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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과 두려움에 떨던 탈북민…이제 당당하게 봉사활동합니다
[인터뷰] 인천지역 탈북민 봉사단체 ‘통일한울회’ 임예진대표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8/12/13 [14:45]

인천광역시 남동구 소재 건설기술교육원 인천본원 잔디구장에서 지난 11월 10일 탈북민과 함께 하는 ‘2018 남북어울림 한마당 체육대회’가 진행됐다. 조명균 통일부장관, 박남춘 인천광역시장, 이강호 인천남동구청장, 고경빈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탈북민, 남한주민 등 2000여 명이 참석한 큰 축제였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주최한 본 행사는 대한민국에 정착하는 3만 2천여 탈북민들이 각 지역의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더불어 살자는 취지에서 지난 2011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8년째 진행되어 오고 있다.

‘2018 남북어울림 한마당 체육대회’에 참여한 탈북민 단체는 23개, 전국의 많은 탈북단체들 중 남북하나재단에서 공정한 심사로 선정한 단체들이다. 탈북여성들로 구성된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단체, 음식과 식품을 제조하는 회사, 농산물생산 및 유통업체 등 다양한 단체에서 눈에 띄는 탈북민봉사단 ‘통일한울회’가 있었다.

그 뜻은 “통일의 그날까지 한울타리 안에서 열심히 봉사하며 멋지게 살자!”는 내용이라고 한다. 인천시 남동구 지하철 소래포구역 근처에 있는 탈북민 봉사단체 ‘통일한울회’를 찾아 임예진 대표와 찻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고향이 어디인가?

1975년 5월 함경북도 어랑군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4남매 중 셋째다. 부친은 어랑읍정밀기계사업소 기사(기술자)였고 모친은 주부였다. 조부가 6·25전쟁 때 인민군군인으로 남한지역에 내려갔다가 포로가 되어 ‘포로맞교환’으로 귀환했다. 그것 때문인지 부친이 입당도 못하는 등 우리 집안의 일은 별로 잘되지 않았다.

▶자세히 말해준다면...

1991년 8월 어랑군 OO고등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학업성적이 좋았고 학과경연에서 도(道)적으로 우수해 좋은 대학으로 갈수 있었다. 평양OO단과대학에 추천 받았으나 출신성분(조부, 포로경력)이 안 좋아 학교 내에서 부결되었다.

부모님은 속수무책이었고 나는 ‘할아버지의 군인포로 경력이 문제인가?’ 하는 의심만 들었다. 하여 평양의 단과대학은 끝내 가지 못하고 군(郡)에 있는 OO농기계전문학교(3년 6개월) 자동차공학과를 다녀 1995년 4월에 졸업했다.

▶사회생활은 어디서 했는가?

OO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배치 받은 곳은 청진여객자동차사업소이다. 버스차장, 사령실경리(사무보조) 등의 업무를 1년 정도 하였다. 이후 청진시 수남구역 인민위원회 군수동원과 상무로 3년간 근무했다. 맡은 업무는 유사시 자동차부품 조달 및 관리에 대한 체계를 현장에서 점검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이후 경력은 어떻게 되는가?

2000년 가을 6·4그루빠(임시 검열단)의 조사에 걸렸다. 6·4(6월 4일) 방침내용은 “농촌출신의 사람들은 자기 고향에 가서 일하라”는 것이다. 어랑으로 내려왔으나 “곧 결혼을 한다”는 가짜핑계로 협동농장 배치를 받지 않았다.

이후 어랑에서 나오는 온갖 해산물을 내륙지대에서 오는 도매장사꾼(상인)에게 넘기는 장사를 했다. 그렇게 돈을 벌어 다시 청진에 와서 수남시장, 신선로식당 등에서 일을 하였다. 또 그렇게 번 돈을 사기꾼에 속아 모두 날렸다.

