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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과 살아온 반평생…남은 삶도 그들과 함께 해야지요”
[인터뷰] 북한전문가 석사현 한기총탈북민정착지원 본부장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8/08/09 [15:09]

대한민국에 들어온 탈북민은 약 3만 2천명이다. 그들이 인천공항에 첫 발을 딛는 순간 북한보다 무려 45배나 발전한 대한민국의 문화와 경제적 발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공통된 표정이다. 그러나 그 놀라움도 잠시 남한사회에서 살아가기가 보통 힘이 들지 않음을 체감하는 탈북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한은 북한처럼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생활을 시시콜콜 관섭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당국에서 주도하는 정치사상 학습과 강연 등이 전혀 없다. 또한 당국이 좋든 싫든 개인에게 직장을 강제로 배정해주는 일도 전무하다. 북한에서 배운 대로‘자력갱생만이 살길이다’,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 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자유를 찾아 온 용감한 탈북민들에게 자유민주, 자본주의 남한사회에서의 바른 정착을 위해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한정협’(한국기독교탈북민정착지원협의회) 사무총장을 겸직하고 있는 한기총 탈북민정착지원본부 석사현 본부장을 만났다.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48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내가 3살 때 터진 6·25전쟁 포격에 모친은 내가 중학교 때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4형제로 내가 막내였다. 1970년 국군사관학교를 졸업, 소위로 임관하여 최전방부대 소대장으로 1년 근무했다. 그 무렵 김신조 사건(일명 1·21사태 청와대습격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특수부대에 버금하는 특수부대 창설과 장교를 양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후 경력은 어떻게 되는가?

1971년 7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월남 전쟁에 14개월간 파병되었다. 귀국 후 대위로 진급하면서 공수부대에 배치되어 공수낙하훈련, 특수전교육, 적지역 침투훈련 등을 받았다. 1974년 고등군사학교 교육을 받고 대성공사(남한에 최초로 입국한 탈북민 등을 조사하는 정보기관)에서 대위-소령-중령-대령(대성공사 사장)까지 27년간 조사요원에서 사장까지 근무하고 제대했으니 이 분야 최고 북한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다.

월남 전쟁에 14개월간 파병되었다. 귀국 후 대위로 진급하면서 공수부대에 배치되어 공수낙하훈련, 특수전교육, 적지역 침투훈련 등을 받았다. 1974년 고등군사학교 교육을 받고 대성공사(남한에 최초로 입국한 탈북민 등을 조사하는 정보기관)에서 대위-소령-중령-대령(대성공사 사장)까지 27년간 조사요원에서 사장까지 근무하고 제대했으니 이 분야 최고 북한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다.

▶탈북민과 인연은 언제부터라고 할 수 있나?

1974년 가을, 17살의 인민군 전사가 최전방 중부전선 철책선을 넘어 귀순해왔다. 양말이 없어 발 싸게를 했고 옷을 벗으니 팬티도 런닝도 입지 않고 있었는데 이유는 이가 너무 많아서였다. 키가 작아서 메고 온 아까보총 개머리판이 땅에 닿았다. 북한군대가 이정도니 일반 주민들의 생활은 상상도 못하겠더라. 그때부터 북한정권의 야만성에 혀를 내둘렀고 탈북민(당시는 귀순자)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74년 가을 17살 인민군 전사가 최전방

중부전선 철책선 넘어 귀순…팬티도 런닝도

입지 않고 있었는데 이유는 이가 많아서

군대가 이정도니 주민들 생활 상상도 못해

그때부터 북한정권 야만성에 혀를 내둘렀고

탈북민(당시 귀순자)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

 

▶특별히 기억하는 귀순자가 있다면 누구였나?

이웅평 대위이다. 1983년 2월 미그 19기를 몰고 40분 만에 남쪽으로 귀순한 인민군 공군장교였다. 그는 13억 8천만 원의 정착금을 받았다. 13억은 비행기 값, 5천만 원은 이웅평 대위 몸값, 3천만 원은 권총, 지도 등의 값이었다.

대한민국 공군 소령으로 임관한 이웅평 씨는 공군사관학교 국사교수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딸 낳고 행복한 생활을 하였으나 1997년 간경화 말기로 진단받고 투병했으나 이듬해 간이식수술 성공, 2002년 5월 재발하여 사망했다.

▶아쉬운 마음이 있었겠다.

