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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으로 배우고 체험해야 통일 후 고향개건에 나설 수 있다”
[인터뷰] 통일미래연대 최현준 대표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8/10/25 [13:42]

탈북민단체인 사단법인 통일미래연대는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 소재한 소랭이 체험·휴양마을에서 추석맞이 행사를 가졌다. 통일교육현장 체험으로 ‘통일의 주역이여, 일어나라’는 주제로 진행된 행사는 남북하나재단이 지원하였으며 통일미래연대 회원 60명이 참가했다.

마을 근처 산에 오른 회원들은 열심히 작업해 20kg자루 수십 개에 밤을 가득 채웠다. 이날 그들이 주운 밤은 마을의 복지시설 및 저소득층 농가에 지원했다. 통일미래연대 회원 60명이 2시간 동안 봉사활동을 벌린 것이다. 회원들의 얼굴에 자신도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였다는 자부심이 어린 기쁨이 한껏 묻어났다.

3만 탈북민 시대 탈북민이 봉사하는 모습이 더는 낯설지 않다. 북한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고생했고 중국 등 3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그들인데 남한에 와서 받은 만큼 베풀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에 있는 통일미래연대 사무실을 찾아 최현준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평양의 군인가정에서 1965년 3월에 태어났고 군인가족이니 이사를 자주 했다. 형제는 내 위로 누이 4명이 있었고 남동생 1명, 모두 6형제였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981년 인민군에 입대하여 1군단 13사단에서 복무했다.

1984년 김철주 포병종합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군단 1사단에서 중대장으로 복무했다. 정말이지 그때 야심은 꼭 조선인민군 군단장(대장)까지 하고 싶었다. 부친이 못 이룬 꿈을 내가 반드시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친에 대해 말해 달라

근 40년 전의 일이다. 1979년 인민무력부(남한의 국방부)에서 있은 ‘인민군당 간부확대회의’에 참석한 부친(군사계급 소장)이 회의를 주재한 최고사령관 김일성에게 “장차 나라의 영도자가 될 조직비서동지(김정일)가 별장에서 젊은 여자들과 놀아나며 명함시계를 돌리는 등 풍기 문란한 생활을 한다”는 내용의 보고를 했다.

▶그건 위험한 발상이 아닌가?

당연히 그렇다. 부친은 정의에 더 마음이 갔기에 김일성과 김정일을 충심으로 받들자는 취지에서 올바른 보고를 하였다. 당시 부친은 2군단 사령관에 내정된 상태였으나 다음날 해임되었고 함북 명천탄광 노동자로 좌천되었다. 내가 14살 때이다.

이후 부친은 수차례 중앙당에 신소편지를 올렸고 3회에 걸쳐 내려왔던 조사반은 “계속 신소하면 자식까지 다친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부친은 술만 드시면 ‘김일성이 개새끼’라 했고 결국은 화병으로 1992년에 사망했다.

▶그것이 최 대표의 승진에 걸림돌이었나?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날 출장차 평양에 들려 인민무력부 총정치국과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있던 부친 지인들의 충언을 듣고 실망했다. 내가 인민군대에서 아무리 승진해도 대대장(중좌) 이상 더는 못 오른다는 것이다. 이유는 부친의 과거문제 때문이라는데 참 기가 막혔고 2001년에 대위로 제대했다.

 

평양의 군인가정에서 1965년 태어나

김철주 포병종합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군단 1사단에서 중대장으로 복무

그때 야심은 조선인민군 군단장(대장)

부친이 못 이룬 꿈 이루고 싶었기 때문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나.

평양에 있는 부친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인민보안성, 국가보위부 등 정부 특수기관에 들어가 근무하였다. 아직도 그 기관에서 근무하는 나의 동료들의 신변안전을 고려하여 정확한 부성명은 밝힐 수 없다. 참고로 북한은 정규군(인민군) 군사칭호나 보안성(경찰) 군사칭호나 똑같은데 인민군 군사칭호가 좀 더 비중 있다고 보면 된다.

▶ 국가보위부에서 했던 일은 무엇인가?

