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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되면 함께 북한에 가서 오늘을 이야기 하자”는 약속에 설렌다
[인터뷰] 우리는 한 가정- 남은심 정착 도우미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04/11 [14:35]

탈북민들에게 ‘정착도우미’는 북한에서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이름이다. 정착도우미는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민들이 하나원을 수료하고 사회의 첫걸음을 내디디면서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다. 누구의 도움을 바란다는 것이 아득한 옛말처럼 들리는 북한에서 살다가 ‘도우미’라는 용어를 처음 접하는 탈북민들이 이 예쁜 표현처럼 다정한 정착도우미들의 사랑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은 왜일까?

강원남부하나센터 정착도우미 남은심씨(50대)를 만나보면 그 해답을 알 수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꽉 닫혀있던 탈북민들이 마음을 열 수 있는 비결이 진정한 사랑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믿음보다 감시를, 풍요보다 빈곤을, 사랑보다 비판문화에 익숙했던 탈북민들에게 진심의 마음을 보여주면 어느새 한가정이 되고 통일의 아름다운 화폭이 눈앞에 그려진다.

 

함경북도가 고향인 아버지와 강원도

원주 태생인 어머니가 마음을 합쳐

남녀북남이 만나 이루어진 통일가정

실향2세가 탈북민 돕는 도우미 택해

 

남남북녀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남녀북남이라는 말은 생소하다. 남남북녀는 우리나라에서 남쪽지방은 남자들이 잘 생겼고, 북쪽은 여자들이 곱게 생겼다는 뜻으로 전해져 내려온 말이다. 1990년대 이후로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 대거 입국하기 시작해 지금은 3만 명을 훌쩍 넘었다.

지금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남한여자와 북한남자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남녀북남가정이다. 그리고 남한남자와 북한여자가 가정을 이루면 남남북녀가정이다. 지역마다 남남북녀 결혼정보센터들이 있을 정도로 이젠 작은 통일들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남은심의 부모님들도 남녀북남이 만나 이루어진 통일가정이다. 북한 함경북도가 고향인 아버지와 강원도(남) 원주시 태생인 어머니가 마음을 합쳐 통일가정을 이룬 것이다. 실향민 2세인 남은심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그가 정착도우미를 왜 택했는지, 그의 마음이 왜 그리도 뜨거운지를 알 수 있었다.

김일성의 한반도공산화 야망이 불러온 6.25남침전쟁으로 북한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던 아버지도 인민군 징집을 피할 수 없었다. 390여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비극의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 나간 아버지는 목숨은 건졌지만 전쟁포로가 되어 거제도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전후에 인민군 포로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북한으로 돌아갔지만 아버지는 자유를 갈망하면서 고향인 북한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였다. 남은심은 아버지가 고향에 가지 않은 것이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아버님이 북한에 돌아갔더라면 독재사회에서 비참한 운명을 살다가 인생의 행복을 맞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 자기 자신도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던 한반도, 1950년대의 남한 땅에서 살아가기도 쉽지 않았다. 20대의 나이에 홀로 장사를 하면서 열심히 사는 북한출신 총각의 부지런하고 강직한 성품이 남쪽의 아름다운 꽃처녀였던 어머니의 마음을 끌었다. 서로 교제하면서 사랑이 움텄고 결혼의 결실이 맺어졌으며 결국 남은심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터지는 고고성의 울음은 ‘통일’을 외치는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통일가정이 이루어낸 기적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고향 그리며 북녘하늘을

바라보던 아버지모습 보면서 자랐기에

통일은 가장 큰 소망…그렇게 바라던

고향땅 밟아보지 못한 채 아버지 떠나

 

그녀의 성장과정은 북한이 함께한 나날들이었다. 무뚝뚝하면서도 진실한 아버지의 함경도 말투를 항상 들으며 자랐고 아버지의 북한식 구미에 맞게 어머니가 만드신 북한음식을 먹으며 성장했다. 아버지가 특히 좋아하시던 수육은 식탁의 주 메뉴로 항상 오르곤 했다.

아버지는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그리운 고향에 가서 부모형제들을 만나고 싶어 했다. 어릴 적부터 고향을 그리며 북녘하늘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 남은심에게 통일은 가장 큰 소망이었다. 그렇게 바라던 통일을 보지 못하고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아버님의 간절한 소원은 여전히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통일되면 아버지의 영혼을 안고 고향 북녘 땅을 다녀오리라는 희망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 꿈이 있었기에 하나센터에서 정착도우미 공고가 났을 때 선참으로 신청을 했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입국하면 국정원에서 2~3개월 동안의 심사를 거쳐 하나원에 입소한다. 하나원은 한국에 정착하기 전에 약 3개월 동안 머무는 정착교육기관이다. 하나원에서는 북한에서 접할 수 없었던 시장경제와 한국생활의 이모저모에 대한 기초교육을 받는다.

자유민주주의, 남북한 언어비교와 소통방법, 신용사회개념과 신용카드, 의료보험제도, 컴퓨터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초보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하나원에서 추첨방식으로 거주지 지역설정과 임대주택 배정이 결정되면 수료하여 지역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다. 이때에야 비로소 대한민국 국민임을 인정하는 신분증이 처음 발급되어 손에 쥐어지고 정착의 첫걸음마를 떼게 된다.

