎게 한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후에 나온 민간요법 도서들도 황기를 ‘강장강정효과가 있고 식은땀이 나는 것을 치료하며 이뇨작용과 종양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고 기록하며 신체허약, 피로회복, 치질, 자궁탈출, 내장하수, 말초신경 장애에도 효과가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골짜기 맑은 물 흐르고 토양조건 적합

감옥에서 출소하거나 군대에서 영양실조에 걸려 돌아온 자식들에게 제일 먼저 닭곰을 해 먹인다. 닭곰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가 황기인데 지금은 산림이 황폐화 되어 황기를 구하기도 힘이 들지만 옛날엔 산에 흔한 식물이었다.
황기가 이렇게 건강에 좋은 약재로 손꼽히게 된 것은 황기에 들어 있는 건강기능성 성분들 때문이다. 황기에는 트리테르펜 사포닌, 이소플라보노이드, 다당류 그리고 20여 종의 미량원소가 들어 있다.
황기는 이렇게 닭곰이나 달여 먹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최근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 황기에 들어 있는 성분을 추출하여 주사약으로 만들고 있다. 북한도 비만으로 당뇨병이 온 간부들을 위해 황기주사를 개발했다.
북한주민들은 양강도와 함경북도, 자강도를 비롯한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황기가 더 효과가 높다고 알려져 야생으로 자란 황기를 채취해 약재로 사용하였으나 그 수요가 높아지자 1970년대부터 황기를 재배하는 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황기는 우리나라 북부지방의 깊은 산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식물로 재배에 최적화된 장소는 북한의 양강도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김정일은 아미산 총국에 지시해 양강도 삼지연군 통남리 일대에 황기농장을 만들었다. 통남 황기농장은 김일성과 김정일에게만 특별히 제공하기 위해 초기 노동당 재정경리부 산하 ‘8호 작업반’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김일성의 만수무강연구소를 모방해 김정일이 삼지연군 통남리 일대에 황기농장을 만들었다. 통남 황기농장은 김일성과 김정일에게만 특별히 제공하 만들어 낸 아미산 총국으로 이관되었다.
황기가 잘 자라는 토양은 토심이 깊고 배수가 잘되는 진참흙이 적합하다. 땅이 너무 비옥하면 줄기와 잎만 무성해지고 기본 약초로 쓰이는 뿌리가 부실해 지기 때문에 보통은 산등성이가 아닌 산 중턱에 재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아미산 총국이 삼지연군 통남리에 황기전문농장을 내오게 된 배경은 주변 동북쪽 양강도 보천군 보서리 경계에 해발고가 1,760m인 고 지봉이 있고, 이곳 골짜기들마다 모두 맑은 물이 흐르는데다 기후와 토양조건이 적합하기 때문이었다.

밭 주변에 키가 큰 나무들 모두 제거

황기는 1년생부터 씨받이를 할 수 있으나 ‘통남 황기농장’에서는 2년 이상 자란 황기에서 충실한 씨앗을 받아 종자로 사용했다. 파종은 4월 초에 하는데 황기의 씨앗은 껍질이 단단하여 땅에 심으면 발아가 되지 않고 썩는 율이 높았다.
수확은 6년 이상 혹은 12년 이상 자란 황기로 매해 10월에 채취하였다. 수확한 6년산 황기는 고위간부들에게 제공되는 선물용이었고, 12년산은 김일성 일가와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에게만 특별히 제공되었다. 당 간부들 선물용인 6년산 황기는 규모가 일정치 않은 6개의 밭에서 돌려가며 수확을 했다. 김일성 일가에 제공되는 12년산 황기와 장뇌삼은 면적이 큰 밭에서 일정하게 구역을 나누어 재배하였는데 주변엔 여러 개의 경비초소가 있었다.
재배산삼은 좁은 판자를 틈틈이 박아 공기가 잘 통하도록 만든 상자에서 키웠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여기서 키운 인조산삼을 먹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인조산삼이 아니더라도 채취한 산삼은 모두 김일성 일가에 바쳐야한다.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정도의 직책을 가진 간부들에게는 따로 선물을 했을 것이다. 1992년생일 50돌을 맞는 김정일에게 ‘통남 황기목장’은 12년산 인조산삼 50 그루를 살아 있는 것으로 선물하기도 했다.
통남 황기농장의 밭들은 주변에 키가 큰 나무들을 모두 제거하고 키 낮은 잡관목들만 남겨 두었다. 황기 밭에는 잔디가 자라지 못하도록 쑥이나 다른 풀들을 심었는데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땅딸기’라는 불리는 야생딸기가 많이 자랐다. 산나물 캐러 온 사람들이 지나다 딸기를 따먹으려고 접근하려다가 초소에서 주야 교대로 경비를 서는 황기농장 직원들에게 쫓겨나곤 하였다.
황기는 보통 너비 1.5m 길이 20m의 둑을 지어 심었는데 둑과 둑 사이에는 깊이 60cm, 너비 1미터의 도랑을 만들고 여기에 비료대신 영양흙이라는 부식토를 채워 넣었다. 특이한 것은 이곳 황기목장 종업원들은 집에서 가축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개나 돼지는 물론 심지어 토끼도 사육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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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14 [14:53]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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