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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신이 촉매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외국인도 참가…현재 교인 100명 예배
[북한의 현주소를 찾는다] 칠골교회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04/25 [14:06]

북한에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산하에 2개의 교회,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두고 있다. 칠골교회는 김일성의 모친 강반석의 출생지인 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동에 있다.

칠골이라는 지역이름은 룡악산에 뿌리를 둔 7개의 골짜기 중에 일곱 번째 골짜기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평양의 남서방향, 광복거리의 서쪽에 위치한 룡악산은 예로부터 아름답기로 소문난 평양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이 룡악산의 동남쪽의 칠골1동에 있는 칠골교회는 1899년에 세워졌다.

 

헌금으로 8칸짜리 기와집으로 증축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1894년에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고종 왕으로부터 포교를 승인받은 미국 장로교 소속의 선교사들이 1895년에 평양을 중심으로 교회를 짓고 선교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칠골교회의 본래 이름은 하리교회였다.

지금은 행정구역명이 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동으로 되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주소지 명칭이 평안남도 대동군 용산면 하리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으로 불린 것이다.

칠골교회의 첫 목사였던 홍신길 목사는 자기가 전도한 13명 교인들의 도움으로 3칸짜리 작은 초가집을 얻어 교회를 설립한 칠골교회의 설립자이다. 칠골교회 담임목사들로는 1866년 셔먼호사건 때에 토마스 선교사로부터 성경책을 받았던 홍신길(洪信吉) 목사에 이어 김경삼(金敬三) 목사, 김창문(金昌文) 목사, 이재풍(李載豊) 목사, 심익현(沈益鉉) 목사 등이 사역을 하였다.

창덕학교는 칠골교회에서 기독교 교인들이 설립한 학교다. 북한에서는 이 학교가 김일성의 외할아버지인 강돈욱이 1907년 4월 1일에 설립했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그것은 당시 증언자들에 의해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강돈욱이 칠골교회 열성 장로였으며 교회에서 설립한 창덕학교 운영을 위해 헌신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설립자라는 것은 거짓이다.

창덕학교는 북한이 주장하는 1907년이 아니라 그보다 2년 뒤인 1909년에 칠골교회에 출석하던 교인들과 장로들에 의해 교인자녀들을 위한 학교로 설립되었다. 당시 창덕학교 교장은 미국인 베어드 선교사였으며 교사들로는 칠골교회에 출석하던 조병첨, 홍상용, 민정식 등이었다. 김일성의 외할아버지인 강돈욱은 1910년 칠골교회 집사가 됐으며 동생들인 강건욱과 강관욱도 1911~1912년에 집사로 임명되었다.

칠골교회는 교인들의 헌금으로 1914년에는 8칸짜리 기와집으로 증축되었다. 김일성의 외할아버지인 강돈욱 장로, 선우정 장로 등 장로들의 노력으로 교인들이 많아져 1917년에는 168명, 1920년에는 220여 명으로 늘었다. 칠골교회 교인들의 노력으로 설립된 창덕학교에 김일성은 1923년부터 1925년까지 2년 동안 다녔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이 ‘조선을 배워야한다’면서 김일성을 ‘배움의 천리길’을 걷도록 했다. 그 뜻을 받들어 창덕학교에서 공부를 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창덕학교는 기독교 성도들을 양성하는 선교미션스쿨이었다.

 

6.25전쟁으로 파괴…1980년 다시 세워

 

김일성이 중국 팔도구를 떠나 고향인 만경대에 도착한 것은 1923년 3월 29일이었다. 만경대에서 며칠 머물렀던 김일성이 칠골 외가집으로 옮긴 것인 외할아버지인 강돈욱이 칠골교회 장로이면서 창덕학교 운영에 관여한 학교 교감이었고 강량욱이 이 학교의 교사였기 때문이었다.

김일성은 학교 5학년에 편입하였고 당시 강량욱은 김일성의 담임교원(교사)이였다. 그때부터는 김일성은 만경대에 가지 않고 외가집에 머물면서 공부를 하였다. 광복 후 김일성은 강량욱에게 조선기독교연맹 위원장직을 건의하였고, 강량욱과 그 자손들이 지금까지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위원장직을 이어오고 있다.