북한의 서해안 지대에서 불순분자, 탈북, 밀수행위 등을 적발하는 것이다. 서해안에는 연평균 북한어선 6000척, 중국어선 3000척이 떠있으며 온갖 밀수행위를 한다. 정말 국제시장이다. 업무용 차량을 자가용처럼 이용하는 서해안 보안담당 과장인 내가 밀수꾼들의 행위를 묵인해주는 대가로 받는 뇌물은 외화였다.

 

출장차 평양에 들려 인민무력부 총정치국과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있던 부친 지인들의

충언 듣고 실망…승진을 해도 대대장(중좌)

부친의 과거문제로 더는 못 오른다는 것

참으로 기가 막혔고 2001년 대위로 제대

 

▶탈북한 동기는 무엇인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에서 보위원들은 일반주민들이 남한방송을 못 듣도록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단속하면서 자기들은 더 많이 듣는다. 떡 장수 떡을 먹는 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나는 남한의 실정을 알면서부터 사상동요를 가졌다.

‘수십 년 뒤 내 자식들은 어떻게 살까? 지금 일반주민들처럼 헐벗고 굶주리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니 온몸이 오싹했다. 하여 아들딸의 미래를 위해 탈북을 결심했고 2007년 12월 압록강을 넘었으며 이듬해 4월 남한에 왔다.

통일미래연대 최현준 대표의 한국생활 초기는 순탄치만 않았다. 그는 하나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던 중 위암이 발견되었다. 하여 위암절개 수술을 하고 1년간 항암치료를 받았으니 신체는 뼈에 가죽을 씌운 것 마냥 초라했다. 다행히 수술 후 2일 뒤에 스스로 걸었고 7일 뒤에는 실밥을 풀고 9일 만에 퇴원하였다.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수십 년 군인으로 생활했던 그의 정신상태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북한에서 조선인민군 대위, 인민보안원(경찰) 소좌, 국가보위부 과장 등의 경력을 갖고 있었으니 남한에 온 일반 탈북민은 눈에도 안 들어왔다. 가급적 남한사람들과 많이 친구를 만들어 사회에 빨리 정착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던 그의 인생 앞길에 전혀 뜻밖의 환경이 조성됐다. 지난 2009년 가을 우연히 모 탈북청년을 알게 되었고 그를 따라 어느 축구동호회에 나가게 되었다. 젊은 시절부터 축구를 무척 좋아했던 최현준 대표였고 남한 사람들과 몇 번의 경기를 하였는데 탈북민들을 은근히 이들을 무시하는 경향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 여러 탈북청소년들이 최현준 대표를 형님, 아버지로 따르며 “우리만의 축구동호회를 만들어 남한 사람들과 당당히 경기를 겨루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성큼 동의했다. 바로 탈북민들에게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 어디 가서 기죽지 말도록 북한 사람의 단결력, 자긍심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현준 대표는 60여 명의 탈북청년들로 ‘미래FC 축구단’을 창단해 지금까지 정상운영을 해오고 있다. 매주 토요일은 전국의 회원들이 서울에 모여 축구를 한다. 또한 50여 명의 ‘희망사랑 나눔 봉사단’을 운영하여 어려운 탈북민, 장애인, 독거노인, 무연고 탈북청년들을 돕기 위한 봉사활동을 매월 진행하고 있다.

▶통일미래연대는 어떤 단체인가?

통일미래연대는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들의 안정적인 사회정착에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2010년 10월 만든 단체이다. 특히 북한에서 부모를 잃은 무연고 탈북청소년들이 서로 소통하고 단합하는데 중점을 두고 활동한다.

분단된 남과 북의 두 체제를 모두 경험한 탈북민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은 통일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절실히 필요한 인적자산이다. 탈북청소년들을 통일의 미래세대로 준비시켜야 한다.

▶단체만의 특성은 무엇이라고 보나?

봉사활동이다. 어차피 죽음의 고비를 넘어 온 우리 탈북민들은 덤으로 사는 인생들이 아닌가?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이 눈물겹도록 감사한 일인데 그에 보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의 하나가 봉사활동이다. 사랑은 받는 만큼 돌려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현재 우리단체 회원은 230명, 이중 86명이 회비를 낸다.

