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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현주소를 찾는다] 대성산혁명열사릉<1>
대성산 주작봉마루 위치…평양서 가까워/1985년 김정일의 지시로 웅장하게 건축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8/10/11 [13:17]

<김형수 객원기자>

올해는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지가 73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북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반당반혁명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된 반면에 또 많은 사람들은 김씨 일가의 충신으로 평가되어 그 자녀들이 현재 북한의 실세들로 자리하고 있다.

 

항일혁명 했던 사람들 중 1부류 안치

 

현재 북한의 고위간부들과 지방에서도 한자리 하는 중앙당 비서국 비준대상급 간부들의 조부모들과 부모들은 대성산혁명열사릉과 혜산혁명열사릉, 신미리애국열사릉을 비롯하여 북한정부가 별도로 건설한 묘소들에 안치되어 있다.

김일성과 함께 항일혁명을 했던 사람들 중 1부류는 평양시 대성산 주작봉에 있는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안치되어 있고, 해방 전에 국내에서 반일운동을 하였던 사람들은 혜산혁명열사릉에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신미리애국열사릉에는 소위 혁명 2세대로 불리는 김정일의 측근으로 고위직에서 근무하였거나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헌신한 인물들의 묘소가 안치되어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혁명열사릉은 혁명 1세, 애국열사릉은 혁명 2세의 묘소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김정일이 중풍으로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면서 그 때부터 북한정권은 애국열사릉을 지방에도 신축해 앞으로는 김정은의 측근들도 이 묘역에 안치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새로 신축된 애국열사릉은 평안남도 평성, 강원도 원산, 황해북도 사리원 등 북한의 각 도의 도 소재지들에 있다.

일반주민들은 공동묘지라고 지정된 지역에 묻혔다가도 지방 인민위원회에서 갑자기 무슨 사유를 들어 옮기라고 하면 할 수 없이 이곳저곳으로 옮겨야 하는 처지다. 그것은 북한정권이 개인들의 토지소유권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묘소자리를 사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소유의 토지에 묘소를 쓰다 보니 국가에서 옮기라고 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혁명열사릉이나 애국열사릉에 묻히면 그 관리를 국가가 해주는 것은 물론 다시 어디론가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여기서도 우리는 평등사회라고 주장하는 북한사회의 불평등한 사회적인 모순을 찾아볼 수 있다.

망자의 묘소 안치를 통한 북한정권의 열사릉 건축은 이미 김일성시대부터 시작된 충성경쟁을 위한 것임은 분명하다. 대성산혁명열사릉은 경치가 아름다운 대성산의 주작봉 마루에 건축한 대성산혁명열사릉에 대해 북한정권도 ‘혁명전통 교양마당’이라고 부른다.

대성산의 항일혁명열사릉은 북한정권이 6.25남침전쟁이 끝났던 1954년부터 대성산 기슭의 미천호 옆에 조성하였던 것을 1975년 10월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새로 조성한 것이다. 그리고 1985년에는 김정일의 지시로 막대한 돈을 들여 반신상까지 세우고 대리석과 화강석 등으로 지금처럼 웅장하게 건축했다.

 

혁명전통 학습과정으로 단체 방문

 

대성산혁명열사릉은 평양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평양역 옆의 고려호텔에서 중구역 버드나무거리를 지나 모란봉구역 개선문거리를 거쳐 대성구역의 여명거리를 통과, 동북방향으로 약 14km 거리에 있는 대성산의 주작봉 마루에 위치하고 있어 평양시민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다.

그리고 평양지하철 낙원역에서 걸어서 약 700미터만 가면 대성산혁명열사릉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평양시민들은 물론 평양시 안의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찾아가기 쉬워 학교들에서는 정기적으로 혁명전통 교양을 위한 학습과정으로 이곳을 단체로 방문하도록 하고 있다.

대성산혁명열사릉은 평양의 만수대언덕에 세워진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나 재외동포들이 반드시 방문기간의 첫 일정으로 들려야 하는 장소로 정해져 있다.

해발고가 약 184m인 대성산 주작봉 마루에 약 35만 평방미터의 부지에 조성된 이 열사릉에는 일제강점시기에 김일성과 함께 항일빨치산활동을 하였던 사람들 중에서도 160명의 지휘관급 인물들이 안치되어 있다.

혁명열사릉 입구에는 조선식 기와를 얹은 웅장 화려한 화강석 대문이 세워져 있고 중심에는 김일성의 글씨체로 ‘혁명렬사릉’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일부 북한전문가들은 이 현판의 글씨체가 김정일의 글씨체라고 하지만 김정일이 후계자로 되면서 1970년대 후반에 김일성의 글씨체를 모방하는 연습을 많이 하였던 이유로 두 사람의 글씨체는 유사하기 때문에 누구의 글씨체라고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정일의 덕성실기를 수록한 ‘주체시대를 빛내이시며’에도 김정일의 충성심에 대하여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사업을 보장해 드리려고 수령님의 글씨체를 그대로 연습하여 6차당대회 보고문 수정도 해드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입구에서 무려 400개의 계단 올라야

 

입구에서부터는 위로 올려다보아도 아득해 보이는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 수는 무려 400개가 된다고 하니 그 거리를 가히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김정일이나 김정은은 열사릉을 시찰하면서 계단이 아니라 차로를 따라 올라가곤 했지만 북한주민들은 반드시 계단을 이용하여 방문하도록 하고 있다.

400개의 계단을 다 오르게 되면 열사들의 묘소들을 보기 전에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교양마당 공간이 있다. 높이가 8.2m, 너비가 3.7m가 되는 큰 화강석 돌기둥 두 개가 양쪽으로 세워진 문주들은 지붕부분은 석탑모양으로 가공된 화강석이 올려 져 있고 양 면들에는 오각별이 새겨져 있다.

이곳을 거쳐서 다시 묘소방향으로 52개의 계단을 더 오르면 좌우 양쪽으로 세워진 추모군상을 볼 수 있다.

열사릉에는 항상 전문해설사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방문단체별로 맡아서 열사릉을 돌아보는 전 기간 해설을 해준다.

우선 혁명열사릉이 건축되게 된 배경에 대해 혁명선배들을 존경하는 김정일의 도덕적 의리에 대해 설명하고 열사릉의 규모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그리고 교양마당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는 화강석으로 된 김일성의 친필비가 세워져 있다.

길이가 18m, 높이 4.2m, 무게 470t에 달하는 이 비속에는 김일성의 필체로 ‘항일혁명렬사들의 숭고한 혁명정신은 우리 당과 인민들의 심장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김일성, 1985.10.10’ 라는 글발이 새겨져 있다. 그 반대편에 세워진 헌시비에도 글발이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떠나간 나이와 고장은 저마다 달랐어도 돌아와 안긴 품은 하나인데 대성산 혁명열사릉, 항일전에서 쓰러진 열사들, 여기 고이 잠들어 있나니 사람들이여 삼가 옷깃을 여미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친필비와 헌시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화환진정대에 단체나 개인별로 준비해간 화환이나 헌화를 놓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안치된 묘소들을 정해진 코스를 따라 돌아보게 된다.

이처럼 김일성과 함께 항일빨치산투쟁을 한 북한의 ‘혁명1세’라고 불리는 핵심골간은 200여 명 안팎이다.

이들 중에는 김일성의 부인이었던 김정숙, 김일성의 동생인 김철주, 삼촌인 김형권 등 가계들과 소련과 중국에서 반일활동을 벌렸던 인물들, 그리고 김일성과 소련군으로 복무했던 소련극동군 88저격여단 출신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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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11 [13:17]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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