많은 탈북민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이웅평 씨도 고향에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생각으로 많이 고뇌 했던 것을 옆에서 자주 보았다. 그로해서 술도 많이 마셨다. 그럴 때마다 곁에서 가족과 지인들이 걱정하며 자제를 요청 드렸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웅평 대령을 만날 때면 신앙생활을 권장했다. 그때마다 피식 웃으며 “조금 더 있다가 못 다한 시간까지 합쳐 열심히 믿겠다”고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하나님을 일찍 만났다면 술도 자제하고 영혼의 축복 속에 평안을 누리며 지금까지 잘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1980년대 중공군 귀순자는 무슨 소리인가?

당시 공산진영인 중국산동반도 및 심양지역에서 자유진영인 대만으로 귀순하는 중국 공군이 5회 정도 군용기를 몰고 남쪽으로 오는 사건이 터졌다. 중국에서 직접 대만으로 영공 통과가 안 되고 서해나 한국을 거쳐 가는 것이 비교적 안전한 통로였다. 외국인이라도 우리 영토에 들어왔으니 우리가 조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들도 대성공사에서 조사를 했으며 철두철미 국제법에 맞추어 진행하였다.

 

1983년 2월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했던

공군장교이던 이웅평 대위 잊혀지지 않아

간경화말기 진단받고 투병했으나 이듬해

간이식수술 성공…2002년 재발하여 사망

 

고향에 남겨진 가족에 대한 생각으로 고뇌

술도 많이 마시고…신앙생활을 권장했지만

“좀 더 있다 못 다한 시간까지 합쳐 열심히

믿겠다”고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해

 

▶대표적인 사건을 말해준다면…

1983년 5월 탁장인 등 납치범들이 중국 민항기를 심양지역 상공에서 납치해 우리 영공에 들어왔다. 6명의 대만귀순 희망자가 승객들을 인질로 붙잡고 벌인 납치였다. 평소 한국을 우습게 알던 중국이 우리에게 굽실거리며 빨리 중국으로 송환해줄 것을 요구했으며 중국고위 외교관들이 서울을 수차례 방문했다.

국제법에 따라 납치범 6명은 대만으로, 나머지 승객들은 서울워커힐호텔에 투숙시키고 좋은 선물과 관광을 시켜서 중국으로 보내주었다. 훗날 그 사건과 관련해 승객 중에 미사일기술자가 탑승했기 때문에 중국이 모든 승객조기송환을 위해 국제적인 외교활동을 했고 이때부터 한중외교관계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사무총장 직무를 맡은 한정협을 소개해 달라

지난 2001년 10월, 북한선교에 뜻이 깊은 목사님, 장로님들이 협력하여 만든 한정협은 통일부 산하 사단법인 단체이다. 위장 탈북민을 조사하는 대성공사에서부터 복음을 전하고 예배를 드린다. 특히 탈북민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을 거쳐 남한사회로 나오는 탈북민들이 정착지 인근교회와 결연을 시켜서 취업, 치료, 교육, 결혼 등 사회적응을 지원하고 신앙생활을 안내하고 있다.

 

한정협은 2001년 10월, 북 선교에 뜻 있는

목사, 장로들이 협력하여 만든 법인 단체

그들을 조사하는 대성공사서부터 복음전해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을 거쳐 남한사회로

나오는 탈북민들 정착지 인근교회와 결연

취업, 치료, 교육, 결혼 등 사회적응 지원

 

▶한정협의 사명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에서 탈북민 복음화는 북한선교 지름길이다. 자유를 찾아서 또는 기아와 박해를 견디다 못해 남한으로 탈출해오는 탈북민들이 날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들의 정착생활을 돕고 지원해 북한선교사와 통일의 일꾼으로 양성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사명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주요활동은 어떤 종류인가?

통일부 등록 사단법인 ‘한정협’은 북한선교단체로써 탈북민 보호센터 및 하나원을 비롯하여 전국에 배치되어 정착하고 있는 탈북민들이 기독교 신앙으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주요활동으로 환자치료, 취업주선, 탈북민신학생 양성, 재소자 및 출소자 교정선교, 가정심방, 영성수련회, 매월 조찬기도회, 경조사 등을 지원하여 복음화 된 통일조국을 이룩하는데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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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체제의 유지 원인은 우선적으로 전체 인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혹독한 정신교육 및 사상통제에 있다. 7살 난 유치원어린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인민들은 각계 층 다양한 정치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하여 사상 생활해야 한다.

유년기에 어린이집(유치원)에서 첫 한글로 ‘김일성’을 배우고 소년기에는 ‘조선소년단’, 청년기에는 ‘김일성-김정일주의 청년동맹’, 성인기에는 ‘조선노동당’ 및 ‘직업총동맹’, ‘농업근로자동맹’, ‘여성동맹’ 등 각종 부문별 정치조직에 가입한다.

