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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들 자유와 평화이루기 위한 선생의 신념…이어 갈 것”
북한민주화위원회, 황장엽 8주기 추모행사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8/10/11 [11:16]

탈북민사회에서 10월 9일은 1997년 대한민국으로 망명해온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의 기일이다. 선생 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올해로 8년째이다. 고희를 넘긴 고령으로 개인의 부귀영화와 안위를 뿌리치고 분단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초석이 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로 온 그 용감성과 인간성에 세상 사람들은 놀랐다.

그는 남한에 와서 공개적인 반북, 반 수령 활동보다는 은둔에서 집필과 강연을 하셨다. 그가 서울에 온 뒤 김대중·노무현의 진보정권 10년 들어섰고 이후 보수정권에서 3년을 지내며 다소 자유로운 활동을 하다가 87세에 서거했다.

고 황장엽 선생은 생전에 둘로 갈라진 우리 민족과 분단된 조국의 영토를 보며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시였다. 자나 깨나 노동당 정치 아래서 짐승처럼 살아가는 2천만 북한주민들을 걱정하며 만든 사단법인 ‘북한민주화위원회’는 수령 독재정권을 강렬히 반대하는 국내외 많은 탈북민과 민주인사들의 동지적 집단이었다.

3만 탈북민사회 대표적 시민단체인 북한민주화위원회(위원장 허광일)는 매년 10월 9일에 즈음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황장엽 묘소를 찾는다. 지난 8일 ‘북한민주화위원회’의 황장엽 8주기 추모행사를 동행 취재했다.

이날 대전 현충원에서 진행된 추모행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100여명의 탈북민들이 참여해 선생의 생전의 활동을 기리며 회고 했다.

추모제는 선생의 생전에 활동을 회고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최주활 탈북동지회장 등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선생이 못 이룬 북한동포의 해방과 자유 민주통일을 이룩하는 것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북한 동포들 공산학정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신념 확고…가족의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대한민국으로의 탈출 감행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황장엽 선생이 1997년 74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일가의 전근대적 세습 독재체제를 밖으로부터 무너뜨려서 2,300만 북한 동포들을 공산학정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신념이 확고했다. 이는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대한민국으로의 탈출을 감행했던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고인이 서울에서 살았던 13년 가운데 10년 동안 한국의 정치권력은 친북좌파 세력의 손아귀 속에 있었다. 이 기간 중 고인이 남한에서 겪어야 했던 정치적 생활은 북한에서의 생활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시련의 나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남한에서 지낸 13년 세월동안 두 가지 소원이 있었다. 하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주의 교리의 허구성을 극복한 ‘인간중심 철학’을 완성시키는 것, 또 하나는 북한의 김일성 일족의 세습독재체제를 타도하고 북한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로 재건한 뒤 자유 민주주의통일을 하는 것이었다.

선생은 그 일을 하지 못하고 고인이 되었다. 그러나 고인의 꿈을 우리가 이어받아 기필코 선생의 목적을 이뤄드릴 것을 다짐한다.

 

독재정권 아래 살아가는 북한주민들의

간절한 염원인 독재타도, 자유민주화라는

대업이 우리들의 어깨에 걸려있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황장엽 선생님께서는 생전에 항상 어떠한 행사가 끝나면 나에게 “오늘 몇 명이나 왔어요?” 라고 물으시었다. 오늘도 묻는 것 같아 말씀 올린다.

“황장엽 선생님! 선생님께서 생전에 그토록 사랑하시던 탈북동지들인 최주활 회장님, 김흥광 대표님, 박상학 대표님 그리고 통일동지들인 이동복 대표님, 김일주 이사장님, 서정수 소장님 등 많은 분들이 여기에 왔습니다. 요즘 들어서 힘든 우리들이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북한민주화와 친북세력을 반대해 힘껏 싸우겠습니다”

최근 많은 탈북단체장들이 현 시국을 걱정한다. 그러나 김정은 독재정권 아래 짐승처럼 살아가는 북한주민들의 간절한 염원인 독재타도, 자유민주화라는 대업이 우리들의 어깨에 걸려있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는 어느 날 인가 일어 설 것이다. 북한 동포들의 인권과 자유민주 통일을 위해 먼저 온 통일의 주역으로 책임을 다 할 것이다. 황장엽선생의 무거운 짐을 나눠지겠다고 약속한다.

 

생전에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라는 허구적

선전에 속지 말아야…그들은 ‘우리민족끼리’

라는 말을 잘하는데, 그러면 6.25남침은 왜

하였는가

 

<서정주 민주주의정치철학연구소장>

생전에 황장엽 선생님께서 설립한 ‘민주주의정치철학연구소’가 올해로 15주년이 되었다. 또한 선생님께서 친히 제호를 붙여준 소식지 ‘민주조국’은 수개월 전 이미 100호를 넘겼고, 매월 600여 명의 독자에게 인터넷으로 발송하고 있다.

