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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자녀들, 통일한국의 당당한 주인·글로벌 인재 양성이 목표”
[인터뷰] 탈북청소년 방과 후 공부방 ‘한벗학교’ 김윤희 교장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8/08/02 [15:44]

지난 6월 서울 구기동 통일회관에서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이북도민청년연합회가 주최하는 ‘제11회 이북도민청소년 통일글짓기·그림그리기 대회’가 있었다. 고향이 38선 이북인 실향민 및 탈북민의 후계세대인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석하는 연례행사에 110여명 학생들이 참여했다.

행사의 목적은 고령으로 세상을 많이 떠나는 실향민 1세대들의 고향에 대한 애향정신을 이어가며 자유민주주의 함양 및 안보의식 고취 등이다. 탈북민 후계세대에게는 조상들의 고향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애국가 합창, 재북 조부모님들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한 본 행사 참석자는 200여 명, 이중 대회 응시자는 110여 명으로 최근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됐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으로 새로운 남북화해기류에 기대를 거는 실향민사회이다. 그 여파가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후계세대에 이어지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눈에 띄는 참가자가 있었다. 탈북청소년 9명과 함께 참석한 경기도 고양시 소재 탈북청소년 방과후공부방인 ‘한벗학교’ 김윤희 교장선생이다. 학생들이 글짓기와 그림그리기를 하는 동안 김 교장과 마주 앉았다.

▶고향이 어디인가?

1963년 9월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8남 3녀의 11형제 중 막내딸이었다. 아버지는 중앙당 조직부 지도원이었고 어머니는 대동강구역 편의봉사관리소 초급당비서였다. 내가 13살 때인 1976년 8월 우리 가족은 불미스러운 이웃의 신고에 의해 ‘혁명화대상’이 되어 함경북도 청진으로 좌천되었다.

▶그때의 기분은 어떠했나?

어린 나이였지만 수도 평양에서 함경북도 북부지방의 공업도시로 내려왔다는 수치감은 분명 있었다. 그래도 부모님이 함께 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그해 10월 김일성이 청진을 현지지도하면서 아버지를 찾아 앞으로 세워질 ‘남청진고등학교’ 명예교장으로 추천했다. 이후 아버지는 혁명화를 마치고 평양음악무용대학 초급당비서로 갈수 있었으나 청진이 좋아 그냥 눌러 앉았다.

 

80년대 조선인민경비대 5487군부대(여단)입대

통신 중대에 배치, 1년 뒤 ‘미림군관학교’다녀

장맛비로 대동강 둑 무너질까 방파제공사참여

 

▶본인의 경력을 말해 달라

1980년 4월 조선인민경비대 5487군부대(여단)에 입대하여 통신 중대에 배치, 1년 뒤 ‘미림군관학교’를 다녔다. 1년 중 6개월은 건설현장에 동원되었는데 학교청사 신축공사, 주변정리 등이 끊이지 않았다. 1982년 여름 장맛비로 큰물이 났는데 대동강 둑이 무너질까봐 모래주머니로 방파제를 만드는 공사에 참여했다.

▶또 다른 일이 있었다면…

본교 통신중대 108명의 부식물을 자체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니 방법은 오직 도둑질 밖에 없다. 무조건 주변 농장에서 농작물(채소, 감자, 파, 고추 등)을 훔쳤다. 당시‘농장포전은 나의 포전이다’는 노동당 구호가 있었는데 군인들이 도둑질 하러 나갈 때 뻔뻔하게 외치곤 했다. 실지로 군대에서는 ‘훈련 못하는 것보다 도둑질을 못하는 것이 더 바보’라고 할 정도로 정직한 병사를 놀려(왕따)줬다.

▶군관학교 졸업하면 소대장인가?

그렇다. 거의 동시에 조선노동당원이 된다. 10명 중 7~8명은 정당까지 하고 나머지 2~3명은 후보당원 자격을 받기도 한다. 내가 군복무 할 당시 조선인민경비대에는 소대, 중대, 대대, 여단 단위로 되어있으며 여단 위에는 국(본부)이 있다. 한 해에 보통 국(본부)적으로 제대하는 군관(장교)은 200명 정도이다.

 

졸업하면 조선노동당원 되며 10명 중 7~8명은

정당까지 하고 2~3명은 후보당원 자격 받기도

한 해 국(본부)적으로 제대하는 군관은 200명

사회로 나와 사업하려고 ‘가짜진단서’ 제출해

감정제대하기도…내 경우 9년 군사복무 마쳐

 

▶좀 더 자세하게 말해 달라.

