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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고향 잊지 않고 애향정신 이어가는 것 중요합니다”
[인터뷰] 이상철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8/02/22 [13:44]

지구촌 축제인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시작부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상대는 북한의 고위급대표단 및 예술단, 선수단 및 응원단 등이다. 정부가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그동안 꾸준하게 북한의 참가를 위해 노력해온 결과이다.

청와대를 방문한 북한고위급대표단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대통령과 북한고위급대표단은 올림픽에 출전한 남북단일팀의 경기와 서울에서 진행된 북한예술단공연을 관람했다.

이 모든 것을 착잡한 마음으로 지켜 본 사람들은 거두절미하고 고향을 북에 두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800만 이북실향민일 것이다. 70여 년 전 분단된 한반도의 38선 위에 도사린 김일성 공산독재 정권이 싫어서, 동족비극의 상잔 6·25전쟁의 포격을 피해 잠시 38선 아래로 내려왔던 사람들이 이제는 고령의 나이가 되었다.

꿈에서는 물론 이제나 저제나 떠나 온 고향땅 한 번 밟아보고, 헤어진 가족 꼭 만나보고 죽는 것이 평생소원인 실향민들이다. 동서고금에 사람의 생사를 수십 년이 되도록 전혀 모른 채 산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일 수가 없다. 해방둥이(1945년에 태어난 아이)가 일흔을 훌쩍 넘겼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

이북고향에 계신 가족과 조상을 섬기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비탄해하면서 눈물로 통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실향민들. 그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기 위해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를 찾아 이상철 위원장을 만났다.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52년 1월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황해도 평산에서 살다가 8·15해방과 동시에 들어선 김일성 공산 독재정권에 환멸을 느껴 1949년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내려오셨다. 이후 6·25전쟁이 터졌고 국군이 북진할 때 고향으로 돌아가려다가 휴전되는 바람에 남한에 눌러 앉았다. 부산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

▶어릴 적 부모님에 대한 추억은

내가 13~14살 때에 처음으로 아버지 손에 이끌려 ‘안성면민회’(황해도 평산군)에 나갔다. 아마도 두고 온 이북고향의 숨결을 이어주시려는 부친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 지방에는 이북도민회 각 시, 군, 면민회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평산군민회에 나갔다. 거기서 자원봉사로 어른들의 심부름을 하며 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주름 깊은 눈가에 눈물이 촉촉한 모습을 보며 어린 내 가슴에도 ‘고향이 뭘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학력과 경력은 어떻게 되나?

중학교를 마치고 부모님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1978년 홍익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부친이 경영하던 산업기계제조회사에 입사했다. 말단직원인 대리로 시작하여 일을 하나하나 배우며 경영수업을 받고 나중에 부친의 뒤를 이어 회사를 경영했다. 군대는 대학기간 중간에 3년간 다녀왔다.

▶이북도민회 청년회는 언제 생겼나.

1981년 경 이북도민회 임원들이 ‘세월은 거침없이 흘러간다. 우리들의 대를 이을 사람들을 양성해야 한다’는 취지에 청년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그때 임원들이 지금은 모두 80~90이 되었거나 혹은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분들이다.

도민회에서도 신중한 고민과 논의 끝에 1982년도 각 시, 군, 면 단위에 ‘청년회’를 만들기로 했다. 청년회는 실향민들의 자손으로 주축이 되었으며 애향사업, 통일사업, 애국사업 등을 활동목적으로 하였다.

 

13~14살 때 아버지와 ‘안성면민회’나가

고향의 숨결 이어주려는 부친 마음 읽어

고등학교 때부터 평산군민회서 애향활동

 

▶도민회 참여활동 경력은

처음으로 맡은 직책이 안성면청년회장 겸 평산군청년회 부회장, 황해도청년회 부회장이다. 이어서 1984년부터 평산군청년회장, 1988년부터 황해도청년회장을 역임하였다. 1990년도에 각 도(5개 도: 평남, 평북, 황해, 함남, 함북) 청년회를 묶어서 ‘이북5도청년연합회’를 조직하였고 회장을 4회 역임했다.

▶도민청년연합회 활동을 말해 달라.

