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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일 칼럼] 평양과 서울의 목욕탕 풍경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8/11/22 [14:49]

<탈북작가> 

서울생활 초기인 1997년 가을 어느 날담당형사와 함께 집 근처에 있는 목욕탕으로 갔습니다출입구에 사람이 별로 없어 영업을 하는지안하는지 다소 헷갈릴 정도로 조용했으며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여인이 애써 미소로 반겨주더군요.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서니 온기가 가득했죠더운물이 찰랑거리는 욕탕 안에 편하게 앉아 있는 몇 사람을 보며 내가 의아한 모습을 보이자 담당형사는 피식 웃습니다그가 그냥 나를 따라하면 된다!”며 샤워기 앞에서 몸을 비누로 씻고 탕 안으로 들어갔는데 호기심 많은 어린애 마냥 그를 따라서 욕탕 안에 들어갔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고향 생각에 빠졌지요내가 평양에서 살았던 중구역 외성동 주변에 평양제1목욕탕이 있답니다. 6·25전쟁 휴전이후 김일성이 다녀간 유명 대중목욕탕인데 그 규모는 대략 400~500명 수용능력 수준이지요.

평일 오전 7시에 목욕탕 문을 여는데 무려 3시간 전인 새벽 4시부터 줄을 서며 그 길이가 자그마치 100~150m 이상입니다주말이나 휴일에는 사람이 더 많아 목욕탕 직원이 나와서 비표(티켓)를 나눠주며 질서를 관리하기도 하죠.

수건·비누 등은 각자 집에서 갖고 온 것을탕 안에 물은 목욕바가지에 담아 써야하는데 비누를 쓰는 손님보다 없어 못 쓰는 손님이 더 많습니다그러니 손님비누 좀 쓸 수 없습니까?”라며 간청하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대부분 안 돼요하는 답변이죠식량은 물론 생필품마저 부족한 사회풍조로 사람들의 인정도 메마른 형국입니다.

평양의 아파트에는 욕실이 있어도 무용지물이죠우선 물도 시간대 별로 아침저녁으로 1시간씩 조금 나오고 더운 물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밥 짓고옷 빨고청소하기에도 부족한 수돗물로 매일 목욕까지 한다는 것은 거의 사치에 가깝겠지요.

또 다른 풍경은 평양에서 웬만한 공장 기업소에는 자체 목욕탕을 갖고 있답니다물론 여기에도 비누·수건 등은 전혀 없지요미지근한 물보다는 찬물 나올 때가 더 많은데 이는 전기와 석탄이 부족하여 난방을 제대로 돌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로 시끌벅적한 이곳 서울에서 산지 22년째인데 14년간 탈북작가 겸 기자로 생활하는 내가 개인적으로 즐기는 생활의 한 부분은 매주 한 번씩 어김없이 찜질방(목욕탕)으로 가는 것입니다동료들이 가끔은 술 담배도 안하는 림 작가는 무슨 맛으로 살아?” 하는데그때는 미소를 짓고 매주 찜질방 가는 재미로 삽니다고 답하죠.

더러워진 육신을 깨끗이 씻고 한 주간에 쌓였던 피로를 그곳에서 풉니다한증막에서 땀을 푹 내고 콜라 한 캔에 맥반석계란 몇 알로 행복에 취하죠헬스장에서 운동기구를 이용하고아줌마들의 수다도 경청하고창작의 영감을 사색하기도 하지요.

어떤 날은 조용한 휴게실에서 팔다리 쭉 펴고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내가 고향의 가족과 맞바꾼 대한민국 입국은 수백 번 생각해봐도 잘한 것이라고사람에게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만큼이나 몸을 깨끗이 씻고 사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옵니다북한에서 목욕도 제대로 못하며 사상학습과 정치행사에만 열중하고 고되고 힘겨운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우리 형제들이죠바라건대 어서 통일이 되어서 열악한 생활환경에 있는 평양시민들도 여기 서울시민들처럼 계절에 상관없이 아무 때나 따뜻한 물로 목욕할 수 있는 행복한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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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22 [14:49]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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