인민군대 내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하는 고급군관(상좌 이상)도 있지만 의외로 젊은 군관도 적지 않게 있다. 신입 군관들이 계속 배출되니 자리는 없고 한쪽으로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현실도 있다. 그들 중 건강상 혹은 가족상의 애로조건을 이유로, 사회로 나와 사업(장사)하려고 ‘가짜진단서’를 제출하여 감정제대(의가사제대)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9년간의 군사복무를 마치고 1989년에 제대했다.

▶사회에서 배치 받은 직장은

청진시 송평구역당위원회 근로단체 학습강사이다. 각 동의 여맹단체, 상업 및 편의봉사 단위로 나가 사람들 앞에서 ‘김일성·김정일 따라 배우기 도록해설’, ‘조선노동당 정책해설 및 위대성강연’등이다. 매해 4월 15일(김일성 생일), 2월 16일(김정일 생일), 12월 24일(김정숙 생일)등을 전후해 현장에서 열심히 한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학습강사는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약간의 간부’ 같은 직업이다. 자칫하면 우쭐거리기 쉽다. 내가 소속된 단위에 선배강사가 있었는데 어느 날 무단결근으로 가족들도 행방을 몰라 했다. 정말 모범적인 직장인이었는데 너무나 궁금했다. 1개월 뒤 보위부에서 연락이 왔고 특별한 취조중이라고 했다. 북한에서는 주민들이 일상 중에 보위부에서 통보가 오면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후에 알고 보니 그 선배가 모 단위 대중강연에서 자기만의 ‘엉뚱한 내용’을 첨부했던 것이다. 아마도 김일성 혁명역사를 강의 하던 도중 김일성의 부인(김성애)에 이런 저런 소리를 했던 모양이다. 당연히 북한에서는 금기사항인데 말이다. 강연 및 도록해설 제강문은 중앙당에서 도·시당을 거쳐 내려오며 토씨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1970년대 초반 김정일이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에서 업무를 하면서부터 겉으로 수령의 후계자이지 실제는 수령이나 마찬가지의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였다. 김정일이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난 것이 전체 인민들에 대한 학습과 강연, 영화문헌, 생활총화 등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사상정신 교육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민들에 대한 수령 덕성실기, 노작 등의 학습이다. 이는 김일성의 혁명 활동을 전부 조작하여 마치도 실제 있었던 사실인양 인민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세뇌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매주 월요일 첫 시간부터 신문독보로 시작하는 한 주간의 생활에는 수요학습, 금요강연, 토요생활총화 등이 있다.

보통 한 시간, 필요한 경우에 그 이상 소요될 수 있다. 특히 사상투쟁을 겸하는 생활총화가 그렇다. 이는 한 주간 자기의 생활에서 김일성 수령과 김정일 장군의 혁명사상에 위배가 된다고 생각이 들면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타인이 한 주간 어떤 결함을 범했는지도 밝혀내야 한다. 만약 결함을 보고도 묵시하면 같은 동범자 혹은 묵시자로 간주되어 처벌을 받는다. 그리하여 유치원시절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각종 정치 및 사회조직에 가입하여 생활하는 북한주민들은 평생토록 자기 주변을 살피며 사는 습관이 있다.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는 체제의 그 생활이 마치 정상인줄 착각하는 인민들이다. 외부세계에 대해 알 수도 없으니 세상이 전부 그러려니 하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에서 일반주민이 외국방송을 들으며 감옥에 수감된다.

 

소꿉친구 중에 친한 동무가 중국에 가서

1주일만 돈을 벌어오면 청진에서 2개월간

밥 먹고 살수 있다는 말에 눈이 번쩍 떠져

군관제대군인, 노동당원, 인민위원회 부원 등

신분으로 고민 많이 하고 배고픈 시절이라

친구와 2004년 4월 회령에서 두만강 건너

 

▶이후 무슨 일을 하였는가?

북한은 시시콜콜한 일까지 전부 수령의 방침으로 통치되는 사회이다. 김정일이 1990년대 중반 지방에서 개인이 국가주택을 암암리에 매매하는 현상이 잦아지자 이것을 통제하는 주택관리원을 제대군관으로 바꾸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하여 하루아침에 송평구역 인민위원회 주택부 관리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주로 주민들로부터 사용료를 받고 주택입주 조정 등을 한다. 업무 중 개인감정으로 인해 직속상관과 불편한 관계가 되었고 그로 인해 이직을 고민하였다.