그러나 6개월 동안 그리도 나가서 생활하고 싶었던 한국생활은 생소하기 그지없다. 전철을 어떻게 타는지, 핸드폰은 어떻게 개통하는지, 카드는 어떻게 발급받는지, 마트에서 물건은 어떻게 사는지, 같은 물건이라고 어떤 것을 골라야 하는지,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생활오물은 어떻게 배출하는지, 아프면 어떤 병원에 가서 진료를 어떻게 받는지 등 모든 것이 생소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생소한 것을 해결해 주는 척척박사가 바로 ‘탈북민 정착도우미’이다. 하나원에서 나온 첫날 관할지역의 하나센터와 적십자단체에서 모든 탈북민들에 한해 1:1 맞춤형 정착도우미를 정해준다. 그들의 손에 이끌려 하루하루 대한민국에서의 첫걸음마를 뗀다.

나이에 상관없이, 북한에서의 학력에 관계없이 갓 태어난 어린아이 같은 탈북민들을 다심한 손길로 이끌어주는 정착도우미는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은인이다.

 

정착도우미는 보수 바라지 않고 사랑으로

봉사하는 자원봉사자이기에 사명감이 필요

지역생활정보지인 ‘교차로’에서 처음으로

탈북민 정착을 도와주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공고 본 후, 정착도우미 시작한지 이제 5년

 

사랑이 없이는 정착도우미 역할을 할 수 없다. 남은심은 요양보호사로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탈북민들의 정착을 열심히 도와주고 있다. 정착도우미는 그 어떤 보수를 바라지 않고 사랑으로 봉사하는 자원봉사자이기에 사명감이 필요하다. 지역생활정보지인 ‘교차로’에서 처음으로 탈북민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공고를 보고 정착도우미를 시작한지도 이제 5년이 되었다.

20대에서 6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대의 탈북민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이 살아 온 눈물겨운 사연들을 들으며 정착도우미로서의 사명감이 더 커진 것 같다고 하였다.

고난의 행군시기에 가족과 친인척들이 굶어죽는 광경을 보고 생사를 건 탈북을 했건만 중국에서 북송위협으로 항상 불안한 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 북에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친엄마, 친언니, 친할머니가 되어주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딸이나 다름없는 간호조무사 꿈꾸는 탈북여성

‘사위’는 남한총각…이 가정 역시 통일가정

‘딸’은 공부하러 학교에 갔고, 국가기관에서

기술직으로 일하는 기술자인 ‘사위’는 휴무일

통일세대인 아들의 영리함 자랑하는 ‘사위’의

만족스런 웃음은 통일한국의 미래 그리게 해

 

정착도우미로 이젠 대가족이 되었다. 전화로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새 가족이며, 탈북민들이다. 전화속의 대화에서 서로 부르는 대명사도 ‘딸’, ‘언니’, ‘사위’ 등이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시기에 태어나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 한글도 잘 몰라 정착의 어려움을 겪었다는 20대의 탈북여성, 간호조무사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한다는 30대의 탈북여성, 대한민국에 와서 천국 같은 세상을 알게 되었다는 60대의 어머니와 함께 한 그 시간에는 한가정의 따스함이 깃들어 있다.

하나센터가 있는 행정복지센터는 탈북민들이 사는 주택단지 구내에 있었다. 한 가정 같은 그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하자 그녀는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고 약속한 가족이 있다며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훤칠한 키의 젊은 친구가 3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주택단지 놀이터로 들어서자 ‘아, 우리 사위가 온다’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귀엽게 생긴 아들애를 안으면서 ‘우리 사위고 내 손주랍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정착도우미들을

통해 받게 되는 ‘사랑의 미소’탈북민에게

에너지가 되어 행복과 꿈을 이루게 해줘

통일가정 선배로서 후배들에 하는 약속은

통일되면 북녘에 가서 오늘을 이야기하자

 

자기의 딸이나 다름없는 애 엄마는 간호조무사를 꿈꾸는 탈북여성이다. ‘사위’는 남한총각이니 이 가정 역시 남은심의 부모와 같은 통일가정이다. ‘딸’은 오늘도 공부하러 학교에 갔고, 국가기관에서 기술직으로 일하는 기술자인 ‘사위’는 휴무일이다. 항상 무슨 일을 해도 열심히 한다는 와이프와 통일세대인 아들의 영리함을 자랑하는 ‘사위’의 만족스런 웃음은 우리에게 통일한국의 미래를 그려보게 하였다.

남남북녀 가족, 통일가정에서 태어난 귀염둥이가 그녀를 친엄마, 친할머니처럼 따르는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았다.

인터뷰 내내 그녀는 웃고 있었다. 사랑의 미소였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행복에 웃고 사랑을 주는 사람은 만족감에 웃는다. 사랑은 부모님들의 자식에 대한 다심한 마음이다. 사랑은 티 없이 맑은 천사들의 웃음 속에 더 만발한 꽃처럼 피어난다.

그의 ‘사랑의 미소’가 우울증에 걸린 탈북민들에게는 보약이 되고, 지친 일상에 외로워하는 탈북민들에게는 힘이 된다. 북한에서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정착도우미들을 통해서 받게 되는 ‘사랑의 미소’는 탈북민들에게 에너지가 되어 행복과 꿈을 이루게 해준다.

남은심씨는 통일가정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사랑을 안겨준다. ‘통일되면 함께 북한에 가서 오늘을 이야기 하자’는 그의 표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김형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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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11 [14:35]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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