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2018.11.16 [23:02]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정치  경제  군사/외교  사회/NGO  탈북민  인터뷰  통일교육  오피니언  북한풍물기  생활/문화
인터뷰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서울역서 출발한 '피란열차'…부산역서 '통일열차'로 돌아오다
‘피란의 어제 통일의 내일로’ 행사 진행한, 부산광역시·통일부 부산하나센터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8/08/23 [13:30]

<림일 객원기자>

서울역에서 아주 특별한 열차가 17일 출발했다. 지금으로부터 68년 전인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이 땅에 동족비극의 상잔이 발생하였고 전쟁개시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인민군에 빼앗긴 비극적인 참변이 있었다. 그 아픔을 가상한 피란(하행)-통일(상행)열차가 부산역을 향한 것이다.

서울 발 부산 행 고속열차인 KTX 2개 차량에 탑승한 파란체험 승객들은 123명,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전쟁 및 북한과 갖가지 사연이 있는 7세~70세 연령의 평범한 시민들이다.

1박 2일간 ‘피란의 어제 통일의 내일로’ 주제의 이번 행사는 부산광역시가 주최하고 통일부가 후원하며 동아대학교 부산하나센터가 주관했다.

오전 10시 열차가 출발하자 2인 연극 모노드라마가 펼쳐졌다. 열차 내의 공연이라는 점을 특화시켜 관객에게 선보인 특별한 예술이다. 피란을 가기위해 열차에 올라탄 피란민 덕구와 순자, 승객들 또한 피란을 가기위해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이라 설정하고 함께 소통하고 참여해보는 참여형 뮤지컬이다.

이어 중앙일보통일문화연구소 이영종 소장은 강연에서 “저의 아버지는 함경도 출신으로 초등학교선생이었는데 해방 후 반공독서모임을 한 것이 공산당의 가택수색, 체포령이 떨어졌고 그걸 피해 잠시 남한으로 내려 온 것이 영영 올라가지 못했다”며 아버지의 고향도 못 가보는 실향민 2세의 아픔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분단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기에 그 피해가 젊은 세대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분단이 우리의 사고, 생각까지 변화시켰는데 꼭 분단의 피해를 넘어서야 한다. 북한은 남한에게 어떤 존재일까? 대화, 교류, 통합으로 하나 되는 대상임인 동시에 안보, 대치, 경계 등으로 적대적 대상임도 분명하다”고 했다.

 

통일을 보지 않고 죽는 일 따위는

결코 없을 것…통일된 조국의 땅

북녘의 끝을 꼭 맨발로 걷고 싶은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부산하나센터 강동완 센터장|

전국에서 모인 ‘가상 피란민’인 여러분을 서울에서 부산으로 인솔하고 가는, 이 잘 생긴 사람은(웃음) 통일조국의 평양특별시장을 꿈꾸는 동아대학교 교수 겸 부산하나센터장인 강동완이다. 여러분이 1박 2일간 부산에 머무는 동안 추억에 남을 만한 유익하고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감히 말씀을 드린다면 제 사전에 통일을 보지 않고 죽는 일 따위는 결코 없을 것이다. 통일된 조국의 땅, 북녘의 끝을 꼭 맨발로 걷고 싶은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문화로 여는 통일’ 이라는 주제로 북한에서의 한류현상, 남북한 문화, 사회통합, 탈북민 정착지원, 북한미디어 연구 등에 관심이 많다.

현재 우리가 탄 이 열차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갈 때는 ‘피란열차’가 되고 내일 부산에서 서울로 올 때는 ‘통일열차’로 명명한다. 그만큼 여러분의 뜨거운 통일염원을 담았다. 슬픔과 비애의 열차가 다시 서울로 올 때는 희망과 꿈의 열차로 된다는 것을 가정하여 국민들의 통일공감대를 높이자는 것이다.

 ----------------------

파란열차에 몸을 실어 도착한 희망의 땅, 부산! 발붙일 곳 없고, 마음 붙일 곳 없어 산으로, 산으로 올랐더니 그곳은 내 삶의 희망이 내려다보이는 꿈의 서막을 알린다는 내용의 환영행사가 부산역에서 ‘피란열차 123명의 승객’을 맞이했다. 부산광역시 관계자 및 부산하나센터 직원들, 자원봉사들이 환한 얼굴로 환영했다.

환영식에 이어 ‘123명의 피란민’이 처음 찾은 곳은 6·25전쟁 때 이용했던 부산임시수도 정부청사와 임시수도 기념관, 피란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감천문화마을(피란민마을) 순이었다.