당의 지시에 따라 인민들에게 신문독보, 정치학습, 사상강연, 영화문헌, 생활총화, 행사참여 등 1년 52주간, 아무 행사도 없는 주간이 없을 정도이다. 보통 1주에 2~3건의 행사가 있으며 여기에는 전체 주민들이 절대적으로 참여해야만 한다.

그 속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바로 매주 토요일 오후나 저녁마다 진행하는 ‘생활총화’인데 여기서는 한주간 자신의 정신 사상을 조직 앞에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 이는 자기 결함과 타인의 잘못을 콕 찍어 보고해야 하는 비판회의다.

북한주민들이 폐쇄적인 그 사회에서 당국으로부터 배운 것은 오직 당과 수령을 위해 목숨 바쳐하는 충성경쟁 뿐이었다. 그래야만이 그 사회에서 살아 갈수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운명과 삶은 숙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범죄에 연루된 탈북민이 적지 않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1990년대 중후반) 대략 300만이 아사했다. 교육자들(학교교사, 대학교수)도 많았는데 대중에게 원칙과 규정을 가르치는 그들은 불법을 모르고 살았다. 다른 사람들은 국가재산이나 남의 것을 훔쳐서 쌀로 바꾸거나 팔아먹는 수법으로 지금까지 생명을 연장하여 살았는데 교육자들은 고스란히 앉아서 굶어 죽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불법(마약, 인신 매매 등)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여 지금 북한사람들은 마약에 대하여 겁 없이 함부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탈북민들이 남한에 와서 잘 살기 위한 뭔가가 필요함을 느낀다. 그때 너무도 쉽게 잘못된 인식으로 마약 등에 연관된 범죄에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남한사회 물정을 잘 모르는 탈북민이라는 약점을 악용하여 보이스피싱, 다단계판매 등 각종 범죄에 끌어들이는 남한의 사기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을 돕기 위해 어떤 일을 해왔는가?

전국의 교도소에 들어간 탈북민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의 하나가 면회 올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북에 있는 가족은 당연히 못 오는 것이고 남한사회에 오자마자 범죄를 범한 사람이어서 지인도 없다.

우리 ‘한정협’에서는 매월 개인별 영치금을 넣어주고 2개월에 한 곳씩 순회 방문하여 그들을 면회한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출소하면 꼭 새로운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정착에 성공하도록 상담 등을 해준다.

▶또 다른 일도 하는가?

하나원에서 출소하는 탈북민들을 주거지에서 가까운 교회와 연결해주는 일도 하고 있다.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주체사상에 온 정신이 빠졌었기에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은 교회출석과 신앙생활을 하는 것 밖에는 없다.

탈북민 80%가 여성이고 이중 절반 가까이가 아이들과 함께 오고 있다.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을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 방과후공부방에 안내해주는 것도 우리가 맡은 봉사활동의 일부이다.

 

전국 교도소에 들어간 탈북민 적지 않아

그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 하나가

면회 올 사람이 없다는 것…남한사회에

오면서 범죄를 범한 사람으로 지인 없어

‘한정협’서 매월 개인별 영치금 넣어주고

2개월에 한 곳씩 순회 방문해 그들 면회

출소 후 건전한 시민으로 정착위한 상담

 

▶탈북민들의 정착과정을 오래 지켜본 소감은…

군복을 입고 탈북민을 처음 만나는 남한사람으로 27년간 근무했다. 이후 제대하여 지금껏 계속해서 탈북민 선교활동을 하니 도합 44년간 이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신앙생활 경력도 똑같은 44년이다. 그동안 나와 악수를 한 이는 전체 탈북민의 90% 정도이다. 이들을 가만히 보면 그래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우리 인간의 신앙생활은 영적부분임과 동시에 인격적 부분이다.

교회에서 말하는 것이 뭔가? 사랑과 감사,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이다. 주어진 환경에 불평보다는 감사가 더 낫고 미래에 대한 절망보다는 꿈과 희망이 더 낫다. 인간에게서 육신의 건강보다 중요한 것이 영혼의 건강이다.

사람은 사랑을 받는 동시에 주는 존재이다.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받은 사랑에 꼭 보답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잘 되어서 후배 탈북민들이나 또 남한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는 멋진 사람으로 되었으면 좋겠다.

▶고마운 분은 누구인가?

아내다. 올해로 결혼 45주년이다. 나의 수십 년 군인생활과 탈북민 정착지원에 함께 하면서 기도를 해주고 뒷바라지를 묵묵히 해오며 두 자식을 어엿한 사회인으로 키웠다. 손자까지 돌보는 바쁜 시간에도 탈북민들을 돕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며 늘 기도와 봉사로 도와주는 아내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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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09 [15:09]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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