 

전문학교 졸업, 청진여객자동차사업소배치

3년 근무…자동차부품 조달 및 관리에 대한

체계를 현장에서 점검·기록하는 책임 맡아

 

농촌인 고향가서 일하라는 6·4그루빠에 걸려

어랑에서 나오는 온갖 해산물을 내륙지대에서

오는 도매장사꾼에게 넘기는 장사해서 돈 벌어

그렇게 번 돈 몽땅 사기꾼에 속아 날려 버리고

2005년 겨울 여동생과 회령에서 두만강 건너

 

▶탈북을 하게 된 경위를 말해 달라

평양의 대학에는 출신성분 때문에 못 갔다. 농촌출신이라고 도시에서 외면당하고,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사기꾼에게 당했으니 북한사회에 실망했다. 그러던 중 중국보따리 장사꾼에게서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중국에 가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말에 2005년 초겨울 4촌 여동생(22세)과 회령에서 두만강을 건넜다.

▶그것이 탈북이겠다.

그렇다. 어두운 밤에 중국 땅에 들어서니 두 대의 승용차가 우리를 기다렸고 그걸 타고 연변지역까지 갔다. 브로커의 안내로 위생저가락공장에 취업했으나 주변 환경이 너무 불안하여 2개월 후 거기서 탈출하여 목단강으로 갔다.

목단강서 조선글(한글) 간판을 찾아 방황하던 중 어느 교회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8개월 정도 생활하였다. 그 와중에 교회성도의 소개로 조선족 동갑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다. 남편은 진심으로 나를 극진히 사랑했다.

▶추억할 만한 일이 있다면…

명절이면 시댁 친척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데 꼭 북한이야기도 나온다. “북조선이 못사는 것은 김일성이 대대로 독재를 하기 때문” 이라는 말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아니다! 수령님은 위대한 분이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어려서부터 받은 세뇌교육의 후과가 크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중국에서 결혼을 했어도 나는 탈북자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당국은 자국민과 결혼을 한 탈북여성이라도 엄연한 ‘불법체류자’라며 북송한다. 그 때문에 항상 불안하니 남편과 시집에서 나를 한국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신중하게 했다.

하여 한국선교사와 남편지인의 도움으로 20명(여자 17명, 남자 3명)의 탈북자가 그룹이 되어 중국-몽골 국경을 넘어 울란바토르로 갔다. 그 과정에 있은 고생을 말하자면 끝이 없다. 몽골에서 3개월 후인 2008년 8월 한국에 왔다.

▶남한에서 첫 인상에 남는 분이 있다면…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을 때 외부강사로 어떤 여성분이 들어와 강의를 했다. 내게 명함을 주면서 사회에 나오면 꼭 찾아오라고 당부했다. 훗날 우연히 찾아갔더니 맛있는 식사도 사주시며 남한사회 정착에 관해 따뜻이 설명해주셨다. 그 분이 바로 ‘새롭고하나된조국을위한모임’의 신미녀 상임대표이시다.

▶하나원 나와서 무엇을 하였나?

하나원 조사과정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니 남편이 취업비자를 받고 한국에 들어와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남편이 “공부를 하라. 학비는 내가 벌어서 대줄테니 걱정 말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했다.

불법체류지인 중국에서도 이후 한국에서도 변함없는 남편의 사랑이 고마웠다. 무슨 공부를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북한에서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어르신 돌봄을 위한 사회복지학을 배우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몽골에서 3개월 후인 2008년 8월 한국입국

숭실사이버대 경영학과 편입 사회복지학과

복수전공해 졸업 후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

 

2014년 10월 ‘한울동호회’봉사동아리 만들어

봉사와 친교시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출발

남한에서 내가 사는 지역 인천에서 탈북민들과

봉사하며 사는 모습 보여주고 싶다는 소망가져

 

▶남한에서 취득한 학력은…

숭실사이버대학교 경영학과에 편입하여 사회복지학과를 복수전공하여 2015년 2월에 졸업했다. 이듬해 3월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관리 석사과정을 마쳤다. 북한에서 그 놈의 출신성분 때문에 전문학교(전문대) 공부도 겨우 했던 내가 남한에 와서 대학교 공부를 실컷 하였다.

▶통일한울회는 어떤 단체인가?

2014년 10월 ‘한울동호회’로 봉사동아리를 만들어 봉사와 친교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출발했다. 남한에서 특히 내가 사는 지역인 여기 인천에서 탈북민들과 함께 봉사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처음 5명으로 시작한 모임은 입소문과 탈북민 참여로 숫자가 늘어났다. 우리 탈북민들이 통일을 위해 선구자적 역할을 해야겠다는 자긍심이 생겨 2016년 10월부터 ‘통일한울회’로 단체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어떤 일을 하였나?