황장엽 선생님께서는 생전에 우리들에게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라는 허구적 선전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쩍하면 ‘우리민족끼리’ 라는 말을 곧 잘하는데, 그러면 6.25남침은 왜 하였는가? 그 당시는 우리민족이 아니었고 지금만 우리민족인가? 그들의 교모하고 허황된 선전에 속지 마세요.” 라고 하였다.

지금 수백만 북한주민이 기아에 굶주리고 영유아를 포함한 170만 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에 노출되어 있다. 약 20만 북한주민이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고 이국땅에 정처 없이 떠도는 탈북자가 수십 만 명인데 이들은 다른 민족인가?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둘도 없는 자유조국을

찾아 온갖 역경을 딛고 이 땅에 온 탈북민들

요즘 같은 난관에 주저앉을 사람들이 아니다

 

<최주환 탈북동지회장>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황장엽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북한민주화를 위해서 용감히 싸우던 어제 날의 많은 동지들이 요즘 기력을 잃어가고 있는데 정말 가슴이 아프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듯 친북세력들이 요즘 제 세상 만났다고 호언장담하는데 그것은 훗날 북한주민들에게서 천벌을 받을 일이다.

2천만 북한주민들을 강력한 사상통제와 혹독한 굶주림으로 통치하는 야만적인 북한의 노동당 정권이다. 자기 고모부와 친형도 폭살·독살해버리는 패륜아 김정은을 옹호하는 친북세력들은 분명 역사에 대죄를 짓고 있다.

하나뿐인 목숨까지 걸고 둘도 없는 자유조국을 찾아 온갖 역경을 딛고 이 땅에 온 우리 탈북민들 요즘 같은 난관에 주저앉을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북한주민들이 김정은 노예정권에서 해방되는 그날까지 잠시도 정의의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김정은 독재정권을 준열히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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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선생은 훌륭한 철학자이고 사상가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에 내려와서 자신의 이론을 새로 정립하셨다.

자신이 주장하는 ‘인간중심철학’은 인류역사의 흐름에 관하여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했고 대부분의 사상가와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역사발전설이 아니라 인류에게는 오직 민주주의의 길밖에는 없다는 논리이다.

다시 말해 인류역사에 자본주의사회 다음에 올 사회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라고 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은 공상에 지나지 않으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는 올수도 없고 와서도 안 된다”고 확신에 찬 모습으로 단언하셨다.

오늘날 3만 3천 탈북민들의 정신적 지주이신 황장엽 선생이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에 와서 남긴 20여종의 각종 저서와 사진 등은 폐쇄사회 북한과 독재자 김정일을 연구하고 증언하는 귀중한 자료와 교과서가 되었다.

그가 있었기에 ‘북한민주화위원회’, ‘자유북한방송’을 비롯한 여러 탈북단체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탈북민들에게 스승이었고 어르신이었다

정의와 진리의 잣대로 나라와 민족 통일

위해 멋지게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김영순 북한민주화위원회 이사>

황장엽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8년이 되었다. 그 분은 우리 탈북민들에게 있어서 스승이었고 참다운 어르신이었다. 정의와 진리의 잣대로 나라와 민족, 통일을 위해서 멋지게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슬프지만은 않다.

황장엽 선생님은 생전에 나의 손을 꼭 잡고 “김영순 동지! 우리 비록 몸은 늙어도 고향에 두고 온 2천만 인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마지막 기력을 다해 투쟁합시다” 라고 하시면서 통일운동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현하시였다.

만약에 황장엽 선생이 남한으로 오시지 않았다면 3대 세습으로 이어지는 김 씨 수령 독재사회에 커다란 업적으로 공헌했을 것이다. 허나 그가 가족과의 천륜을 끊으면서까지 독재체제에 등을 돌렸기에 북한에서의 공적은 없다.

조선노동당 서열순위 10위권의 고급간부 황장엽 국제비서가 남조선의 서울로 도망갔기에 북한당국으로써는 정치적 손해를 크게 보았다. 당시 김정일은 “가족을 포함하여 황장엽 관계자 2000명을 숙청하라”고 지시했다.

림일 객원기자

|고 황장엽 선생 약력|

1923년 평양 출생

1965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1984년 조선노동당 비서

1984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1987년 조선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1993년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

1997년 대한민국 망명

1998년 국가정보원 통일정책연구소 이사장

1999년 탈북자동지회 명예회장

2002년 미주탈북난민인권보호협의회 고문

2003년 전주대학교 석좌교수

2007년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2008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상임고문

2010년 서울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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