부산임시수도 정부청사는 1925년 경상남도 도청으로 건립되었으며 변형된 고전주의 양식의 벽돌기와 건축물이다. 피란수도 당시에 정부청사로 사용한 곳으로 부산정치파동, 보도연맹 등 역사적 사건의 중심이었으며 피란민대책, 경제원조 등 국가재건의 중책을 결정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임시수도 기념관은 1926년 경상남도 도지사관사로 건립된 동·서양 절충양식의 벽돌건축물이다. 한국전쟁 당시 3년간(1950~53년)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당시 외교활동과 주요회담 장소였다.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3호이다.

부산시 감천동은 산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힘겨운 삶의 터전으로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족 근현대사의 흔적과 기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산복도로는 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지역의 지형적 특성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문화적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자락을 따라 뒷집을 가리지 않게 지어진 주택, 미덕이 살아 있는 감천동은 현대도시인들에게 추억의 장소가 된다. 서로를 배려하면서 살을 부비고 사는 민족 문화의 원형과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마을이다.

친절한 가이드의 설명이 곁들어진 하루 일정을 마치고 ‘123명의 피란민’이 투숙한 곳은 부산 아르피나호텔이다. 이곳 2층에는 ‘피란민사진전’이 열렸고 저녁 6시부터 환영사가 있은 만찬과 다양한 공연이 진행되었다.

 

부산광역시가 이번 행사를 기획한 것은

통일에 대한 공감대 마련하기 위한 일환

통일 열기 부산에서부터 시작해보자는

취지이다

 

|부산광역시 문화체육관광국 이범철 국장|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오신 여러분! 부산에 오신 것을 축하드린다. 우리 부산은 인구 360만 명의 대한민국 2대 도시로 물류중심의 거점이다. 작년에 이 행사를 기획하면서 통일부에 예산을 신청하였고 부산하나센터가 잘 협조해주어서 너무나 감사하다. 우리 부산은 1950년 8월 18일부터 1,023일 동안 피란수도였다.

당시 대략 부산시민은 40여만 명이었고 피란민은 50여만 명이었다. 도합 100만 인구의 도시, 임시수도로 중앙청사, 대통령관저 등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보존되어 있으며 부산광역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등재 추진을 알리고자 한다. 어쩌면 부산광역시의 숙원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 부산광역시가 이번 행사를 기획한 것은 통일에 대한 국민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한 일환이다. 우리나라 고속열차인 KTX가 부산에서 출발하듯이 대한민국 국민 통일 열기도 부산에서부터 시작해보자는 취지이다. 한반도의 통일이 이뤄지고 부산이 세계적인 해양도시 관광지로 거듭나는 것이 부산시민들의 소원이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의 값비싼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간다

 

|새롭고하나된조국을위한모임 신미녀 대표|

올해로 30년간 통일운동을 하고 있다. 그 중 절반인 15년간은 바로 ‘우리 사회에 먼저 온 통일’인 탈북민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의료상담, 시민교육, 정착지원 및 생활상담, 독거노인 위로방문 등이다.

선친이 함경북도 길주 태생인데 전쟁 때 남한으로 피란 와서 살았다. 평생 이북고향 땅 한 번 밟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끝내 이루지 못하고 10년 전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쩌면 그것이 내 마음에 한이 되어 지금 이렇게 탈북민을 내 형제, 가족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통일은 현재 우리에게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보면 후대에게는 축복이고 영광이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의 값비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우리 세대의 통일에 대한 희생이 꼭 있어야 만 우리 후대가 보다 행복하고 살기 좋은 나라에서 살아간다.

 ------------------------

만찬이 끝난 후 해방부터 전쟁까지 부산 동광동 40계단 주변 풍경을 재현한 관객 참여형 공연 ‘모던타임즈’, 남북한 단짝 대학생공연 ‘엄마가 살던 고향은’, 그리고 부산에 정착한 탈북민 봉사단체 및 시니어예술단체의 공연이 있었다.

가요 ‘“고향의 봄’,‘통일아 통일아’를 부른 통일희망봉사단은 2011년 8월 황현정 단장 외 23명으로 이뤄진 탈북민봉사단이다. 고향의 부모님이 그리워 지역주민 독거 어르신들을 찾아가 말벗이 되어 드렸던 것을 시작으로 명절 나눔, 반찬 만들기, 북한음식 나눔, 북한문화공연 등을 통해 사랑의 마음을 나누며 통일의 그날을 준비하고 있다.

더 나아가 탈북민은 도움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 그 도움을 통해 베풀며 더불어 사는 삶이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하나가 되는 통일 희망씨앗이 멀리 퍼져 고향에 갈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어 북한고아 김귀덕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그루터기’의 추상미 감독이 무대로 올라 북한 전쟁고아 이야기를 들려준다.