당시 이북도민 청년회 날은 12월 23일(일명 신의주학생의거의 날, 해방 후 신의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반소·반공의거)이었다. 지난 1989년 정부가 반공의거의 날인 ‘12월 23일’을 폐지하였고 실향민들은 자체적으로 기념하였다.

해마다 12월 23일 이북도민 청년회 날이면 궐기모임, 웅변대회, 운동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1회 2회는 여의도 63빌딩에서 하였는데 당시는 대통령, 총리, 장관 등이 참석할 정도로 정부의 관심과 애정이 많았다.

지금은 예전보다 소원해졌다. 그것은 아무래도 시대의 변화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당시는 반공이 국시이고 최고였던 시절이다. 1990년대 초반 동서독 통일과 냉전시대 해체로의 변화가 생겼다. 이후로 남북정상회담을 두 번이나 하면서 남북관계도 대립대결보다는 평화상생의 모양으로 바뀌었다. 허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어떤 단체인가?

1982년 당시 조영식(평북 출신) 경희대학교 총장이 설립하였다. 1971년 이후 남북대화가 시작되고 예비회담을 하면서 이산가족 아픔을 덜어주자며 생사확인 서신교환을 하며 상봉을 갖자는 실향민들의 의견을 모았다. 당시 정부 산하인 이북도민회를 북한에서도 매우 껄끄럽게 생각했다. 하여 정부가 못하거나 불편해하는 일을 우리 민간이 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이다. 올해로 설립 36주년을 맞는다.

분단 73년을 맞는 오늘날 이산가족문제는 당사자뿐 아니라 민족공동의 아픔으로 무엇보다 우선 해결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다. ‘이산가족의 날’ 행사를 통해서 남북이산가족의 교류를 촉진하고 국민적 관심을 높여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확고한 안보의식 함양과 통일의지를 고취하는 날로 삼고 있다.

휴전이후 남북관계가 양호국면으로 들어선 것은 70년대 초였다. 1971년 8월 12일은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대한적십자사가 북한적십자사에 제의한 날이다. 이날을 기려 남북적십자회담 11주년에 즈음한 1982년에 ‘제1회 이산가족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후 1985년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이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에서 상봉한 날인 9월 20일로 변경하였다.

2006년 이후 민족최대 명절인 추석 전 전일을 ‘이산가족의 날’로 변경해서 36년째 ‘사단법인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에서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북에 두고 온 가족상봉을 고대하는 이산가족들은 이날 하루 고향을 찾아가야겠다는 통일의지를 다지며 상호위로하고 이산가족 문제해결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남북이산가족문제는 사상·이념을 초월한 인도주의적 사안으로 당국 간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국민적 통합 및 통일에 대한 관심과 분위기 조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1982년 조영식(평북) 경희대학교 총장 설립

당시 정부 산하인 이북도민회를 북한에서도

껄끄럽게 생각…정부가 못하거나 불편한 일

민간단체가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조직이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로 설립 36주년 맞아

 

▶일천만이라는 숫자는 어떤 의미인가?

지난 1945년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 휴전(1953년 7월 27일)까지 김일성 공산 독재정권에 등 돌리고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은 대략 500만으로 추산한다. 그 분들이 남기고 혹은 헤어진 가족도 북에 그 만큼 있으니 도합 1천만이라고 한다. 지금의 800만 실향민은 본인과 그 자손들까지 집계한 숫자이다.

▶실향민 1세대는 대략 어느 정도인가?

아직까지 정부는 정확한 실향민 통계를 해본 적이 없다. 이유가 있다. 정치권에서 실향민 숫자가 많으면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또한 정부도 특정집단의 세력화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1세대 실향민은 대략 40~50만 명 정도로 본다. 이 중에 지난 1988년부터 작년까지 이산가족상봉 신청한 사람들의 연인원 숫자는 13만 여 명이다. 이중에서도 절반이 그동안 타계했다. 이제는 6만 여 명 정도만 남았다.

40~50만 명과 13만 명의 차이는 이산가족상봉 신청을 한 사람보다 안 한 사람이 더 많다. 이유는 북에 남겨진 가족들의 안위를 위해서 그렇다. 북에서 볼 때 가족이 남조선에 있으면 어떻게든 불이익을 받는다고, 탈북민들이 그동안 많이 증언을 하였다. 또한 북측이산가족이 남측가족을 만나면 이 구실 저 구실로 돈을 뜯어낸다고 한다.