▶ 여러 탈북 단체 중 가장 많은 활동을 한다.

통일신문의 객원기자로써 탈북민 단체행사를 많이 취재하는 림 작가가 그렇게 보면 고맙다. 나는 그냥 먼저 온 선배로써 후배 탈북민들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소신껏 일할 뿐이다.

탈북단체들마다 자기만의 특성이 있을 것이며 다른 단체장들도 나름 열심히 한다고 본다. 다소 아쉬운 점은 탈북민 단체들이 단합을 잘 못하는 것이다. 수년 전에 11개 탈북민단체로 연합체를 만들었는데 안타깝게도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최 대표만의 독특한 업무스타일은 뭔가?

경청이고 공론이라고 본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신중하게 들어주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 혼자의 결단이 아니라 대중에게 토의를 붙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예를 들면 축구단 회원 중에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 그런 일 혹은 유사한 일을 하는 회원들과 토론 자리를 마련해준다. 그게 은근히 효과적이다.

 

남한의 실정 알면서부터 사상동요 가져

‘수십 년 뒤 내 자식들은 어떻게 살까?

일반주민처럼 헐벗고 굶주리지 않을까’

아들딸의 미래를 위해 탈북을 결심했고

2007년 12월 압록강 건너 남한 입국

 

▶그동안 한 일을 몇 가지 소개 준다면…

2016년 10월부터 사단법인 ‘희망을 나누는 사람들’과 공동으로 탈북민 후원행사를 하고 있다. ‘희망을 나누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정환경의 어려움으로 꿈과 희망을 펼치지 못하는 아동들을 후원하는 교육복지후원기관이다.

탈북민들에게 전달하는 후원품은 주식회사 애경, LG생활건강, 일동후디스가 제공하는 생활용품이다. 한 번 행사 때 적으면 50여 명, 많을 때는 400여 명이 참석한다. 지금까지 모두 10여 차례 후원품 전달 행사를 하였다.

▶올 여름 100명 회원이 봉사활동 했다

지난 6월 2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선물꾸러미 제작 및 전달 행사를 진행하였다. 주식회사 LG생활건강 등이 후원하는 다양한 화장품이 들은 선물꾸러미 600개는 통일미래연대 회원 90여 명이 3시간 동안 봉사활동으로 제작되었고 탈북민, 독거노인, 다문화가정, 장애인 등 소외계층에게 전달되었다.

6월 8일부터 3일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 ‘2018 대한민국 라면축제’에 참가했다. 이날 30명 회원들이 행사장 한 개 부스를 받아 ‘북한간이식당’을 운영했다. 여기서 북한음식을 팔아 나온 수익으로 독거노인을 지원하기도 했다.

3개월 전부터 우리 단체 사무실에서 법률, 금융, 복지, 통일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교육은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이사장 안병훈)의 후원에 의해 40명의 탈북청년들을 대상으로 올해 14회에 걸쳐 진행한다.

 

6월8일부터 삼성동 코엑스서 진행된

‘2018 대한민국 라면축제’에 참가

회원들이 행사장 한 개 부스를 받아

‘북한간이식당’을 운영…북한음식을

팔아 나온 수익금은 독거노인 지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목숨 걸고 자유를 찾아 온 우리 탈북민들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모두 잘 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남한에서 우리가 온 몸으로 체험하고 배워놓아야 통일 후 고향에 가서 각자 고향개건에 힘을 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열심히 일하며 꾸준히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그것만이 통일의 지름길이다.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면…

무연고 탈북청년들을 친자식처럼 여기고 많은 후원을 해주시는 장진영 (주)‘주원기원’ 대표, 우리 탈북민들의 사회정착에 도움이 되도록 오랫동안 생활용품을 후원해주는 김동우 (사)‘희망을나누는사람들’ 부회장께 감사하다.

또한 남한사회 정착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를 믿고 따라주는 우리 단체회원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매해 두 차례씩 다양한 북한음식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여성회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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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25 [13:42]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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