6·25전쟁 때 동유럽의 어느 산골로 피란을 간 북한의 전쟁고아들을 기록한 다큐영화를 찍고 있는 추상미 영화감독의 토크콘서트가 있었다. 사회는 부산하나센터 강동완 센터장이 맡았다.

  

이번에 만든 다큐‘폴란드로 간 아이들’

배경은 6·25전쟁 때로 북한서 전쟁고아

수천 명을 러시아 폴란드, 루마니아로

위탁교육을 보내…아이들 6~10년 뒤

다시 돌아와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사연들을 담았다

 

|영화배우 출신 추상미 감독|

20년간 배우로 활동하다가 대학원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하고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주변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이 마흔에 직업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번에 만든 다큐멘터리‘폴란드로 간 아이들’ 배경은 6·25전쟁 때이다. 남한처럼 북한에도 전쟁고아가 많이 생겼는데 북한당국은 수천 명의 아이들을 당시 동맹국인 러시아와 폴란드, 루마니아 등에 위탁교육을 보냈다. 아이들은 6~10년 뒤 북한으로 돌아와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사연을 담았다.

이번 영화만큼은 통일을 준비하는 마음에서 만들었다. 남이나 북이나 아이들은 통일의 미래 세대이다. 통일은 여정이라고 본다. 획기적, 정치적, 외교적 사변도 아닌 경제적 통일도 아닌 우리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의 통합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대한민국에 들어 온 3만 여 탈북민에게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국민을 시험해보려고 이들을 보내주셨다. 이 소중한 분들과 통일연습을 반드시 성공적으로 해야 만 하나님께서 통일을 주실 거라고 믿는다. 우리가 탈북민에게 가르칠 것은 가르치고 또 그들에게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다음 날 오전 ‘123명의 피란민’은 송도에어크루즈 체험을 마치고 점심식사로 피란음식 ‘돼지국밥과 수육’을 먹었다. 부산 밀면(국수)과 함께 피란음식인 ‘부산 돼지국밥’은 6·25전쟁 때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밀가루와 돼지고기로 만든 대표적 음식이다. 값이 싸고 배가 부를 수 있는 인기 있는 서민음식이었다고 한다.

이어 오후에는 ‘UN기념공원’과 ‘유엔평화기념관’을 방문했다. UN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로서, 세계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들이 잠들어 있다. 이 묘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해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하였다.

같은 해 4월 묘지가 완공됨에 따라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되어 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안장되기 시작했다. 1955년 11월 대한민국 국회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아울러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했다.

전쟁 당시 21개국 유엔군 전사자 약 11.000여 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으나 미국 등 일부 국가는 전사자 유해를 그들 조국으로 이장하였다. 현재 11개국 2,300구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등록문화재 359호이다.

‘유엔평화기념관’은 전쟁의 실상을 체험하지 못한 후손에게 전쟁의 참상과 정전협정의 무게를 각인시킬 수 있는 교육적 공간으로, 참전자들의 희생을 바르게 전달하는 감사의 공간을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따라서 UN군 참전용사와 국가의 명예선양을 위해 자료조사와 전시, 출판 등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서울행 통일열차에 탑승한 ‘123명 통일민’

실향민 조부모부터 초등학생에 이르는 3대

참가자들 얼굴에 환한 미소가 한껏 어린다

통일에 대한 희망…2일간 서로 함께 웃고

떠들었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

1박 2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행 통일열차에 탑승한 ‘123명의 통일민’이다. 열차승강장에 까지 내려와 “평양에서 꼭 만나요!” “손잡고 서울 거쳐 평양까지” “너와 나의 연결고리 통일!” 등이 새겨진 피켓을 든 환송객들이었다.

실향민 조부모님부터 초등학생에 이르는 3대에 이르는 가족 등 다양한 참가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한껏 어린다. 통일에 대한 희망일 것이다. 2일간 서로 함께 웃고 떠들었던 사람들이 자기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뒷모습이 풍경이 된다.

열차에 동승한 행사 총괄책임자인 강동완 부산하나센터장은 “시범적으로 열린 이번 행사가 성공리에 마쳤는데 모두 여러분 덕분이다“며 “아무쪼록 이 땅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3만 여 탈북민과 함께 통일 후 그들의 고향으로 같이 가주는 우리가 되어야 만이 멋진 통일이라고 본다. 통일의 주인은 여러분이다”고 했다.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8/08/23 [13:30]  최종편집: ⓒ 통일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회원약관 개인보호정책 회사소개 한국통일교육학회 기사제보 보도자료
(140-806)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85-3 남영빌딩 201호
(주)통일신문(TEL:02-701-8347 FAX:02-701-8345)
Copyright ⓒ 2007 unityinfo.co.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