▶탈북한 계기와 시기는

옛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는데 내게는 정말 실감난다. 고향 소꿉친구 중에 친한 동무가 있는데 그녀가 중국에 가서 1주일만 돈을 벌어오면 청진에서 2개월간 밥을 먹고 살수 있다는 말에 눈이 번쩍 띄었다. 군관제대군인, 노동당원, 인민위원회 부원 등의 신분으로 고민을 많이 하였다. 그러나 너무 배고픈 시절이라 며칠 만에 동의하고 그녀와 함께 2004년 4월 회령에서 두만강을 건넜다.

 

심양에 있다가 2개월 뒤 인신매매 걸려

강제 결혼한 중국남자는 뇌막염 환자로

억울해 자살하려 손목 면도칼로 그었고

정신병자인양 ‘불 지른다’며 소리치기도

중국에서 7년 간 편안한 잠 자본적 없어

집에서도 옷 입고 신발을 신고 자는데

한 밤중 사이렌소리만 울려도 사과움에

숨어…정말 개보다 못한 생활로 연명해

 

▶한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았는가?

중국에서 내가 살던 지역에는 50~60가구가 살았는데 이중 15가구 정도가 탈북여성이 중국남자들과 가정을 이룬 세대였다. 이들 중 일부가 한국에 가서 국적을 취득하였다. 그들로부터 한국의 실상을 듣고 놀랐으며 북한에 남겨진 가족 때문에 망설이던 끝에 2012년 10월 베트남,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했다.

▶‘한벗학교’는 언제 설립하였나?

2014년 12월 ‘남북통일학교’로 고양시 덕양구에 설립했고 1년 뒤 현재 이름 ‘한벗학교’로 개명했다. 2016년 6월 제1회 교사워크숍을 진행하였으며 다음해 11월에는 서울 수색동 달동네에 가서 연탄 3000장 나르기 자원봉사를 하였다. 그때 학생들은 고향 생각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올해 2018년 어린이날은 남북하나재단, 삼성꿈장학재단이 협찬하는 ‘한벗학교 봄철 운동회’를 고양용두초등학교에서 진행했다.

▶본교의 교육 목표는

탈북민의 자녀는 대부분 부모를 따라 남한에 왔으나 일반학교 진학이 힘들 만큼 문화·언어적 어려움을 갖고 있다. 본교는 탈북자녀들 스스로 극복하고 치유하여 정규학교 교육과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제도권 교육과 가정식 통합교육을 지향하는 기숙형 방과후공부방인 ‘한벗학교’는 탈북민 자녀들이 언제인가 꼭 오고야 말 통일한국건설의 당당한 주인으로, 세계로 뻗어가는 글로벌 인재로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교 현황이 궁금하다.

초·중·고 학과별로 재적 학생 43명이 전부 탈북민 자녀이다. 북한과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며 8살에서 21살까지의 다양한 연령대이다. 오전은 거주지역의 일반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우리 학교에 와서 방과 후 프로그램 보충수업을 받고 합숙한다. 현재 교사 4명, 교감, 사감선생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김 교장의 아동관은 뭔가?

내 지론은 ‘모든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따뜻한 사랑과 마음으로 키우자’이다. 이런 세계관이 있는 것은 아마 교육자이기전에 아이를 낳아 키운 어머니이고 모성애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이들은 우리의 거울이고 미래의 꿈나무들이다.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

 

초·중·고 학과별 재적 학생 43명 적응교육

북한, 중국서 태어난 아이들 8살~21살까지

오전 거주 지역 일반 학교에서 수업하고

오후에는 학교에 와서 방과 후 프로그램

보충수업 받고 합숙…현재 교사 4명, 교감

사감선생이 학교운영, 아이들 돌보고 있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대한민국에 ‘탈북민 자녀 방과 후 공부방, 대안학교’ 등이 모두 28개 있다. 이중 8개만 탈북민 출신 교육자들이 운영하고 나머지 20개는 남한 사람들이 운영한다. 거두절미하고 탈북민들의 마음은 당사자인 탈북민이 더 잘 안다.

관련 기관에서 탈북민들이 운영하는 학교에 좀 더 관심을 돌려주었으면 한다. 조금이라도 못하면 ‘그럴 거면 그만 두라’는 식이다. 탈북민을 우습게보면서 통일을 하겠다는 일부 남한사람들의 2중적 모습에 다소 실망이다. 통일준비는 미래세대, 특히 탈북민 자녀들에 대한 교육에서부터 진행되어야 한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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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02 [15:44]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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