▶남북이산가족상봉은 통치자들의 정치이벤트 아닌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남북이 분단되어 지난 70여 년간 많은 경색시국을 맞았다. 그때마다 무난하게 꺼낼 수 있는 말이 ‘남북이산가족상봉’이다. 남북 모두가 겉으로는 이산가족소리를 하는 척 했고 실제에 있어서는 정치소리를 해왔다.

정말 안타깝다. 지난 2000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20차례에 걸쳐 양측 100명씩 이산가족상봉을 하였다. 지금처럼 한 번에 고작 양쪽 합쳐 200명 씩 하는 이산가족 상봉은 수백 년이 되어도 다 못하는 황당한 노릇이다.

실향민 1세대 중 65%가 고령의 나이인 80대 이상이다. 이들에게 마지막 희망이 있다면 죽기 전에 이북의 고향 땅을 한 번 밟아보고 남겨진 가족이나 친인척 얼굴 한 번 보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실향민들이 노환으로 저 세상으로 간다. 남북의 통치자들이 진정성을 갖고 실향민들의 아픔을 헤아려야 한다.

 

남북분단 70여 년간 경색시국 맞아

그때마다 무난하게 꺼낼 수 있는 말이

‘남북이산가족상봉’…남북이 겉으로는

모두 이산가족문제 해결하는 척 포장

실제로 정치소리로 일관한 것이 사실

 

실향민 1세대 중 65%가 고령의 80대

마지막 희망은 이북 고향 땅 가는 것

하루에도 어르신 노환으로 세상 떠나

진정성 갖고 실향민들 아픔 헤아려야

 

▶‘이산가족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현재 민간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산가족 관련 행사들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제고 할 수 있다. 국가적 기념일로의 지위 격상에 따른 기념행사, 포상, 부처협조 등의 근거를 마련하는 효과가 있다.

적어도 10년 안에는 고령으로 인해 실향민 1세대가 거의 세상을 등질 것이다. 그 후손들이 조상의 고향을 잊지 말고 애향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산가족의 날’ 제정은 국민 모두가 함께 해결할 과제이다.

▶‘이산가족의 날’이 추석 전전날인 이유는.

나도 이제 3년 후면 나이 일흔이다. 이 나이 되도록 세상을 살아보니 그래도 우리 민족이 가장 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시기가 추석 때이다. 한 해 농사를 짓고 수확한 열매를 조상님께 드리며 큰 절을 하는 추석에 고향생각이 크게 난다. 추석연휴(3일) 전날에 ‘이산가족의 날’로 하면 통일에 대한 열망도 높을 것이다.

 

10년 안에 실향민 1세대는 세상 등질 것

후손들 조상의 고향 잊지 말고 애향정신을

이어가는 것 중요…‘이산가족의 날’ 제정은

국민들과 해결 과제로 추석연휴 전날 합당

 

수십 개의 국가기념일 제정돼 있는 상태에서

남북이 가로막혀 고향에 가지 못하는 수백 만

이산가족의 가슴 사무친 아픔을 기리는 날을

제정하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권 실망스러워

 

▶노력하겠지만 가능하다고 보는가?

현재 우리나라에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념일이 40여 개, 법으로 정한 기념일이 30여 개로 모두 80여 개의 기념일이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중에 통일부나 주관 부처 또는 기관이 정하고 기념하는 날은 전무하다는 현실이다.

수십 개의 국가기념일이 제정돼 있는 상태에서 하물며 남북이 가로막혀 고향에 가지 못하는 수백 만 이산가족의 가슴 사무친 아픔을 기리는 날을 제정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정부와 정치권이 너무나 실망스럽다.

▶끝으로 할 말이 있다면…

우선 정부에서 1세대 실향민 인구조사를 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남북적십자 당국이 서로의 현황을 알려주고 만나지는 못해도 서신거래 등을 하도록 해주었으면 한다. 이제 1세대 실향민들이 이 땅에 머무를 시간은 별로 없다. 남북당국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실향민 생사확인과 서신교류 등을 허가했으면 한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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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22 [13:44]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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