봉사와 나눔을 위한 활동과 통일합창대회에 2회 출연하여 각각 인천광역시에서 1등과 시민평화상, 우수상을 받았다. 매월 한 차례씩 노숙자 200명에게 무료급식 나눔 행사를 한다. 또한 회원들이 정성을 들인 수세미 100개 나눔과 떡 만들기 행사, 김장김치를 직접 만들어 소외계층, 불우이웃을 방문해 나눠주고 있다.

▶또 다른 일들이 있다면…

매주 독거노인과 장애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사랑의 나눔과 집안일을 거들어주고 있으며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말동무를 해준다. 또한 질병으로 인하여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들을 찾아가 위로해주는 봉사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탈북선배와 후배사이에 지역사회정착을 위한 유용한 정보교환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탈북민들을 찾아가 따뜻이 품어주고 마음의 상처를 달래주며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멘토링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그로 인한 성과도 있는가?

회원 중에 40대 후반의 여성이 있다. 먼저 남한에 온 남편은 다른 여자와 동거했고 혼자 세 자녀를 키우자니 힘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중 우리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마음이 바뀌고 얼굴이 밝아졌다. 이후 남편도 돌아왔고 지금은 행복한 가정으로 잘 살고 있다.

 

5명으로 시작한 모임 입소문과 탈북민 참여로

통일위해 선구자 역할을 해야겠다 자긍심 생겨

2016년 ‘통일한울회’로 본격적 활동하고 있어

 

매주 독거노인과 장애인집을 찾아 집안일

거들어주고 있으며 외로움 덜어주기 위해

말동무를 해주고, 질병으로 인하여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 방문해 도와주는 봉사활동

삶의 활력 찾도록 멘토링 역할 등 잘 감당

 

▶올 한 해 했던 봉사활동은…

어린이날 소외계층 가족의 어린이 15명과 함께 월미도 놀이공원에 가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또한 어버이날 50여 가구의 어르신들을 초청하여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아바이순대, 평양왕만두 등 북한음식을 대접하여 드렸다.

이런 행사는 보통 20~30명의 회원들이 자비부담으로 봉사활동 한다. 자기 돈을 들여 시간을 내어 북한음식을 정성껏 만드는 것인데 그래도 너무 좋아한다. 아마도 그것은 주는 기쁨으로 하는 봉사활동의 묘미인 것 같다.

▶‘통일한울회’의 주된 사업은 무엇인가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제4조 제1항에 의해 인천광역시에 등록된 ‘통일한울회’이다. 이제 다섯 살의 우리 단체의 주된 사업은 통일교육 및 통일 홍보활동(청소년통일교육, 통일합창공연 등), 지역사회 주민들과 연대활동(남북한문화비교 체험), 탈북민들의 지역사회 정착지원 활동, 봉사활동을 통한 자아개발이다.

 

다섯 살의 단체의 주된 사업은 통일교육 및

통일 홍보활동(청소년통일교육, 통일합창공연)

지역사회 주민들과 연대활동(남북문화비교 체험)

탈북민 정착지원 활동, 봉사활동 통한 자아개발

 

▶고마운 분들은 누구인가?

박남춘 인천시장님이다. 국회의원시절(2016. 5~2018. 5)때부터 ‘통일한울회’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신다. 이강호 인천남동구청장님도 탈북민들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계신다. 남동구에 대략 1.700명의 탈북민이 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인천남동구협의회 정찬주 회장님도 우리 단체 행사에 조용히 찬조를 해주시는 분이다. 이외에도 많은 유관기관, 사회단체 관계자들, 개인들이 우리 탈북민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배려의 손길을 보내주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한민국 정부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북한에서는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렸고, 중국에서는 공안단속의 두려움에 떨던 우리 탈북민들이다. 남한에 와서 사람대접 받으며 사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그리고 대표인 나를 믿고 묵묵히 따라주는 우리 회원들에게도 항상 고마운 마음이며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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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13 [14:45]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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