칠골교회는 6.25남침전쟁으로 파괴되어 형체가 없어졌지만 김일성은 칠순이던 1980년대 말에 칠골을 현지시찰하면서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가 이 부근에 있었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의 위치에 칠골교회가 다시 세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창덕학교에는 지금도 당시 학교 교무실과 교실, 그리고 당시 본명인 김성주로 불렸던 김일성이 사용한 책상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학교 마당 가운데는 김일성이 이 학교를 다니던 모습을 형상한 동상도 세워져 있다.

전쟁으로 파괴되어 형체가 없던 칠골교회가 다시 세워진 것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은 최덕신이 촉매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김일성이 길림육문중학교를 퇴학하고, 그 이후에 다녔던 화성의숙의 교장이었던 최동오 선생에 대해 북한주민들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최동오 교장의 아들이며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교장, 대한민국 외무부 장관, 서독주재 한국대사관 대사였던 최덕신 선생이 미국으로 망명하였다가 1986년 4월에 부인 류미영과 함께 북한으로 월북하여 김일성을 수차 접견하였다. 북한 조선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 여러 직책을 맡았던 그가 김일성과 대화중에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김일성이 칠골교회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간부들이 위치를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최덕신에게 “어릴 적에 어머니에게 이끌려 예배를 하던 기억이 난다”며 동행한 간부에게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볼 것을 지시하였다. 수소문 끝에 한 노인이 그곳을 지목하여 현재 위치에 칠골교회가 새로 설립되었던 것이다.

 

‘칠골혁명사적’지라고 부르기도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대표단원 들 중에 기독교 교인들이 많다는 사실도 칠골교회 설립에 영향을 미쳤다. 대한민국에서 1988에 88서울올림픽을 하게 되자 1980년대 중반부터 북한당국은 올림픽을 방해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진행하여 저들의 대외적 권위를 회복하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수천 명의 외국대표단 성원 중에 절반정도가 기독교 교인인 것으로 하여 그들이 주일에 예배할 장소가 문제였다. 김정일은 광복거리 인근의 칠골교회가 예배장소로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건설을 지시하였으나 완공단계에서 건축공학상 문제로 하여 허물고 다시 짓게 되었다.

결국 1989년 5월에 김정일이 광복거리건설 현지지도를 하면서 칠골교회 건설에 대해 지시하였지만 3년 후인 1992년 11월 28일에야 지금의 칠골교회 건축이 완공되어 헌당예배를 할 수 있었다.

현재 100명 내외의 교인들이 매주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예배를 하고 있다. 이 예배에는 북한을 방문하고 있는 외국인들도 함께 참가하고 있다. 칠골교회가 있는 이곳을 북한에서는 칠골혁명사적지라고 부르고 있다. 이곳에는 칠골교회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칠골혁명사적관과 칠골외가집, 창덕학교 등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역을 강반석의 이름을 따서 반석공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칠골혁명사적관 내부에는 김일성과 그 외가식구들의 활동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혁명사적관에서 안내 해설 강사들이 참관자들에게 칠골교회 장로였던 김일성의 외할아버지 강돈욱과 김일성의 칠골학교 담임교원이었던 강량욱에 대해 설명한다. 당시 강량욱이 김일성을 가르치던 시기에 집안이 가난하여 학비도 댈 수 없어 숭실학교를 중퇴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강량욱은 김일성에게 항일정신과 민족해방정신을 심어주었고, 창덕학교를 다니던 도중에 중국에서 아버지 김형직이 일제경찰에 체포되자 조국을 해방하기 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결의를 다지면서 중국으로 광복의 천리길을 걸었다고 해설 강사들은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김일성이 조선을 위해 배운다면서 칠골에 와서 다닌 학교는 교회가 세운 기독교학교로서 하느님과 성경에 대한 공부를 하였던 학교였으며 기독교 교인으로 성장하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해방 후 종교말살정책을 펼쳐 종교인들을 탄압하였으나 70고령을 넘기는 시점에서는 옛 칠골교회 복원을 바랬던 것이다.

김형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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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25 [14:06]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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